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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06. 2020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타인의 기억

12시가 넘은 시각. 지이이잉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휴대폰 위에 생각지도 못한 낯익은 이름이 떴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예전 직장동료 몇 명을 빼면, 대부분 술 냄새가 묻어 있는 전화. 받지 말까 살짝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몇 년 만에 온 연락이기에 결국 폰을 집어 들었다.  

    

- 어~ 동그라미!      


역시나, 만취까지는 아니지만 술 냄새가 났다. 잘 지냈냐며 이래저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내일이면 이 대화를 기억이나 할까 싶었다. 아니 통화 자체를 기억은 할는지. 웃으며 던진 술 마셨냐는 질문에 안 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 취했다고 말한 사람 중 취하지 않은 사람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도대체, 오빠가 연락하기 전엔 연락도 없냐며 한참 서운함을 토해내던 그를 난 원래 연락 잘 안 한다고 웃으며 달랬지만... 몇 년간 새해에 오가는 카톡 속에서 내 이름을 찾았고,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할지 말지 꽤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동그라미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유일하게 알아준 사람이야


내가? 대체 언제?




그는 나의 첫 단편영화의 주연배우였다.      




영화 관련 인력들이 모이는 교육원. 영화에 대해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지원요건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공연 관련 이력이 인정이 되면서 교육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교육은 생각보다 알차고 재밌었다.     


아직도 교육 첫날이 기억이 난다.

어색하게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단편영화 연출을 하고 싶어서 왔다는 것을. 교육의 마지막은 조별로 영화를 찍는 것이었고 장비도 모두 지원을 해주는 상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좋은 기회였던 것. 몇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내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연출을 맡게된 날, 몇몇 사람들의 눈빛이 왜 그리 변했는지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사실, 난 그 단편에 대해 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대학 조별 활동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했으니. 물론 조별 활동을 한 번도 대충 한 적이 없던 나였다.  


시스템 상으론 장비는 제공하지만 개인당 삼삼오오 제작비를 걷어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조에선 5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제작비를 걷기도 했지만, 그건 오히려 내 쪽에서 부담되는 비용. 제작팀과 논의한 후 금액을 2만 원에서 3만 원으로 정했던 날, 날 향해 왜 만원이냐 올리냐고 소리소리를 질렀던 사람도 있었다. 그 금액이 책정된 건 단 하나의 이유였다. 마지막 회식 때 고기를 굽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말이지... 그 당시 그렇게 모인 제작비 중에 작품 자체에 들어간 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스태프들 식대로 사용했다. 그날들을 돌아보면 아직도 기가 막힌다.




20대 후반의 나는 즐겁게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단편영화로 칸에 갈 것도 아니고, 재밌게 찍고, 모두 좋은 기억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냐고. 하지만 시나리오가 선정된 이후 모든 것은 나의 예상과 벗어났다. 난 많은 것을 단념했다. 시나리오가 탈락된 후 일부로 촬영 팀에 들어와 다 안 된다고 반대하며 비협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과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그림들을 포기하고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즐겁지 않았고, 난 결국 시사회 때도 일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 제작 PD로부터 “반응 좋았다니까! 사람들이 많이 웃었어!”하는 말을 들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 그 영상은 단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      


지금 와서 보면, 그들이 왜 그리 행동했는지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되지 않는다. 진절머리가 날정도로 바닥을 보여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나였다.      




그는 다른 조의 사람이었다. 캐스팅 제의를 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린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대본에 대해 열심히 이해하려는 그의 태도가 좋았다. 하지만 촬영 날 당일까지 구시렁대던 사람들 속에서 그는 눈치를 봐야 했다. 조금 어설픈 연기와 자꾸 씹히는 발음.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몇몇 인간들은 컷 소리가 한번 나면, 왜 지들이 한숨을 쉬는지... 막상 카메라 앞에서 서면 그만큼의 연기도 못할 놈들이 마지막까지 뻗대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오갔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지긋지긋했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모두 회식을 위해 고깃집으로 향했다. 촬영 내내 계속 비협조적이었던 놈들이 제일 신나게 음식을 ‘쳐먹는’ 걸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날 카드 값이 얼마가 나왔는지는 모른다. 그놈들과 헤어지는 값이라고 생각하고 대차게 카드를 긁었으니.     


지글지글 타는 고기를 앞에 두고, 그는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촬영이 잘 된 것 같냐는 그의 질문에 난 그저 웃었고, 정말 수고 많았다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거지 같은 촬영장을 견뎌준 것만으로도 그는 큰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그는 여린 사람이었다. 오가는 술잔 사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는 나의 말에 눈물을 보였다.      


아, 그때구나!

이제야 생각이 났다.




사실, 그때 그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울었던 그는 기억이 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나도 기억이 안 나는 그날 그 말이 아직까지 그의 기억에 박혀 난 그에게 ‘진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무 일도 없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 사람이 진짜 자신이 누군지 알아준 사람을 떠올리는 건, 세상이 자기를 몰라준다는 생각이 들 때니까.      


서로 연락이 없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으리라. 그 이야기를 시시콜콜 듣지 않아도 예상이 되는 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한테 너무 정 주지 말아요     


내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그는 주변 사람에게 말했다. ‘거봐, 얘가 알아.. 나를.. 날 알잖아 나를’


술자리에서 어지간히 내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으니.      




너무 끔찍해서 도려내다시피 했던 그 시기가 누군가에겐 좋은 기억으로 박혀있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목표한 것을 하나 정도 이루긴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누구든, 그때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그는 조만간 작품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가 어느 자리에 있든 나는 그를 응원한다. 나의 대본을 꼼꼼하게 읽으며 대사를 외우고 외우던 그를 기억하기에... 언젠가 또 한 번 한밤중에 벨이 울리면 나와의 통화를 기억 못 할 그에게 말하고 싶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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