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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엄마의 제안

그녀의 질문에 담긴 의미



사장님 계세요?     



손님의 목소리가 벽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어째 대답의 텀이 길어진다. 안 계신 건가? 나가봐야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부모님의 목소리가 벽을 넘어 들어온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우리 집은 가게+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철물점과 어머니의 부동산 그리고 집이 함께 있는 그런 곳. 우리 집엔 항상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 집을 내놓는 사람, 계약서를 쓰는 사람, 그냥 놀러 오는 사람 등등... 가게의 위치가 또 위치인지라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우리 집에 머물다 갔다. 맥심 커피믹스는 절대 떨어지면 안 되는 필수품으로 항상 400개씩 대량으로 구매할 정도였으니...    

  

내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노라면 가게를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벽을 넘어 들어오곤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이야기...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재밌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방으로 흘러들어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왜?

내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다 소음에 불과하니까.          


난 나의 공간이 참새방앗간처럼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아닌 좀 더 닫혀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글을 쓰면서 독립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독립은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드디어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건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작은 도미노 조각 하나가 떨어지며 그간 세워둔 모든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며, 나는 무너졌다.     

      

불면의 밤들이 이어지고,

침대 위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날이 늘어갔다.        

    

나의 독립 계획을 몰랐던 부모님도 내 모습에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이다. 밤마다 늘어가는 한숨소리가 방문을 넘어가고 있었으니... 부모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언제나처럼 묵묵하게 날 기다려주실 뿐이었다. 그 모습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괜스레 화가 나기도 했다.


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며 원인을 찾았고, 이는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모든 문제는 이놈의 키보드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내게 의미가 없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나의 집과 내 방은 변한 것이 없는데,

나라는 존재가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결국 긴 고민 끝에 난,

글 쓰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그저, 눈만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동그라미, 프린트가 안 되네. 좀 봐줘.”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느릿하게 방문을 나섰다. 부동산으로 나가니 오후의 햇살이 유리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붉은 등을 깜박이며 오류를 말하는 프린터에 다가섰다. 프린터 본체를 열어 안쪽에 껴있는 용지를 제거하자, 붉은 등이 푸른 등으로 얼른 빛을 바꾸었다. 위잉 소리를 내며 밀려있던 인쇄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쇄 마지막 장의 잉크가 조금 흐린듯하여 손을 댄 김에 잉크까지 다시 채워 넣은 뒤 돌아서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너,
엄마 일을 좀 도와주지 않을래?






그 일, 니가 좋아하는 일이냐?     


엄마는 내가 면접에서 돌아오면 항상 이렇게 물으셨다. 대학 졸업 후 자연스럽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난, 사실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 그저 남들 다하는 취업 준비, 나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움직였을 뿐. 그 모습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당연히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회사의 면접을 다녀오든, 엄마는 그 회사가 유명한 회사인지, 월급은 많이 주는지, 복지가 좋은지 이런 것들은 단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 딱 하나,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물으셨다. 엄마의 질문 앞에 몇 번이고 멈칫했지만, 그 당시 나는 마음이 급했다. 적당히 취업해 회사를 다니던 내가 결국 몇 달 되지 않아 퇴사하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왜 그만두었는지 묻지 않으셨다.


처음으로 썼던 글이 무대에 올랐던 때, 아버지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으셨던 엄마는 나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 얼굴을 보고 웃으셨다.          


그랬던 엄마였기에, 엄마가 던진 제안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 또한 수많은 밤을 고민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난,

엄마의 부동산에 취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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