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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그녀의 이사는 비밀입니다 (2)

가정폭력과 스토킹에 대처하는 방법


오늘?
오늘은 방 본 손님은 없었는데!


고개를 홱 하고 돌려 엄마를 향해 동공을 키워보았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셨다. 순간 나도 속을 뻔했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엄마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몇 초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마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듯한 날 선 눈빛을 느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내 표정이 얹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청소를 시작하며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딱 보기에도 훤칠한 키의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그냥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머릿속이 뒤엉킬 무렵 그는 엄마의 얼굴에서 거짓말이 아님을 판단했는지 금세 세상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실례했다는 말을 남기고 부동산 문을 나섰다.

      

왠지 모르게 멈춰있던 숨이 훅하고 쏟아져 나왔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질문을 던지려는데 이번에도 나의 질문보다 엄마의 질문이 빨랐다.     


"그 여자, 첫 번째 집 안 봤다고 그랬지?"     


첫 번째 집은 보지도 않고 돌아섰고, 나머지 집들도 대충 보더라는 나의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간의 고민 끝에 수화기를 드셨다.


"오늘 왔던 부동산이에요. 잠깐 통화 가능해요?"




     


다음 날, 여자가 부동산을 찾아왔다. 어제와 같은 긴 팔 옷을 입고 있었다. 커피를 탄 종이컵을 내밀자 컵을 받기 위해 뻗은 그녀의 손으로 인해 소매가 올라가며 소매 속에 감춰졌던 붕대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긴 연애 끝에 했던 결혼이었다고 했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고 한다. 한 번으로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폭력이 두 번, 세 번이 되는 건 금방이었고, 헤어짐을 생각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 바로 인연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스토커가 되어 나타난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봤지만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고 말하며 그녀는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곳이 되어갔을 테지... 그랬기에 또 한 번 도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던 기록은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그녀에게 이전 전입신고 시 동사무소에 주소 비공개 신청을 했었는지를 물으셨다. 주소를 비공개할 수 있다고? 그녀도 나와 같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법이 간소화되어 경찰 신고 기록이나 긴급전화센터의 상담기록이 있다면 예전보다는 신청이 쉽게 될 것이라며 다음 전입신고 때는 꼭 주소 비공개 신청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하셨다. 그녀는 잔뜩 커진 동공으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잠시 생각에 잠기시며 조금 길어진 정적에 그녀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래... 아무래도 이 동네로 이사 오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그녀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부동산을 나가려는 순간, 엄마가 말을 꺼냈다.


 

보여주고 싶은 집이 하나 있는데...
한번 봐볼래요?






아저씨, 차 빼요!
여기 주차하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앙칼진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우리가 찾은 곳은 부동산 근처. 도착해보니 건물 앞에선 웬 승용차 한 대와 아주머니가 대치중이었다. 거참 잠깐이면 되는데 너무하시네. 너무 하긴 뭐가 너무해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높은음을 담은 말들이 어지럽게 오가던 중 엄마를 발견한 아주머니가 반가움에 손을 흔드셨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동네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다. 몇 년 전, 이혼 후 처음 마련한 집을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으로 매일 아침마다 건물 안팎으로 쓸고 닦는 것은 기본이고, 건물 앞에 잠시 주차된 차를 보는 것도 No,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당연히 No, 느낌이 수상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112를 누르시는 분이셨기에 경찰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그 무섭다는 중·고딩들 무리도 학을 떼며 멀리하는 그런 분이셨다.


마지막까지도 차주에게 차를 빨리 빼라고 두어 번 더 소리를 치시곤 아주머니는 우리를 3층으로 안내하셨다. 얼마 전 도배를 싹 새로 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아주머니는 문을 여셨다. 너무 넓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공간.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보이는 해가 잘 드는 공간이었다. 아직 들어온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는 이 집에 들어올 시 지켜야 하는 수칙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주머니... 그래 가지고 세입자가 들어오겠어요? 난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잔소리들이 그녀에겐 그다지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집안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부동산으로 돌아온 엄마는 말했다.      



집주인이 좀 피곤할진 몰라도,
그 집만큼 안전한데도 없을 거예요.



엄마의 말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그녀에게 한번 생각해보고 연락 달라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자신의 짐을 담은 캐리어를 가지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엄마에게 물은 것이 있다. 그 남자가 부동산에 들어왔을 때, 왜 방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했었냐고.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잘 모르겠다며 그냥, 느낌이 왔다고 하셨다.


느낌이라...


모든 촉은 데이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함께 하셨을까. 엄마의 일터는 내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 짐작할 수 없는 곳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작 문을 두 개를 열고 나가는 곳에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있었다.


그녀가 첫 번째 집을 보지도 않은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 후,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 이유를 차마 묻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명확한 이유를 아는 것보다 사람들의 어떤 행동엔 가늠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먼저란 결론에 도달했고, 내겐 그걸 알게 된 것이 중요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더운 계절을 넘기며 난 부동산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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