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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05. 2020

세 번째, A

동그라미 학과 박사과정 수료자


넌, 500년을 잘못 태어났어     


빵 터진 웃음에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카메라가 흔들렸다. 그날 그 장면과 나와 그녀의 웃음소리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다큐 상영회가 있던 날. 상영관에 나란히 앉은 우린 그 장면을 보며 같이 또 한 번 빵 터졌다. 그 이후에도 가끔 우울해지는 날이면 그 영상을 돌려보곤 한다. 언제나 빵빵 터지는 그녀의 출연 부분을 보다 보면 그날 먹었던 파전과 막걸리의 맛이 입가에 맴돈다.      




첫 만남은 장례식장에서 였다.

동아리 동기의 아버지 장례식. 지방에서 치뤄진 장례식이기에 동아리 멤버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 도착할 예정이었다. 친구와 함께 먼저 빈소를 찾은 나는 타 학과 소속의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바로 그녀, A였다.      


동아리 사람들을 통해 이름은 여러 번 들은 적 있던 친구였다. 나의 휴학 시기와 그녀의 휴학 시기가 기막히게 엇갈리면서 졸업을 앞두었던 그때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로 이름만 알던 그런 사이였다.      


그런 사이에 대화가 뭐 얼마나 오갔겠는가. 별 다른 이야기가 오간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이 녀석이다!


순간의 티키타카로 서로를 캐치한 우린 번호를 교환했고, 조만간 밥 한번 먹자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동에서 밥을 먹기로 해놓고, 밥을 안주삼아 술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얼근하게 취해 10년 절친을 오랜만에 만난 것 마냥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우린 진짜 10년 지기 절친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아! 하면 어~ 하는

콩떡처럼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 친구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아닌 그런 사이.

그렇게 그녀를 알게 된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그녀,

헐렁하고 계획 없는 나    


이성적이고 냉철한 그녀

감성적이고 물렁한 나      


우린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지?      




그녀와 있으면 항상 유쾌했다.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친구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만나 속마음을 털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끝은 깔깔거리고 끝이 난다. 예전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난 고민이나 위기가 생기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하며 땅 파고 들어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 앞에선 모든 것이 유쾌하고 가볍게 여겨졌다. 그녀는 말하곤 했다.      


원래 사람들이 하는 걱정은
실제로 1%도 안 일어난데
근데, 너는 모집단이 다르잖아ㅋㅋㅋ
니 고민은 실제로 안 일어나
혹시 일어나도, 대책만 잘 세우면 돼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대책만 잘 세우면 되지.

그녀 앞에서 모든 일이 쉬워졌다. 그게 무엇이라도.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뻤던 순간에도 그녀가 함께였고, 힘들었던 순간에도 그녀가 함께였다. 우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도 붙어 다니지도 않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중요한 순간엔 함께였다.       


몇 년 전, 나의 첫 공연 쇼케이스가 있던 날.  공연장을 찾은 그녀는 “동그라미 작가님 사생 팬 1호”라고 쓴 캔 커피와 곰 인형을 내게 내밀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마음이 힘들었던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곰 인형이 너 대신 고민해줄 테니, 고민 좀 하지 마!"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웃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고민이 많다. 그 곰 인형은 그녀만큼 성실하진 않은 듯하다. 오늘도 말간 얼굴을 한 채, 놀고 있으니. 하지만 그 자체로 난 여전히 힘을 받고 있다.      


우리 집이 어딘지도 모르는 나의 사생팬 1호. 나의, A    

      



몇 년 전, 개인 다큐 작업 때,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일에 똑같아! 약아빠지게 생각을 못해.
모든 생각과 모든 관점이 비슷해.
그거 나한테 필요 없어 내가 가져서 뭐해~
돈, 상관없어. 굶어 죽으면 안 쓰면 되지
안 먹으면 돼. 약간 이런 마인드야.
그까짓 돈 있다가도 없는 거
(중략)
그런 사상은 조선시대 사림 안에서나 먹혀
넌, 500년을 잘못 태어났어

자그마치 10년. 경제관념 만랩에 꼼꼼, 성실한 그녀가 경제관념 제로에 한량인 나와 친구로 지내며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나의 궤변을 들으며 '노 이해!' 이런 눈빛으로 신기하게 쳐다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너, 동그라미잖아. 그럴 수 있어!      




우린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고 삶의 지향점도 다르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린 수많은 일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풍파가 오더라도 그녀는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10년을 보아온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매번 함께 술을 마시며 목이 쉬어라 깔깔거리던 우리였는데, 코로나 덕분에 약속이 미뤄지길 벌써 몇 달째. 이 시국에도 성실하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는 내 친구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조만간 날 좋은 날, 그녀와 함께 깔깔 거리며 수다 떠는 시간이 오길 기다린다.

A, 우리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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