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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r 20. 2018

시간의 세 가지 성질

상대성, 직선적, 연속성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마저도 상대적이다.”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은 이유라면, 시간 또한 인간이 정한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숫자의 의미를 부여한 게 시간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과학 이론들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절대적인 가치 중 시간을 부정한 것은 필연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 오히려 상대적인 개념의 ‘속도’가 빛에 의해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시간의 절대성이 부정된다.



실제로 우리의 시간은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각각 다르게 흘러가는 중이다. 재미있는 일을 마주할 때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지루하고 미적지근한 일을 할 때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말처럼. 그리고 재미있는 일과 지루한 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시계가 아닌 나의 시계에 집중하고, 내 초침의 움직임을 살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느린 시작과 끝맺음에 조급할 필요 없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자 한다. 같은 1분이더라도 같은 1시간이더라도, 더 많은 것을 기억하며 시간을 다채롭게 채워나가는 거다. 그러면 같은 짧은 시간이더라도 긴 이야기가 펼쳐져 시간과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다양한 감정으로 범벅이 된 시간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쉽지는 않다. 사회가 약속한 시간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공인 연극이기에, 그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시간을 쫓기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절대적인 시간이 아닌 상대적인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시간은 원이 아닌 직선이다.”


원의 테두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알던 길이 다시 나온다. 과거의 반복이다. 직선의 테두리는 어떤 지침도 없이 흰 바탕을 가로지른다. 매 순간이 현재다. 우리의 시간은 한 번 지나간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반복되지 않는 시간. 시간은 직선이다. 새로운 앞을 향해서 매순간 나아가고, 그 방향은 돌고 도는 원처럼 회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365일, 30일, 7일, 우리는 주기를 정해 같은 요일과 날짜를 반복하고, 비슷한 일정을 매일같이 만난다. 그렇게 공동체의 체계에 맞춰 숫자를 세다보면 실제 개인의 시간은 직선적임을 망각하고, 시간을 원으로 인식하고는 한다.



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이미 ‘알고 있다’는 오만과 편견을 만든다. - 앎의 인식이 가진 맹점이다. 우리는 다 안다는 가정에 따라 본인의 시야에 갇혀 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사실상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인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거다. - 우리는 걱정과 후회의 원인은 인생에 대한 무지함이라고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은 현실일 뿐이다. 실상 이 두 감정은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무지함을 인정하지 못한 채로 알려고 애쓰고, 알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감정 모두 현실은 바꾸지 못하고, 결국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리게 된다. 내 시간이 직선의 원칙을 거스른 채 정체된다.


나의 시간이 직선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인지한다. 내가 그리는 삶의 선은 애꿎게 이미 그은 선 위를 지나가기보다, 새로운 선으로 흰 바탕을 칠하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나 자신을 알고자 신중해야 하고, 하루마다 찾아오는 사소한 차이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 삶의 스케치가 어떻게 뻗어 나가고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 알 수 없음은 이제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이 직선의 시간 속에서 삶에 대한 직관적인 시선을 배우고 있다.



“시간은 그냥 흐른다. 어떠한 고민도 없이 묵묵하게.”


가끔 약속 시간을 잡고, 그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할 때면, 나의 시간의 초점이 온통 그 시각만을 향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1시에 약속을 잡았다면, 1이라는 숫자가 내 시간의 최종 목적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1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박자대로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고, 결국 1을 넘어 다른 숫자로 다시 향해 간다.



이는 아마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 되는 바 아닐까 싶다. 삶에는 목적지가 있기보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에 대한 나의 선택이 나를 만들어갈 뿐, 나라는 존재에 대한 최종목적지는 결국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시간은 묵묵히 흐르는 와중에 나는 존재할 것이다.


그 흐름이란 걸 우리는 부정할 수 없고, 그 위에서 우리는 뭐든 선택을 한다. 다시 그 선택을 바탕으로 다른 길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시간은 연속적이다. 그래서 실수를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 그걸 바탕으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거기가 끝이 아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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