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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17. 2018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학문

인류학을 통해 배우는 삶의 태도

“네? ‘일’류 학과요?”

이 질문은 내가 사람들에게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가장 처음 돌아오는 말이다.

이어서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아… ‘인’류학과…. 뭐 하는 과에요?”

사람들은 큰 기대 없이 그저 예의상 툭 던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고심 끝에 대답한다.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학문, 그리고 낯선 세상을 통해 나를 알게 되는 학문이에요.”




인류학이 뭔데요?


내가 인류학에 대해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대학에 합격한 선배 중에 인류학과에 진학한 선배가 있었고, 덕분에 인류학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문화를 배우며 한 사회집단에 들어가 그 집단 사람들의 삶을 알아가는 ‘참여관찰’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인류학 공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관심이 생기고, 배워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인류학과에 들어오면서, 이젠 인류학이 어떤 학문인지 고민하며 나만의 대답을 만들었다.


‘인류학’이라는 말을 딱 들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 혹은 고고학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이런 것도 배우긴 하지만, 인류학의 극히 일부분이다. 흠… 가장 쉽게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류학의 모습을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존의 눈물’은 영상 인류학의 한 종류라고 할까나?



인류학에는 체질인류학, 고고학, 언어 인류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요즘 주류로 알려진 인류학은 대부분 ‘문화인류학’이다. 문화인류학에서는 한 집단의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문화 속 친족제도, 사회조직, 경제체제, 종교, 예술 등을 참여 관찰하며 탐구한다. 인류학의 중요한 조사 방법 중 하나는 현지조사인데, 한 집단 속에 참여하여 그들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참여관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현지조사는 1년을 주기로 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사회 흐름과 삶의 단위가 1년을 주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집단 속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어 시간을 보낸다. 현지조사를 하는 시간 동안 인류학자는 그 문화의 외부자이자 동시에 내부자가 되어간다.


사실 인류학은 시작이 좋지 않은 학문이다. 식민통치가 활발했을 시절, 식민통치를 쉽게 하려고 피지배 국가의 문화를 지배국가가 알아가면서 만들어진 학문이 인류학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작이 좋지만은 않지만, 이제는 오히려 남의 나라보다는 각자의 나라를 이해하는 인류학자들이 많이 생겼다. 타인들의 문화를 알아가면서,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을 공부하면 뭐가 되는데요?


인류학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학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학교 중에 10개의 학교 밖에 인류학과(게다가 대부분은 문화인류학과이다.)가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학은 관광인류학, 교육인류학, 응용인류학 등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분야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람의 삶 모든 것에 대해 알아가는 학문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한다면 관심 있는 인류학의 분야를 새롭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처럼 폭이 넓은 학문이기 때문에 그 점을 장점으로 여겨 인류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나 또한 고등학교 때 라디오 PD를 꿈꿨는데, 신문방송학과나 언론정보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인류학을 선택한 이유는 뻔하고 통상적인 길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미래에 더욱 풍부한 경험과 영양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졸업한 선배들의 길을 보아도 방송, 주식, 네이버 LINE, 광고, 게임 제작 등 다양하다. 그런데 다양한 길 속 중심에는 결국 인류학이 있었다. 선배들의 면접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류학이 얼마나 자신만의 강점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또래의 다른 지원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취업만을 위한 스펙을 쌓고 있을 때, 우리는 실제 현장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배운 자신만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여성 가스검침원들의 위험한 일터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비건 페미니스트들의 신념을 배워보기도 하는 그런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는가. 그래서 나는 인류학, 그 자체로 가장 큰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류학이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인류학은 ‘why’를 이해하려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마빈 해리스라는 인류학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힌두교에서는 왜 소를 숭배할까?’, ‘돼지는 왜 불결의 대상으로 여겨질까?’. 이렇게 인류학은 ‘왜’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이런 인류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우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게 된다. 다양하고 낯선 문화의 삶을 만나고, 그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문화를 다양한 방향으로, 낯선 문화더라도 편견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살던 틀에서 벗어나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 너무나도 낯설기만 한 세상에 들어가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작업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눈 안대를 벗고 자유로운 들판을 뛰노는 것과도 같다.


또, 인류학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현지조사를 하며 인류학자가 집단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친밀감이 생기는 것을 ‘라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모두가 어색하다. 나도 참여관찰을 하기 위해 한 동아리를 졸졸 쫓아다녔는데, 첫 만남 때는 어색해서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서먹서먹했었다. 나는 이들을 관찰하러 온 외부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존재가 익숙해지면서 라포가 형성됨을 느낄 수 있었다. 라포를 형상하기 위해서는 친근하게 말을 걸고, 어색함을 풀어나가야만, 대상으로 하는 집단과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내부자적 관점으로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라포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시선을 보내면서 더욱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학에서 다른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왜 저들은 저런 문화를 갖게 됐을까’라는 질문은 확장되어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문화를 갖게 된 걸까?’로 넘어가는 것이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면서 자신을 알게 되는 인류학은, 요즘처럼 남을 깎아내리려고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시대에 필요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학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학생이든, 교수든 쉽게 인류학이 어떤 학문인지 대답하지 못한다. 나도 인류학을 배우면서 어떤 학문이라고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글에 담긴 내 대답은 그동안 인류학을 통해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결론들이다. 가끔은 내가 인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인류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인류학은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교수님 중에서는 인류학은 사치의 학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인류학을 통해서 배우는 ‘이해’의 태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인류학과에 진학하지는 않더라도, 살면서 인류학에 눈길 한 번씩 스쳐줬으면 좋겠다.


이상 일류를 꿈꾸는 인류학도가 전하는 작은 이야기였다.



+인류학에 관해 관심이 생긴다면 추천하는 책 

1.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2.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3.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출처  교보문고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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