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좀 그려줘.
한 미술대학 졸업전시회에 걸린 작품 제목이다. 12명의 이런저런 사람의 얼굴을 투박하고 엉성하게 그린 그림 위에 프로젝트 빔으로 “나 초상화 좀 그려줘.”라는 글귀가 비친다.
이 작품에 미대생들이 열렬 공감했다. 이들 중 하나인 나도 이 작품을 카피해서 엄마에게 보여 주었다. 의외였다. 웃음보를 터뜨릴 줄 알았던 엄마는, 이게 왜 웃기는 거냐고 되묻는다. 나도 그간 이런 말 엄청 들었단 말이에요. 내 말에 엄마가 놀란다. 그래? 그래, 사실 그랬다. 내가 디자인으로 대학을 정하고 준비를 시작한 중학교 3학년 때쯤인 것 같다. 미술 준비한다는 말을 들은 학교 친구들은 주저 없이 대뜸 말했다, 그럼 내 초상화 하나 그려줄래? 거절하다 거절하다 성화에 못 이겨 하나 그려주면 모델은 나의 그림을 보곤 항상 실망했다. 그러게 안 그린다고 했잖아, 라고 말도 못 하고. 그런데 정작 엄마는 그걸 몰랐다. 내 드로잉 실력의 실상을 알고 있는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안 했던 거다. 그러니 엄마가 초상화 그려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아온 내 처지를 알 리가 없지. 사실 나뿐만 아니라 미대 입시생이나 미대생들은 이런 부탁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미대생, 하면 초상화를 생각한다. 아니 야외에서 이젤을 펼쳐 놓고 수채화를 그리는 때아닌 낭만을 떠올린다.
“나 초상화 좀 그려줘.”
이 말에 미술 전공자들이 열렬 공감한 속사정이 여기에 있었던 것. 마음처럼 안되는 나의 드로잉 실력. 잘하고 싶은 맘이야 다 같은데, 소위 ‘넘사벽’인 몇 안 되는 경쟁자들의 실력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4년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절망했던가. 그렇게 겨우 견디며 디자인 전공으로 미대 입시 준비를 하는 세월 속에서 ‘초상화 좀 그려줘.”라고 속 모르는 소리를 듣게 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흔히 사람들은 미대를 준비하는 입시생이나 미대생을 보면 ‘손재주 좋고 감각이 섬세한 사람’일 거로 생각한다. 미대 디자인과에 들어와 문예 창작 동아리에 들어갔더니 다른 과에서 온 동아리 임원이 나를 보고, 푸른 들판 위에 앉아 수채 도구로 야외 스케치를 하는 학생을 상상했다고 한다. 맙소사! 이런 생각 속에서 미술전공자들이 초상화를 잘 그릴 거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은 아닐까. 물론 아주 표현력이 좋은 넘사벽 친구들이 같은 학과 내에 있는 건 사실이다. 이들도 나처럼 “초상화 좀 그려줘.”라는 부탁을 받고 살아왔을 텐데, 그 순간을 이들은 어떻게 넘겼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일.
그런데 나를 봐도 그렇지만 미대생이라고 전부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다. 미대에는 의외로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 제법 많다. 실기전형으로 디자인과에 입학한 나의 경우, 오랜 입시 준비 과정에서 무수한 훈련을 해왔지만, 여전히 표현력이 서투르다. 초상화는 엄두도 못 낸다. 표현력 좋은 미대생과 표현력 서투른 나 같은 미대생이 같은 학과 내에서 똑같이 전공수업을 듣고 똑같이 그림을 그리며 한 학기를 살아간다. 그림 실력 떨어지는 나 같은 미대생은 어떻게 미술을 하고 있을까. 그림 못 그리는 미대생의 미대에서 살아남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은진 언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서툴렀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누구보다도 행복했기에 디자인으로 진로를 잡게 되었고, 고2 때 뒤늦게 미대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실기 준비가 부족했던 은진 언니는 비실기 전형을 준비했다. 비실기 전형은 말 그대로 실기를 보지 않고 학생부 종합 전형이나 정시에서 실기 없이 학생을 평가해서 선발하는 전형이다. 실기 대신 수능 점수나 학생부 실적, 보고서, 그리고 면접 등을 준비해야 한다. 즉 비실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그림 실력보다는 이것들을 모두 준비할 수 있을 만한 성실함과 적극성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열정적인 은진 언니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 원서를 넣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학생부 실적을 쌓기 시작했다. 학과 공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교내 미술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고3으로 올라가면서 면접과 수능 최저 대비도 철저하게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은진 언니는 수시모집에서 상위권 대학 디자인과에 합격했다. 입때까지만 해도 은진 언니는 자신의 모든 고생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입학 후에 새로운 고생이 시작되었다. 디자인과 학생 중 상당수는 은진보다 잘 그리는 친구들이었다. 예술 고등학교 출신 학생, 미술학원에서 항상 A+를 받던 학생, 입시 미술을 6년 이상 배운 삼수생 선배들이 널렸으니까. 이들에 비교하면 은진 언니의 실력은 그저 얼굴을 붉히며 구석에 숨어서 그림을 감출 정도였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디자인을 목적으로 고안된 어도비 회사의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매우 서툴렀고, 드로잉 시간은 한 마디로 4시간 동안 고통만 받는 시간이었다. 드로잉 수업에는 모델의 초상화를 위주로 그렸는데, 완성한 그림은 비례가 완전히 엇나가고 모델을 전혀 닮지 않았다. 교수님은 마음에 드시는 학생 작품의 사진을 찍어가곤 했는데, 은진 언니의 그림은 한 번도 찍지 않았단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은진 언니는 너무나도 마음 상했다.
“나는 못 그리니까 그냥 포기하고 실력을 더 기르게 됐을 때 재수강을 하자.”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은진 언니는 한 학기를 휴학했다. 지친 마음을 그렇게 달랜 은진 언니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표현력 대신 아이디어와 참여도로 승부수를 띄웠다. 미술대학에 비실기 전형을 만든 큰 이유가 바로 대학생의 상상력을 죽이는 입시 그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런 비실기 전형으로 미대에 들어온 만큼 남보다 나은 나의 장점은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있다고 생각한 은진 언니. 누구보다도 생각이 개방적이었고 때때로 엉뚱하고 발칙하다 싶을 만큼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던 은진 언니.
과제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이 인터넷 검색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따라 할 때 은진은 뒷산에 직접 올라가서 소재 거리를 찾아다녔고, 다른 아이들이 고전 소설을 디자인할 동안, 은진은 현대 성(性)에 관한 철학책을 골랐다. 과제 평가 시간에 은진 언니는 자신의 과제에 대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나 젊은 세대의 고민거리와 연결한 독창적인 설명을 했다. 마지막 수업 때 은진 언니는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교수님은, 비록 은진 언니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투박하고 거칠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이 보이고 아이디어도 참신하며 누구보다도 참여 정신이 높아서 보기 좋았다고 하셨다.
은진은, 비실기 전형을 준비했던 필자의 사촌 언니의 실제 경험을 빗대어 만든 아이이다. 실제로 미술대학에는 은진이처럼 입시미술을 해보지 않았거나 그림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몇몇 미대생들이 있다. 분명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옆에 그림 좀 그려 본 동기가 있으면 항상 열등감이 들 테니까. 절대로 그럴 때마다 겁을 먹고 포기하지 마라. 그냥 당신의 생각을 편하게, 그리고 거리낌 없이 그림 속에 담아라. 현대미술에서는 뛰어난 묘사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확고한 미술 철학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미술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못 그리니까 안 돼.”라는 생각을 지금이라도 떨쳐내자. 필자도, 사촌 언니도, 그리고 주변의 비실기 학생들도 모두 잘 살아남아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비실기 전형으로 입학한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실기전형 준비를 하다 디자인과에 입학한 경우라 은진 언니보다는 덜 힘든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넘사벽인 친구를 보며 나의 형편없는 그림 실력에 매번 좌절하곤 한다. 열심히 사슴을 그렸더니 엄마가 와서 보고 이거 송아지냐, 할 때의 좌절감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알리라. 그래도 그런 좌절감을 견디며, 초상화 좀 그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속 모르는 소리를 견디며, 디자인 전공자의 고충 어린 삶을 살아간다. 나는 디자이너야, 라는 자긍심. 이것이 그 좌절감을 견디고 오늘의 고충 어린 삶, 매주 쏟아지는 새로운 과제의 전쟁터에서 야간작업하며 견디는 힘이다. 오늘도 새로운 아이디어, 나만의 참신한 시각을 찾아가기 위해 한 번 더 노력하게 되는 바탕이다. 나는 디자이너야. 초상화 좀 못 그리면 어때, 흥. 하면서 말이다.
추신: 설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세배를 했다. 세배를 마치고,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덕담을 하셨다.
“아이고, 우리 은솔이는 디자이너가 되어서 유명해지면, 할아버지 초상화 한 장이나 그려 주거라.”
그제야 엄마는 그놈의 초상화 소리를 당신의 귀로 직접 듣게 되셨고, 나는 그저 허허허 웃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