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드캠퍼스 Nov 14. 2017

23년, 열등감의 역사

어렸을 때 왼쪽 팔꿈치를 크게 다쳤었다. 다쳤을 때, 흉터는 없었지만 팔이 휘어져 있었다. 친구들이 휜 팔을 가지고 놀렸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때, 팔 교정 수술을 받았다. 팔의 휘어짐은 고쳐졌지만 큰 흉터와 철심이 생겼다. 두 번째 수술을 받기 전 고민했었다. 어떻게 하면 왼 팔의 놀림을 안 받을 수 있을까. 팔로 할 수 있는 무언가 하면 애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농구였다.



축구처럼 거칠고 사람들이랑 몸 부딪히는 건 싫었다. 농구는 조금 덜 거칠어 보였다. 해보니까 농구도 많이 다치고 거칠기는 했지만. 농구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연습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랑 시합을 할 때면 타박을 듣곤 했지만 친구들이 농구할 때 자주 끼곤 했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기는커녕 타박만 늘어갔다. 실력이 안 느냐, 공도 제대로 못 잡느냐 하고. 왼 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공이 잘 안 잡힌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변명하면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놀린 녀석들을 이기려고 시작한 건데 변명하면 지는 것 같았다. 몇 번 웃고는 방과 후에 학교에서, 집에 가서 더 연습했다. 당시 아침 자습이 있었는데 학교 가기전에 5시 6시에 일어나서 집 앞에 농구를 하러 갔다.


드리블을 하고 슛을 연습했다. 왼손은 조금만 연습해도 쥐가 났다. 그래도 했다. 학교가 4시에 끝나면 또 했다. 또 하고 저녁 먹고 또 하고. 야자하고 집 가는 길에 짧게 또 했다. 가끔 새벽이나 밤 늦게 하면 근처 주민들이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하고 나니까 실력이 늘어갔다. 친구들이랑 게임할 때도 나름 골도 넣고 활약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학교 체육대회 우승도 했다. 우승할 때는 정말 인간승리를 한 기분이였다. 특히 놀리던 그 녀석과 같은 반이 돼서 우승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열심히 했어도, 덜 열심히 했어도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대회를 나가거나 할 실력도 안 된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으면 잠깐 나가고, 동네 공원에 가서 아저씨들이랑 고등학생들이랑 하는 게 다이다.


농구 실력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맨날 하는 연습은 슛이랑 혼자 하는 드리블 밖에 없었으니까. 잘하는 사람들이랑 연습할 기회가 없었고, 배울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그 점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아깝지는 않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야자하고 아침에 나가서 농구하고 씻고 학교를 갔다. 지금은 그렇게 부지런 하지도 않고, 그 때만큼의 의욕도 없다. 그래도 그 기억과 경험이 아직 남아있다. 왠지 모르지만 난 하면 할 수 있는 녀석이야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그냥 흉터가 있어도 반팔을 입는다. 누가 물어보면 17대 1로 싸우다가 긁혔다고 말하곤 한다. 열등감의 근원이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160에60인 통통한 아이였다. 아이들의 좋은 놀림감이였고, 부모님도 나를 두고 장난치기도 했다. 그만 먹어라 돼지냐 등의 말을 들으면 있던 자신감도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런 말들이 싫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락하고 줄넘기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몸무게는 그대로였지만 키가 10CM가량 커졌다. 사람들은 몸무게가 키로 갔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운동했던 기억과 경험이 남아있다.      


고등학교 때 내신이랑 수능이랑 어떻게 반영되는 줄도 모르고 2학년 말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었다. 나름 열심히 해서인지 학교에서도 높은 등수를 받게 됐다. 이름만 알고 있던 여자애가 “걔? 걔는 열심히 해도 00정도밖에 못 가.”라고 했었다.


그 여자애를 이기고 싶었다.


그 여자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성적은 꽤 올렸으니 잘 풀린 일 같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열등감의 역사였다. 


초등학교 때는 통통한 체형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팔과 성적 때문에, 대학교 때는 조용한 성격과 평범한 외모 때문에. 군대에서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욕도 먹었다. 피해 안 주고 가만히 있어도 괜히 한 소리 듣곤 했다. 그래서 살을 뺐고, 농구를 시작했고, 렌즈를 끼고 옷도 사 입고 꾸몄다. 친구들이 가끔씩 ‘사람 됐다’고 말하곤 한다.


하나 둘씩 극복했던 경험들이 쌓이자 이제 어떤 일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대학생으로서 못 해본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가끔 보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 일들도 많다. 그래도 어찌어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고등학교 이학년 삼학년이 되면 대학입시 때문에 자존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대부분 가장 힘든 시기를 말해보라고 하면 재수 때나 고등학교 삼학년 때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가는 트라우마일 거다. 공부든 실기든 수시준비든 무언가를 열심히 한 기억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신감의 원천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힘들다고 생각해도 돌이켜보면 노력했던 자신이 자랑스럽게 남은 기간 시험 마무리 잘 하고 원하는 결과 얻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였으면 합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학 고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