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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그녀의 이사는 비밀입니다 (1)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찾아요


어? 너 여기 왜 있냐?


문을 두 개만 열고 나가면 출근이 가능한 곳.      

출근이란 단어가 민망한 그곳으로 처음 출근한 후 일주일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내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15년이 넘게 부동산을 해왔지만 아침시간에 내가 나와 있는 것도,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엄마는 손님들에게 새로 온 실장님이라고 인사 나누라며 너스레를 떠셨고, 우수한 인재라 비싸게 데려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직 임금 협상도 안 했는데 말이지.      


이사철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부동산 업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침마다 부동산 네트워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새로 들어온 물건을 확인하고, 가게에 부착된 지도를 통해 동네 번지수를 익히는 정도?      


동네를 다양한 숫자들로 익히는 것은 꽤나 신선한 접근이었다.


기존에 알던 그림들을 숫자와 일치시키고, 번지수로 동네 사람들을 연결시키며 나는 새롭게 우리 동네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서울 변두리의 작은 동네라고 생각했던 이곳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그 건물 주인이라고?"

"거긴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었잖아, 또 새로 지어?"

"왓? 그 집 월세가 얼마라고???"


숫자에 한번 놀라고, 건물 주인과 세입자들의 관계, 주인이 몇 번이고 바뀐 건물에 대한 에피소드, 새로 지어진, 그리고 새로 지어질 건물에 얽힌 이야기에 놀라길 반복하며 난 내가 사는 곳을 알아갔다. 방에서 홀로 키보드를 두드릴 땐, 모두 소음이었던 이야기들은 고작 문턱 몇 개 넘어가서 들었을 뿐인데,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을까요?


그녀가 부동산을 찾아온 건, 내가 우리 동네에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스팔트가 여름의 열기를 한창 뿜어내던 날,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담한 체구의 여자는 무채색의 긴팔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혼자 살 집을 찾으며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는지를 물었다.


보통 이사를 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숫자를 먼저 이야기하곤 한다. 보통 숫자로 자신이 볼 수 있는 집이 정해지기 때문. 자신이 가진 숫자와 집이 가진 숫자를 비교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녀는 달랐다. 내일이라도 가능하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원룸을 찾았다.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     


엄마는 재빨리 데이터베이스를 뒤지셨고, 몇 개의 매물을 찾아내셨다. 전화통화 몇 번에 볼 수 있는 집이 확보되었다. 통화를 마친 엄마는 내게 주소를 적은 쪽지를 내미셨다. 내가 가라고? 눈빛으로 물었더니, 그럼 누가 가니? 하는 눈빛이 돌아왔다.     


몇 번 엄마를 따라 함께 집을 보러 간 적은 있지만, 나 혼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방을 선보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이대로 계약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진짜 나의 첫 손님이 될 테니까. 조금 들뜬 마음으로 그녀와 함께 부동산을 나섰다.      


첫 번째 집은 부동산 근처에 위치한 신축 원룸텔이었다. 풀옵션에 주차장까지 완비된 건물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었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완공이 되어 사람들의 일상을 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건물 3층이에요! 완공된 지 얼만 안 돼서 아주..”     


여긴 넘어가죠.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건물 현관 앞에 서기도 전에 그녀는 발길을 돌렸다. 엥? 뭐지? 건물 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몰라 재빨리 주변을 스캔했지만 이 건물을 거절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골목도 깨끗하고, 다른 곳에 비해 지하철과도 가까운 편인데.. 바로 앞에 편의점도 있고, 건물 내엔 엘리베이터도 있는지라 혼자 살기에 괜찮은 곳인데? 허나 이런 설명을 덧붙일 시간도 없이 그녀는 매몰차게 돌아섰고, 당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집으로 향해야 했다.       


다음 집은 5층에 위치한 원룸. 안타깝게도 엘리베이터가 있지 않은 탓에 5층을 올라가며 헉헉대는 나의 저질체력과 마주하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방은 꽤나 쾌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창문에서 오후의 햇살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밝고 평수도 꽤 넓은 원룸이었다. 여자는 집으로 들어서지도 않고 현관 앞에서 집을 휙 둘러보고 또,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잠깐만요! 화장실은 안 보세요?”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거야? 그냥 쓱 보면 끝이야?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구먼. 난 그녀를 대신해서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의 물을 틀어보고, 변기의 물을 내렸다.      


“수압이 좋은지, 물은 잘 내려가는지. 그런 거 꼼꼼하게 봐야 해요.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인데~”      


일 시작한 지 좀 되었다고 베테랑 흉내를 내며 말을 꺼냈지만 그녀는 답이 없었다. 뭐지? 이 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집을 보러 갔고, 그녀의 반응은 비슷했다.      


오늘은 망했구먼...


보여준 집이 다 마음에 안 든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동산으로 돌아온 그녀는 네 번째 집의 계약을 원했다. 정말? 왜? 네 번째로 봤던 집은 가장 여건이 좋지 않은 집이었다.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찰만한 좁은 공간에, 화장실도 다른 곳들보다 좁고 수압이 약했다. 게다가 해가 잘 드는 집도 아니었는데... 여러모로 다른 집보다 열악해 보이는 집이었지만 그녀는 그 집을 원했다. 당장 계약을 하고 싶어 했지만 집주인이 지방 출장인 관계로 다음 주에 계약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그녀는 부동산을 떠났다.      


“이상하다... 두 번째 집 조건이 훨씬 좋았는데!”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는 날 보고 웃으셨다. 집을 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크게 이해되지 않았다. 방도 꼼꼼하게 보지 않았던 그녀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집을 보고 있었을까.  


나의 의문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해소가 되었다.

어둑해진 거리를 발견하고 부동산을 닫을 준비를 하던 중, 한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기, 혹시 오늘 젊은 여자가 방 구하러 오지 않았나요?”     


그 여자를 찾는 것 같았다. 내가 답을 하려는 순간 엄마가 조금 빨리 입을 여셨다.      


오늘?
오늘은 방 본 손님은 없었는데!


엥?

엄마, 그건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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