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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05. 2018

중등교육과정 내 수준별 교육에 관한 단상

공교육의 장에서 성적이라는 정량적 지표만으로 학생들의 우/열을 나누어 개별 학생들에게 좌절이나 열등감을 심어준다면, 그것을 과연 바람직한 교육이라 할 수 있는가?



고교시절,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한 교육방식이 바로 수준별 수업이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는 영어/수학 과목에 한해서 상위 10%는 A반, 하위 5%는 D반으로  [A, B, C, D 반]을 나누어 수준별 이동수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나를 포함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 제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사실 수준별 수업은 꽤 많은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며 또 그만큼 논란이 많은 제도이기도 하다. 수준별 수업의 주 목적은 크게 개별 학생 눈높이에 맞춘 효율적인 학습관리, 상급반 진급으로의 경쟁심리를 자극한 학습동기 부여 두 가지이다. 수준별 교육을 지지하는 논거를 들어보면 확실히 학업 능률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말, 현실적으로 기대하는 효과들을   있는 것일까? 


일단 수준별 수업이라 하더라도 교사 한 명 당 20-3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배정되는데, 현실적으로 학생들 개개인을 일일이 지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분류해 놓았기에 1등급 학생들과 5등급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서 같은 강의를 듣는 것보단 수업의 난이도를 수월하게 조절하여 보다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순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수준별 수업이라는 게 정말 제대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D반을 제외한 세 개의 클래스를 모두 수강해봤는데, 세 분반의 수업내용에 있어 어떠한 수준차이도 느끼지 못했었다. 수학 같은 경우는 수준별 수업을 활용하여 학생들 눈높이에 맞춘 체계적인 개념학습 등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교수 방법에 있어 “(A반은 심화문제까지 풀지만) B반은 이 문제까지만 풀어보자.” 하는 식의 차등만 두었다.



그런데 수업의 질적 측면 같은 걸 다 떠나서 가장 큰 문제는 수준별 수업이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수준별 수업은 상급반이 아닌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학습 동기(상급반으로 진급하는 것)를 부여하기보단, 상급반에 들지 못한/상급반에 있다가 떨어진 학생들에게 박탈감과 좌절감만을 심어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생각건대 그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수준별 교육은 내신 3등급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대평가 제도 하에 줄세우기 식으로 실시된다. 그러니 개인의 절대적인 학업 성취가 우수한 편이라고 하더라도, 90명의 절대다수는 '나머지' 전락한다. 무엇보다 A클래스는 전체 성적 10% 이내의 학생들만 들 수 있는데, 즉 100명의 학생이 있다면 그 중 10명만이 A클래스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0명은  다른 일이 없는  부동의 10등이다. 10%라는 계층 내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지 언정 그 밖으로 튕겨 나가는 일은 거의 드물다. 그 견고한 벽을 파고 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벽을 파고드는 과정에서도 불가피하게 A반에 있는 누군가를 떨어뜨려 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반의 멤버가 교체될 때마다 누가 떨어지고 / 누가 올라왔는 지가 보인다는 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 개인은 무엇을 느끼나. 올라온 학생은 노력에 대한 성취감? 떨어진 학생은 '더 열심히 해서 다시 올라가야지' 하는 투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경쟁사회에서 짓밟고 짓밟히는 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구조라지만, 어쩐지 시험이 끝나고 반이 바뀔 때마다 참 오묘하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기숙사제도였는데, 이 기숙사 제도마저 수준별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운영되었다.* 지금은 그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지만, 내가 재학하던 당시 나의 모교는 일반 기숙사와 상위 5% 학생들만 수용하는 기숙사로 나뉘어 학생들을 배정했었다. 의도가 어떠했든지 간에 이는 학생들을 '상위5%'와 '나머지 95%'로 이분화 시켰다. 누군가 내게 "결국 네가 나머지 95%에 속했기 때문에 열등의식 가진 거 아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 제도는 객관적으로도 부조리한 요소들이 많았다. 학교 측에선 효율적인 학습관리를 위한differentiation이라고 했으나 내 생각에 오히려 그건 discrimination에 가까웠다.
 
   우선, 해당 기숙사생인 상위 5%에게만 방과후 특별 심화 학습ㅡ그 내용이 유익했든 유익하지 않았든 이건 교육의 기회 균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ㅡ을 시켰다. 또한 야자시간엔 그 친구들은 기숙사 자습실에서, 나머지는 교실에서 자습을 해야 했다. 심지어 한 교사는 수업 중에

" OO관(기숙사 이름) 아이들은 명문대에 진학할 친구들인데 너희와는 다르지 않겠느냐"

는 발언을 해서 얼마간의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농담으로 가볍게 던진 말이라고는 했지만 그 말로 인해 학생들의 마음에 그어진 생채기는 어쩔 것인가.

 
   물론, "임마, 억울하면 네가 더더욱 노력을 해서 다른 애들보다 더 잘하면 될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노력하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걸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릴 수 있냐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 의지조차 좌절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는 정말로, 정말로 없냐는 것이다.  구조적 한계마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누구)보다 더~'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에서 배움은 작아지고 경쟁은 과열된다.


상위권 성적의 학생에게는 '여기서 밀려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을, 비상위권 학생에게는 '나는 쟤들보다 못하니까' 하는 박탈감을 품게 하는 교육이 과연 정상인 것인지 고등학교 때 항상 생각했다. 실제로 나를 포함, 내 주변 많은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이러한 이유들로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발전을 위해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배움에 있어 이런 식의 경쟁이 도대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 낸 발전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필자의 모교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쓴 칼럼이기에, 보편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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