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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Sep 21. 2022

달리기에도 권태기가 있더라.

30분 달리기 프로그램 이후로 정처 없이 방황하던 초보 러너의 런태기

권태기.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권태감이라고도 한다. 




오래된 연인들 사이에서 또는 부부들 사이에서 찾아오는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을 우리는 '권태기'라고 부른다. 


권태기라는 감정의 최초의 모습은 분명 설렘이었을 텐데,


왜 인간에게는 권태기라는 감정이 늘 그렇듯 찾아오는 걸까?


익숙함에서 비롯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일려나?


그렇게 표현을 해야 한다면, 우리 인간사 너무 슬픈 현실 아닌가.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권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권태기를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이겨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슬픔의 연속일 수도?




우리는 온갖 분야에 '태기'를 갖다 붙이곤 한다. 


물을 붓고, 불을 세게 켜놓고 조금만 기다리면 금세 뜨거워지는 냄비 마냥 뜨거웠던 연애 감정이,


일순간에 식어버렸을 때의 권태기. 



식욕은 여전한데, 먹고 싶지 않을 때에는 밥태기.


책을 읽어야 하는데, 부쩍 책과 거리를 두게 되는 책태기. 


글을 써야 하지만 도무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쓰는 과정 자체가 힘들고 지쳐감에 찾아오는 글태기.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 뒤에 태기라는 글자만 갖다 대면 뭐뭐 + 태기의 완성이다. 




런태기.


달리기의 맛을 본지도 얼마 되지 않아 급격하게 런태기가 찾아왔다. 


30분을 달려내고 느꼈던 그 쾌감과 성취감을 뒤로하고 찾아온 나의 런태기.



런데이 앱과 함께 8주간 정말 꾸준하게 달렸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8주 차의 모든 과정을 끝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번졌을 테지. 



30분을 달리고, 그다음 달리기까지 특별한 징후는 없었다. 


늘 달리던 것처럼, 러닝화를 고쳐 메고 공원으로 나갔고 듬성듬성 달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도 발을 굴려 공원을 달렸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달리기가 귀찮기 시작했다. 


달리기가 귀찮은 것은 런데이와 함께 하는 8주 동안에도 수없이 느꼈던 감정이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러닝화를 신고 공원에 나가 뛰면 사라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러닝화를 신기조차 싫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위해 뛰는 것이고,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사실 런데이 앱과 함께 하는 8주는 그야말로 런데이가 시키는 대로 '뛰면' 됐었다. 


달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쉬는 시간이 줄어들며 몸은 힘들었지만 방향 자체는 분명했다. 


방황할 틈이 없었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내가 뛰는 이유가 명확했고 그래서 꾸준할 수 있었다. 




30분을 달렸으니, 1시간을 달리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다음 목표 설정에 실패했다. 


말 그대로 30분을 달리는 데 성공했으니, 5km를 뛴다던지, 1시간을 달린 다던지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면


나의 런태기는 어쩌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난 목표 설정에 실패했고, 30분을 달리고 난 뒤 멍하게 멈춰 서버렸다. 




돌이켜보면, 30분 달리기 이후의 목표 설정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달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리고 런데이 앱을 통해 8주간의 목표를 달성을 하게 되면


달리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줄 알았다. 


5분도 못 달렸던 사람이 30분을 달려냈는데. 


과거의 나보다 6배의 성장을 하게 되었으니, 달리기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의 자만이었고, 교만이었다. 




5분 이상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30분을 달리고, 1시간을 달리고, 10km 이상을 뛰는 분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많이 뛰는 사람들은 안 힘든가?'라는 생각 말이다. 





주변에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는 분이 계셔서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달릴 때 안 힘드시냐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뛰실 수 있냐고. 


나와는 다른, 마른 체형의 분들이니 더 잘 뛰는 것이고, 


또 힘들 때 수월함을 느끼시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힘들죠.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뛰고 난 뒤에 오는 그 느낌 아시잖아요. 그게 너무 좋아서 뛰는 것 같아요."



1시간을 뛰고,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는 분도 힘들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달리기는 편할 수 없는 운동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달리면서 편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왜 달리는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무엇을 위해 나는 달렸을까?


왜 나는 달리기를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달리기는 편할 수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체중 감량이라는 뻔하디 뻔한 답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달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30분 달리기를 마치고, 잠깐의 방황, 잠깐의 런태기를 겪은 나는 


지금도 꾸준하게 달리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그냥' 뛰고 있다.


그리고 달리며, 내가 달리는 이유에 대해 찾고 있다. 





지금 나의 달리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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