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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07. 2018

학번제 vs 나이제? 대학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나이제가 꼭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학가에선 매년 이맘때쯤이면 ‘꼰대’ 선배들의 괴담에 대한 글이나 뒷담화를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침에는 항상 ‘학번제’에 대한 질타와 ‘나이제’가 옳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학번제는 그렇다 치고, 나이제가 꼭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동안 나이제에 자연스럽게 젖어 있어 이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나이제와 학번제에 대한 논란과 그것과 관련된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 이 글은 굉장히 주관적인 하나의 주장일 뿐, 이것이 무조건 정의라고 훈계하는 글이 아니므로 이런 관점도 있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단어 뜻인 ‘먼저 산 사람’을 그대로 받아 어떤 분야의 선구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회사나 군대의 기수제, 대학의 학번제는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초기에는 존중의 의미로 생겨났지만, 서열을 나누고 권력을 이용해 ‘갑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로 인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컨대,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않고 ‘후배님, ~세요?’ 하며 존댓말을 사용한다면 과연 후배는 불쾌함을 느낄까? 불쾌함을 느끼는 원인은 학번제 자체가 아니다. 나이제에 익숙해져 살아오다가 학번제를 근거로 한 반말 문화를 접하게 되어 여기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선배라고 나한테 반말을 해?”, “나랑 나이도 같은데 나는 존댓말을 쓰고 너는 나한테 반말을 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이제가 진리라는 생각 또한 버려야 한다. 학번제가 아니라 나이제를 사용하는 집단에는 꼰대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꼰대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학번이 높은 사람이 가느냐,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느냐의 차이일 뿐, 어느 집단에나 꼰대는 존대하고 꼰대질을 당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즉, 학번제냐, 나이제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가 잘 운용되고 있는지가 근본적인 문제다. 학번제를 사용하는 집단의 꼰대질이 심하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개선을 요구할 때의 근거가 다른 게 아니라 꼰대질 척결이라면, 그 결과는 상기의 이유들로 ‘학번제의 개선’이 되는 게 자연스럽지, ‘나이제의 사용’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논리의 비약이다.


이쯤 되면 필자가 학번제를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본인은 학번제와 나이제 같은 위계질서에 근거한 문화를 모두 싫어함을 밝혀두고 싶다. 본인은 외국 같은 수평적 언어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에서는 단지 논리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강한 위계질서라는 적폐의 근원 중 하나가 나이제와 나이에 기반을 둔 높임말(예를 들면 ‘진지 잡수셨어요?’ 같은), 반말 문화라고 생각한다. 외국에도 평어 이상의 존댓말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기반으로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으며, 보통 친밀도에 따른 심리적 거리에 기반을 두어 조금 다른 느낌과 용법으로 사용한다. 무조건 외국이 옳고 우리나라가 잘못됐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번제나 기수제 같은 것도 모두 나이에 기반을 둔 위계질서하에서 나이로 받지 못하는 대접을 받기 위해 새로운 서열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지시가 직급에 따라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직장이나 군대 같은 경우는 나이가 많다고 후배를 높여주면 여러 혼란이 야기되게 된다. 결국은 모두 수평적인 문화가 아닌 지나치게 사회적 위치와 권위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구조가 원인이며, 언어 사용에서부터 반말로 그 권력을 확인하기 때문에 이 높임말, 반말 문화가 위계질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언어 사용에서부터 권위가 존재하는데 과연 아무리 개선한다고 해도 외국처럼 수평적인 인간관계나 동료의식이 생겨날 수 있을까 싶다.


결국은 존중 결여의 문제다. 나이 한 살 많다고 더 성숙한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숙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사고의 성장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입 재수를 한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많은 성찰과 다짐을 통해 성숙할 수 있고, 오히려 나이가 적더라도 대학을 일찍 온 사람이 새로운 사회를 접하며 더 성숙할 수도 있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학번이 더 높다고 무조건 더 성숙하고 배울 점이 많아 대접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근소한 나이 차이로 유의미한 성숙의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말은 나이를 먹어보면 아니라고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1학년 때는 3학년 선배들이 굉장히 어렵고 대단해 보이지만, 정작 3학년이 되어보면 생각보다 별것이 없으니 새내기들이 본인을 어렵게 대하지 말아주기 바라는 심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이는 나이대로 존중하고, 학번은 학번대로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재수라는 고독한 시련을 견딘 경험도 존중하되, 대학에 먼저 진학하여 사회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아는 경험 또한 존중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나이가 다름에도 서로 반말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굉장한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다가오는 새 학기에는 서로 반말을 하려는 경쟁보다는 서로 존댓말을 하면서 다 함께 위계질서를 없애도록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이러한 쇄신을 추구하는 것이 큰 배움(大學)을 행하고 자기를 계발하며 사회문제에 대해 과감히 화두를 던지는 대학가 지식인의 자세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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