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常한 可逆反應>TEXT로 본 李箱과 프랑스 女人 - 1
소설<12월12일>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죽으나 사나 고향을 한번 뛰어나가 볼 테야……”
선언하는 이상의 갈망이, “직선이 원에 갇히는”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혀 포기하는 그의 절망이,
시(詩)<이상한 가역반응>을 통해서 확인된다.
직선과 원의 문제는 자신이 주어진 굴레를 뚫고 싶다는
열렬한 의지의 표현이 이루어져 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선이 OO을 살해하였는가”라는 의문문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고 판단된다.
任意ノ半徑ノ圓(過去分詞ノ相場)
임의의반경의원(과거분사에관한통념)
‘임의의 반지름으로 그린 원’이란 그 중심에 있는
자신(이상李箱)을 둘러 싼 굴레에 대한 표현을 한 것이며,
과거에 이미 벌어져 있던 굴레를 표현하기 위하여,
과거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원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자신을 둘러싼
‘벽’과 ‘울타리’로서의 원을 상징한다.
圓內ノ一點ト圓外ノ一點トヲ結ビ付ケタ直線
원내의한점과원외의한점을연결한직선
‘원내의 일점’-원안에 갇힌, 조선(경성)에 갇힌-
이상(李箱)자신으로 볼 수 있고,
이상 자신이 설계하고 싶은 건축물로 볼 수 도 있다.
무엇이든지 원 밖에 있는 일점과 상대하게 된다.
안 과 밖의 두 일점 간에는 긴장감과 함께 대척점이
되는 공간이 설정된다.
용어 직선(直線)은 바로 두 점을 연결한 직선이다.
‘원외의 일점’-원 바깥에 있는 일점은 자신이 향하고자 하는
목적지이자, 귀향점이다. 그렇다면, 두 점을 이은 직선은 무엇일까?
아마도 외부의 일점으로 향하는 관심,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
새로운 디자인이 펼쳐지는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건축물,
또는 새로운 건축세계로 향하는 감각적 폭발 등
이상의 세계를 향한 열망을 대변해 주는 시구(詩句)이다.
이상(李箱)은 『조선과 건축』을 계속 구독할 뿐만 아니라,
잡지편집에도 일정기간 관여하였다.
그 잡지에는 현대건축의 거장(巨匠)들인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프랑스의 르 꼬르뷔제 그리고
독일의 미이스 반 델 로에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신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상은 1931년 창간된 일본 문화잡지『세르팡』도 읽고 있었다고 하니,
외국과 일본의 고급문화에 대한 정보와 감각은 뛰어났을 터이며,
경성(서울)현실과의 괴리는 엄청 났을 것이다.
이상이 태어난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금지되었던
외국으로의 유학이 1919년 3.1운동 이후,
1925년에 제한적으로 허락되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국한되었고,
미국이나 유럽으로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상에게는 가족과 결부된 현실로서 어려운 일이었다.
‘원내의 일점’이 ‘조선의 이상(李箱)’인 경우,
이상과 대치되는 외국의 건축가(원외의 일점)를 향한
이상(李箱) 자신의 관심(직선)이 어느 건축가와 건축물로 향하였는지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만약, 원내의 일점이 자신이 설계하고 싶은 건축물인 경우,
이상의 건축물과 대치되는 외국의 건축물(원외의 일점)을 향한
이상(李箱) 자신의 관심(직선)을 가리킨다.
二種類ノ存在ノ時間的傾向性
두종류의존재의시간적영향성
(ワレワレハコノコトニシイテムトンチヤクドアル)
(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
이승훈은 ‘二種類의 存在’란 ‘圓’과 ‘線’으로 표상되는 존재,
이상의 시에서는 원이 여성, 직선이 남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두 종류의 존재는 여성과 남성.” 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두 종류의 존재’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적 영향성 또는 경향성’이다.
남녀의 문제라면 시간적 차이에 의한 다른 면보다
상대적 또는 절대적 차이 등이 거론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종류의 존재’가 ‘두 건축(가)의 존재’로 표현된다면,
한국의 건축가 지망생이 프랑스의 건축가에게 모던 건축을
배우고 싶은 욕구로서 표현된다면, 이는 구미(歐美)로 유학을 가야 하는 일이다.
이상이 가족을 놔두고 혼자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백부 아래서는 혹시 그랬을지 몰라도, 친부와 가족의 존재가
그를 편안한 초기 서구 건축유학생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두 종류의 존재가 ‘두 건축물 존재’라면,
프랑스(, 독일 또 미국의) 근대건축 문화와 한국 근대건축 문화 사이의
문화적 차이나 시간적 지체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
최소한 두 종류의 건축물들이 지니는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1925년 이후 한반도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서구의 합리주의 건축에 대하여
이상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는지 하는 점이 관건이다.
直線ハ圓ヲ殺害シタカ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제약을 뚫고 나갔으면 하는 열망의 표현으로
이 시에서 제일 중요하며, 이상 자신도 이 시구(詩句)에
활자를 달리해서 고딕으로 강조했다.
결국 1936년 10월 17일 동경으로 뚫고 나가기는 했으나,
동경에서 병으로 쓰러진다.
달리 해석하면 1937년 4월 '직선'은 도리어 그 동심'원'에 피살되었다.
궁금한 점은, 누구를 만나려고, 무엇을 보기 위하여
또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도일(渡日)하였느냐는 것이다.
무모하기도 한 도일(渡日)의 정신적 배경으로
무엇인가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동경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동경에서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새 출발점으로서 건축과 문학을 동시에 새롭게 조명할 단서가 된다면,
그리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는 (드러내지 않은) 새로운 꿈을 꾸었을 것이다.
詩 내용 중에서 강조되어 중요한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直線ハ圓ヲ殺害シタカ)라는 질문의 의미는,
이상(직선)이 주변(원)을 이겨내고 승리했는가?- 즉, 탈출하였는가를
묻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상(직선)이 총독부 등
주변(원)에 살해되지 않을까(좌절하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상이 자신의 신변 안전에 이상을 느낀 것을
상징적으로 용어 ‘살해’로 표현했다.
이상이 스스로 자신에게 닥칠 직접적, 또는 간접적 살해가능성을
미리 인식했다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원(총독부, 일본)이 직선(이상)을 살해하였기”때문에
이상이 먼 일본에서 스러졌다고 본다.
건강으로 이상이 총독부를 스스로 그만둔 것 이전에,
총독부에서 이상을 어떤 이유를 핑계로 쫓아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제목에 왜 “이상(異常)한”을 붙인 것일까?
이상(李箱)이 벌인 어떤 행동에 예상 치 못한 역반응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상이 관심을 갖은 프랑스 건축 등 외국건축에 대한
답사나 조사여행 등 관심에 대한 총독부 상사의 판단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뜻이다.
또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예정에 없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고 본다.
만약 1931년 6월 5일에 이상이 프랑스 여인을 몰랐다면,
이때에는 프랑스 여성보다 외국으로의 답사나 조사여행 등에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며,
만약 그 이전에 여성을 알고 있었다면 여성에 대한 감정도
적절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결국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고 고민하고 자탄하면서
(돈이 많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랑스 현대건축을 배우고 르 꼬르뷔제를 만나려 프랑스로,
일본건축가들이 꼬르뷔제를 소개한 대로, 또는
이상적 여인으로 생각한 프랑스 여인에게로 달려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아직<이상한 가역반응>에서는 외국으로 향하는 원동력에 대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서 프랑스 여자라는 근거가 희박하다.
연작시(連作詩)“파편의 경치”(破片의 景色)에서 그 당사자가 드러난다.
미국의『건축레코드』(AR:Architectural Record, 1910년 창간)잡지 등이
배에 실려 3-5개월 걸려 일본을 거쳐 경성(서울)에 도착하여
조선총독부 자료실 서가에 꽂히는 일정에 따라,
샤롯데 페리앙 양이 언제 잡지에 소개되었느냐에 따라
이상이 언제 그녀를 알았느냐로 연결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