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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17. 2020

꿈의 맛

어젯밤 꿈속에

       

내 기억에서 가장 오래된 꿈은 6살 때로 추정된다. 놀이동산에서 괴물의 습격을 받은 , 괴물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붉은색을 띤 고철로 된 괴물의 형상은 우리 동네 뚝방까지 나를 쫓아왔고, 도망치다 지친 나는 결국 그 괴물과 싸우기 시작했다.      


위기의 순간,      


난 다행히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를 보고 안심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둡고 깜깜한 방에서 시야가 익숙해지자 잠에서 깨어난 후가 조금 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시 자리에 누워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계산해보면, 인생의 1/3 이상은 잤던 것 같다.      


그 많은 시간을 꿈속에서 보내며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전혀 좋아하지도 않는 연예인이 꿈에서 나오기도 하고, 온갖 벌레들이 나를 습격하기도 하고... 정말 별일을 다 겪었다. 내가 원했던 꿈을 딱히 꿔본 적은 없지만, 나에겐 치트키가 하나 있었다. 바로, 비행. 언제 어디서든 발을 두 번 구르고 몸을 띄우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렸을 적 배웠던 수영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이 날아올랐고,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속도. 속도는 좀 느렸다. 그래서 꿈에서 추격전이 일어났을 때, 조금 더 쫄깃함을 느꼈을 지도.     


한참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 나의 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원하면 어디든 갔던 그 꿈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대체 언제부터 날지 못했던 것일까 돌아봤지만, 그마저도 흐릿하다.     


그럼에도 꿈은 계속되었다.     


뭔가 불쾌함이 가득한 꿈에서 깨어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고, 즐거웠던 꿈에서 깨어나면,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꿈에서 깨어나면 그 꿈을 검색해 보곤 했다. 눈을 뜨자마자 ‘바퀴벌레 나오는 꿈’, ‘피가 나는 꿈’ 등등 별별 것을 다 검색해 보았는데, 재밌는 건, 정말 특이한 몇 개의 꿈 빼고는 모두 해석이 있었다. 딱히 해석이 맞았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제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누가 들었어도 좋은 꿈이라고 말할 만한 꿈. 하지만 그 꿈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 이 행동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뭐, 꿈에서 멈추라고 한다고 멈춰지냔 말이지. 진짜 좋은 꿈이었는데.... 에라 망했어... 하며 허탈함을 느낄 새도 없이 갑자기 유명인의 등장과 그녀와의 긴 대화. 그 꿈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너, 진짜 별 꿈을 다 꾸는구나.      




생각해보면, 사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현실엔 좋은 징조와 나쁜 징조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이런 상황에선 이럴 것이며, 저런 상황에선 저럴 것이며.... 정말 별일을 다 겪는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안다. 꿈에 대한 해석이 있듯, 현실에도 해석이란 것이 있음을.      


그러나 꿈과는 달리 매일 마주하는 현실의 해석은 인터넷에 찾아볼 수도 없다. 조언을 구할 수 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책임도 본인의 몫일뿐.      


현실이 꿈보다 좀 짜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짜빠진 현실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제의 꿈이 조금은 달았다. 그 꿈이 현실에 뭐 그리 큰 도움이 되겠냐마는, 그래도 한번 정도는 웃고, 검색 한번 해보면서 나쁜 부분은 제거하고 좋은 부분만 해석해보며 현실에 조금의 힘을 불어넣었으니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현실을 산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은 머리를 굴려가며 어찌하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수없이 계산을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계산엔 약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현실에 약한 인간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꿈 해몽이 좋다고 다 현실이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현실에서 계산을 잘했다고 해서 좋은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꿈에서 다양한 세상을 만나듯, 앞으로 현실에선 더 다양한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다만, 내가 마주하는 현실이 마냥 달지 않더라도, 오늘처럼 꿈이 조금의 달콤함을 선사해주는 날들이 있다면 그걸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엄청 달면 입에 물린다. 그게 꿈이든 현실이든.      


오늘, 또 새로운 꿈을 꿨으면 한다.

그 맛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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