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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다시, 나의 방으로

본가로 돌아오다.



이사 완료되었습니다. 


작업실에서 집으로 떠난 이삿짐 차량이 짐을 모두 본가로 옮겼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곳이 일 때문에 정신없던 곳이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청소를 끝낸 텅 빈 작업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6개월 전, 처음 들어섰던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간 그 공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사랑했었다.      


오후의 볕이 드는 따뜻한 곳이었다. 날이 좋은 날엔 하늘을 짙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노을을 한참이고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벽에 붙어 있던 책상을 굳이 창가로 옮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멍하니 해지는 모습을 즐길 수 있었기에 창을 보고 앉아 하루에 몇 시간씩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참 즐겁게만 느껴졌었다.    


아침, 저녁 걷던 산책길마저 완벽한 곳이었지만... 

6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계약이 만료되어 예정대로 떠나야만 했다.


계약... 쳇.       






이삿날임에도 불구하고 당일 아침까지 마감에 쫓기는 상황이었기에 원고를 넘긴 다음에서야 급하게 이삿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에겐 첫 이사였다. 이삿짐을 싸 본 경험이 없던 나는 용달을 예약하면서 호기롭게 말했다.   

   

“짐은 6박스 정도 됩니다!”     


무경험자의 계산 실수. 

눈대중으로 나온 숫자였다. 대략 여섯 박스 정도면 나의 몇 개월이 모두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분명 처음엔 여행 가방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하나둘 늘어난 물건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열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나온 짐이 박스를 채워도 채워도 줄어들지 않았으니... 열 번째 박스의 테이핑을 넘기며 나는 휘청였고,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한 기사님을 보고 패닉이 되어 책상 위의 물건들을 모조리 팔로 쓸어 박스에 담으며 테이프를 붙여댔다.      


아가씨, 숨 쉬어! 숨 쉬어!


“아저씨, 죄송해요!!!!!!”

“잠깐잠깐!!!"


기사님이 패닉이 되어 테이핑을 하는 나를 막아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이사하면 안 돼, 아가씨! 이 공간은 다신 안 올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빠짐없이 챙겨야 해. 천천히 해요!”      


습,습.............. 하...하...... 


기사님 덕분에 깊게 숨을 고르고 짐을 챙길 수 있었지만... 결국 이삿짐 트럭을 불렀던 No.1 이유인 자전거를 까맣게 잊은 채로 트럭을 집으로 보냈고, 박스 안에 모든 신발과 양말을 넣어서 보낸 탓에 1월 엄동설한에 맨발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까지 참 나다운 이사였다.     






깨끗하다.

본가로 들어서 내방 불을 켜자. 예상했던 대로 방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내 방. 이곳은 깨끗한 것 하나만으로 어제까지 내가 있었던 공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여행이나 출장으로 방을 비웠다 돌아오는 날이면, 부모님은 항상 내 방을 치워두곤 하셨다. 난 지옥행이 정해져 있는 불효녀답게 내방 건들지 마시라, 그냥 두시라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는 통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전에 이삿짐 트럭을 보내며 이번엔 짐 정리를 하지 마시라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이삿짐의 1/3도 이미 정리가 된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무간도 찍고 올 기세로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은 그렇게 웃음이 났다. 정리된 물건들을 둘러보고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참. 
이거 다시 챙기려면
그것도 일인데...



사실, 나에게 계획이 있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난 작업실을 나오며 독립을 계획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어찌 계획대로 진행되겠는가. 본가로 돌아온 이후 한껏 들떠 집을 알아보던 내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들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름 탄탄했다 생각했던 계획들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깨닫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속속들이 일어났다. 허술한 계획과 미래에 대한 낙관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나의 일상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상처 난 자존심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숫자에 문제가 생겼다.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진 통장 앞에서 나는 좌절했고, 호기롭게 집을 떠나려던 난 다시 내 방에 발이 묶였다.

    

그리고 

길고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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