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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05. 2020

합의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다

제대로 된 사과란 무엇인가

인간 분수가 된 줄 알았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이건 정말, 토하는 것이 아니라 토악질이었다. 이 단어의 뉘앙스를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될 줄이야...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었다간 화장실 벽을 망칠 뻔했다. 직선으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길 안에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이 나올 것만 같아 두려웠다. 정말 금방이라도 내장들이 같이 나오는 줄.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너무 놀라 급하게 달려간 병원. 우리 동네 병원은 기본 대기가 2시간 이상이라 대기 중에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 몇 번이나 말간 물을 토해냈다. 하늘이 노랗다 못해 붉어지는 것 같았다.

    

- 니 몸은 자정작용이 있거든. 몸에 독이 되는 물질이 들어오면 그걸 빼낼라고 하는 거야.      


30년 나의 전담이셨던 우리 동네 화타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독. 독이라...  

    

독의 주범은 소시지였다. 어젯밤, 동네 슈퍼에서 사서 먹었던 소시지. 1+1인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마음에 들었던 건 아주 통통한 몸체. 비실거리는 메이커 소시지와는 다르다고 생각이 들어서 처음 보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선택을 했고, 나의 선택은 오답이었다. 며칠간을 먹으면 토하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죽을 먹어도 토했다. 실신한 듯 보냈던 주말이 지나 회사에 연락을 했다.      


처음부터 얼마를 원하냐 묻는 직원의 말에 당황했고, 제품에 이상이 없다는 보고서를 가져온 이후, ‘도의적’이란 단어를 사용해 배상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난 당황스러웠다. '도의적'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도의적이란 건 자신들이 잘못이 없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주변에서 배상금으로 얼마가 적정한지 이야기했지만, 그 돈을 다 부를 순 없었다. 그냥, 적당 선에서 금액을 불렀고, 그들은 또 그 돈을 후려쳤다.      


친구는 이런 과정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 받길 원하면 나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 숫자가 오가는 과정이 끔찍하다. 이렇게 숫자가 오가다가 스트레스로 더 아플 것만 같아서 그들이 부른 금액으로 싸인을 해서 넘겼다. 내가 겪은 일들이 겨우 그 금액으로 다 보상이 되는가. 절대 안 된다. 그런데 돈을 떠나서, 그들의 태도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 명치가 꾹 아파왔다.      


사과를 원해요.     


제대로 된 사과를 원하지만, 그 사과를 해달라고 말하는 과정 자체도 끔찍하게 싫어서 결국 내 명치가 눌린 채로 마무리를 지었다. 앞으로 그 회사가 무슨 제품을 어떻게 만들던, 절대 먹을 생각은 없다.     


     




- 넌 좀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거 같아.      


날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이 하나 같이 하는 이야기이다. 난 살면서 구급차를 좀 여러 번 탔다. 구급 베드에 누워 병원 천장에 스쳐 지나가는 형광등을 보면서 ‘아 X발 내 인생’이라고 중얼거린 적이 한둘이 아니다.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나 듣는 사람이 황당한 말도 안 되는 사고들. 이 사건은 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지금은 웃지만, 그 당시엔 나에겐 끔찍했다. 그래도 큰일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다. 하지만 자잘한 사고들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고, 피곤이 쌓이면 무기력해진다. 


이런 사고도 사고지만, 이상한 인간들도 많이 만났다. 상처 받은 적이 한둘이 아니지만 돌아보면 그 상처에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고민해 본다. 내가 사과하라고 요구했었나? 이번 사건에서도 난 사과하라고 연락하지 않았다.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편해서, 그깟 사과받아서 뭐해 싶은 마음에...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항상 그렇게 유야 무야 넘긴 상황들이 나의 상처가 되어 있더라.  

  

주변에 쎈 사람들을 보면, 왜 그렇게 부러운 줄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 턱턱 하고, 원하는 거 말하고...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게 알아서 긴다. 기막힌 노릇이다.       


어찌 되었던 싸인은 했고, 일은 끝났다. 이제, 이 일은 기억에서 지우려고 한다. 지금으로서 나에게 그게 최선일 테니.      


허나, 

합의는 했지만, 기분은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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