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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Nov 04. 2023

새벽에 응급실 행! 입덧이라는 공포의 그림자...

[본격 육아 에세이] 쌍둥이 키우고 있습니다. (7)

격주마다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쌍둥이들은 매일매일이 이벤트라는 말이 있다. 아가들이 잘 크고 있는지 산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사를 계속 받았다. 다행히 산모와 아가들 모두 건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한 이벤트가 찾아오지 않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아내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냄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을 하기 시작했고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들도 입에 대지 못하기 시작했다. 맞다. 입덧, 바로 그 녀석이 찾아온 것이다. 임신 중 입덧은 빠르면 9주 정도에 찾아온다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다, 늦게 오기도 하고 빨리 오기도 한다.) 내심 우리에겐 늦게 찾아오거나 아예 찾아오지 않길 바랐는데(참고로 우리 엄마는 입덧이 없으셨고, 내 동생(여자)도 심한 입덧은 없었다.) 가장 빨리 찾아온다는 9주쯤에 아내에게 입덧이 찾아와 버렸다. 아내는 냄새에 민감해졌고 음식에 예민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입덧이 시작한 후로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몸상태는 점점 나빠져갔다. 입덧이라는 게 어떤 때는 좋았다가 어떤 때는 급격하게 나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내는 더욱 힘들어했다. 조금이라도 입덧이 좋아졌다고 생각해 당기는 음식을 먹고 나면 바로 화장실 행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속이 괜찮은 상황에라도 먹지 않으면 도통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계속되었고 그 이후로 또 화장실을 가거나 심한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렇게 입덧의 악순환이 돌고 돌더니 일이 터져버렸다. 




입덧을 하면서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었던 아내가 웬일인지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 날이었다. 임신 10주에서 11주 차 정도였다. 오랜만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데 안 먹을 수가 있을 수 있나. 아내와 오랜만에 근교로 나들이를 나온 김에 부대찌개를 먹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식사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 아내도 오랜만에 정량의 식사를 마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부부는 이대로 입덧이 점점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잠자리에 들었다. 


[으으으으엑]


모두가 잠이 든 새벽,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내였다.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안방에 딸린 화장실로 갔다. 아내가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꽤 오랜 시간 동안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보. 괜찮아? 무슨 일이야?]


딱 봐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모습이었다. 


[아까 먹는 거 다 토했어... 그리고 계속 헛구역질이 나오고 초록색 신물이 나오네...]


괜찮은 줄로만 알았던 아내의 입덧이 괜찮기는커녕 더욱 심한 상태로 만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초록색깔의 토사물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 둘 모두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저녁 10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다니고 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고 응급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산부인과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소위 말하는 입덧주샤를 놔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입덧주사는 사실상 영양 수액이라 증상을 조금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했지만 아내의 상태는 그것보단 심각해 보였다. 산부인과에서는 결국 상태가 심각하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봐야 한다고 했다. 선택지는 두 개. 산부인과로 내원하여 입덧 주사를 맞던지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서 응급 진료를 받던지였다. 하지만 산부인과에 간다 한들 입덧 주사를 맞고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결국 대학병원을 가야 하는 건 변함없었다.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지는 아내를 보며 어차피 대학병원으로 가야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여보세요? 거기 OO대학병원이죠? 지금 임신을 한 아내가 입덧이 심해서 몸이 좋지 않은데요...]


현재 상황에 대해 자초지총을 설명하고 관련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병원에서는 일단 응급실로 와서 대기를 해야 하는데 대기자가 많아 많이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응급 진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나오거나 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고 서둘러 옷을 입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약간은 어이가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입덧은 임신 중에 생기는 증상일 텐데 이런 중요한 상황에 산부인과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입덧 주사 밖에 없다니... '임신을 했다고 산부인과가 능사는 아니구나'라는 배움을 안고 그렇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토요일 저녁의 대학 병원 응급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와 아내는 깜짝 놀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내는 지금 몸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게다가 임신 중인데 응급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뒤로 어떻게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다행히 임산부는 조금 일찍 진료를 봐주실 수 있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임산부라는 특혜(?)를 받아 순서를 조금 앞당기긴 했어도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앞에 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자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황 OO 환자분? 임신하셨다고요? 어디가 안 좋으신 거죠?]


왜 이리 오래 걸렸냐고, 빨리 봐달라는 말 따위는 할 수조차 없이 지금이라도 와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는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의사 선생님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신 10주~11주 정도고, 입덧이 심해서 헛구역질을 자주 하는데 초록빛 토사물이 나오면서 속이 너무 아파 왔다는 설명을. 


[네, 알겠고요. 저희 쪽에서도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면 몇 가지 검사를 하셔야 해요. 괜찮으실까요?]


검사? 무엇이든 해야지.


[무슨 검사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일단 누가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모에게 아니면 아기들에게 문제가 있는지 피검사 그리고 MRI 검사까지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MRI 검사는 그럴 리 없겠지만 아기들에게 영향이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검사를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해달라고 했다. 비급여 적용 항목이라 검사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아기들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 못했는데 갑작스레 들려온 아기들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선뜻 MRI 검사를 선택하지 못했다. 아내는 여전히 좋지 않은 몸 상태였고 나에게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달라고 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기들에게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몸상태였기 때문에 MRI 검사까지 모두 받기로 했다. 

검사에 대한 결정을 마치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검사를 모두 받았다. 


'제발... 아내와 아기들 모두에게 문제가 없길...'


검사 결과를 갖고 의사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황 OO 환자님? 검사 결과는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너무 못 드셔서 그럴 수도 있으니 일단 수액 맞으시고 집에 돌아가시면 입에 잘 맞는 음식들로 식사를 최대한 해보게끔 노력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수액 맞고 귀가하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의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었다. 검사를 받으며 힘들어하던 아내를 보며 고생했다고, 수액 맞고 조금 쉬다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약 두 시간에 걸쳐 수액을 맞고 쌍둥이 임신 이후 첫 번째 큰 이벤트를 마쳤다. 쌍둥이는 매일이 이벤트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한 첫 번째 에피소드였다. 이때 시간은 새벽 3시 30분 즈음이었다.


계속되는 헛구역질 때문에 봉투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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