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Sep 02. 2020

첫 번째, A

관계의 질량, 감정의 질량.

그러다 니 인생 망할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우리의 통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뛰는 심장을 잡고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적당한 사과가 있으면 그저 넘어가려 했지만 통화가 엇갈리고 문자의 텀이 생기면서 나의 20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A와의 인연은 끝났다.      


A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순수한 친구로 통했다. 그녀가 가끔씩 핀트에 안 맞는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빵빵 터지곤 했다. 난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다. 우린 빠르게 친해졌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서로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여겼다. 통화가 1시간 안에 끝나면 짧게 끝나는 거였다. 그녀가 울먹이던 목소리로 그녀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왔을 때,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서 내가 통곡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나의 20대의 많은 기억에 그녀가 있었다. 




난 말실수를 믿지 않는다. 실수란 없다.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 없던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말실수 속에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그랬다.   

   

20대 후반,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계속되었다. 휘청이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주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내가 가진 기반 중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기에 그녀와의 관계를 지지부진하게 가져갈 수 없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그 애가 원래 말을 잘 못하니 이해해라. 그런 뜻이 아닌 걸 알지 않느냐. 그 당시 그 애도 회사 때문에 힘들었다더라... 하지만 내 귀에 그런 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를 끊어내고 한동안 나는 힘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중요한 친구였기에 빈자리가 고스란히 나의 상처로 남았다.      




작년, 요리를 배우러 다니던 때 한참 불 앞에서 요리를 하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만들었던 음식이 함께 먹었던 음식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먼저 연락을 했다. 만날 약속을 잡았고, 그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20대에 수많은 시간을 함께 커피를 마셨는데, 30대가 되어 그런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슬프기도 했기에. 그냥 얼굴을 보면 예전의 미움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게 올 것 같다고 연락이 왔고, 난 그녀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회사 미팅이 있었다. 고민 끝에 우린 다음을 기약했고, 다음은 없었다.      




내심,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바랐다. 누구보다 많은 소통을 했던 이였기에 매몰차게 돌아섰어도, 손만 내밀었다면 바로 돌아섰을 것이다. 난 생각보다 쉬운 여자니까. 하지만 마지막까지 손을 내민 건 나였다. 그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난 그녀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곁에서 긴 시간 나를 봐왔기에 단단히 화난 내게 손을 내밀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손 내밈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난 깨달았다.      


그냥, 우린 그 정도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참 많았던, 남들보다 유난스러웠던 대학생활이었다. 10대의 우울했던 시기가 대학생활 하나로 모두 만회되기도 했으니. 항상 같이 웃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그 이야기도 모두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다.      


관계란 것은 그런 것 같다. 감정의 질량이 항상 동일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조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다 지나가겠지. 모든 건 지나간다.     

 

이젠 그녀와 일상을 나눌 일이 없고, 그 일상이 궁금하지 않다.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 일테지. 그래도, 그녀에게 아무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도, 난 여전히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의 인연은 끝났지만, 나의 20대의 기억들에 그녀가 중요하게 있는 건 변함이 없으니. 


언제, 어디서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