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원 1지망은 정말 가고 싶은 학과, 가고 싶은 학교를 썼다. 나머지 5개 지망은 다 철학과를 썼다. 내가 느낀 입시의 힘듦 정도가 100이라면 60은 철학과를 준비하는 데에 있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못 견뎠다. 철학과는 원하는 대학에 이름이라도 넣어 볼 발판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진짜 철학과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1지망이 경쟁률 높은 학과니까 가장 높은데 하나 던지고 나머지는 철학으로 돌린 거지.
선생님은 나에게 1지망 학과와 철학과가 같이 있는 대학교를 추천하셨다. 철학과 커리큘럼이 괜찮은 대학교 목록을 가져갔을 때 선생님은 나를 이상하게 보셨다.
그 대학은 다른 과 넣어도 충분한데 왜 철학과를 넣니?
철학이 하고 싶어서 철학과를 넣었다. 말리는 선생님한테 바득바득 고집을 부려 다섯 군데 철학과를 넣었다. 친구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철학과를 쓴다고 하면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다. 짚고 넘어가기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담아두기만 했다.
나중에 철학과에 원서를 넣은 친구를 찾았다. 얘라면 내 심정이 어떤지 알겠구나. 친구도 내가 철학과를 지원했다니까 동질감이 들었나 보다. 친구는 동지를 찾았다며 웃다가 물었다.
그래서 너는 원래 어느 과 가고 싶었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과의 구체적인 입시 이야기는 피했다.
철학은 마침표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철학과에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는 데 있어서 평생 가져갈 인생관 하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고 심오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한 줄이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일관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장래희망도 어렴풋이 가지고 있는 나에게 답을 줄 것만 같았다. 배우고 싶지 않은 과목을 공부하느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4년을 보내겠다. 그리고 철학과에서는 생각에 빠져 있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말은 수험생활 내내 속에서 울렁거리고만 있었다.
위에서 철학 이야기를 신나게 했지만 나는 철학과에 가지 않았다. 수험생활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의 시선은 철학과를 포기함과 동시에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스스로가 나를 얽맸다.
철학이 하고 싶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데 다른 과에 진학하게 되니 정말 철학과를 발판삼아 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들이 수군거려도 할 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1지망 대학교에 붙었음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들에 치여도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남들이 시들해지자 내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가장 우울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에게도 티는 내지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야 나의 수험생활을 제 3자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가졌던 온갖 생각들과 걱정을 쓸데없는 것이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 흔들린 것이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였던 것 같아 부끄럽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런 걱정이 찾아들 날이 있을 것이다. 내 앞길을 찾는 일은 생각 외로 사적인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눈에 모나 보이면 무작정 정으로 때리고, 이상한 취급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길을 찾는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닐지라도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비록 내가 있는 곳이 철학과는 아니지만, 철학은 항상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표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철학이다.
수험생활 이후, 나는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에 대한 철학을 시작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