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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11. 2018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법

첫 번째 이야기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서 나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왜 나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해도 되는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도 괜찮은 것인지. - 흔히 우리가 걱정하는 만큼 서로에게 관심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타인보다 본인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하지만 여전히 확률적인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다. 나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기억을 안길지 알 수 없다. - 쉽게 동의가 되지 않던 위의 내용에 다른 이유와 다른 방법을 고민했고, 자존감에 대해 나만의 새로운 정의를 갖게 되었다. 그 과정이다. 



1. 

 미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이다. 그만큼 불편하다. 미움은 타인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이기에, 우리가 타인을 미워할 때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더욱이 그 화살을 스스로에게 날리는 경우도 있다. 자기 미움.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다.  


 서점에 가면 자존감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 위치를 차지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과 같은 책은 보지 못했다. 타인에 대한 미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모두 싫어하는 면을 발견하고 시작된다는 면에서 같다. 두 미움의 차이는 오로지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미움만을 주제로 필요 없다고 외치고 있고, 이는 타인에게 허용되지 않던 선이 자신에게만 허용되는 이기심 아닐까. 그래서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과도한 눈치라 평가절하하고,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들에 의문을 던진다. 오히려 자기 미움이 없는 사회가 위험하다고 느낀다. 자기 미움을 부정해버리고, 몰아내려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저 자기 미움은 필연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과 24시간을 함께 하면서 어떻게 좋은 모습만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자기 미움이 많다고 주눅이 들 필요 없고, 자존감을 문제 삼아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필요 없다. 또한, 우리는 자기 미움 덕에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바라고,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사회에 산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 이상향일 필요 없다. 그보다 우리 각자가 끌어안고 있는 자기 미움을 서로가 이해해줄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미움을 긍정하고, 들여다 봐야 한다. 자기 미움을 인정하면서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다. 용서하기 전까지 주눅 들어 있는 내 모습에 또 다른 걱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미움을 품으면, 막연하게 나 자신을 사회가 원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길 말고 다른 길이 보인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고 나 자신을 사회에 조화시킬 방법이 보인다. 자기미움은 벗어나야만 하는 감정이 아니다. 



2. 

 자존감 관련 책을 읽으며 느꼈던 모순점이다.

 첫째. 자존감을 높이겠다고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하라고 한다. 하지만 단점을 의식적으로 장점이라 보는 것은 어쨌든 단점이 ‘밉기에’ 승화시킨다는 거다. 결국, 미움을 근거로 이뤄지는 일이고, 이는 자기 미움에서 온전히 벗어난 게 아니라 벗어났다는 착각에 빠지는 거 아닐까. 장점을 보는 시선 밑바탕에는 미움이 깔려있으니 말이다. 


 둘째, 그래도 최근 자존감 관련 책에서는 단점을 인정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동의가 될 듯싶다가도 결국 나는 다시 회의적이게 되었는데, 왜냐면 그 단점에 바로 자기 미움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싫어 그 책을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자기 미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단점을 인정하는 순간이면 자기 미움으로 되돌아와 이를 인정하게 되는 모순에 처한다. 


 그보다도 장단점의 기준이 복합적으로 적용된다는 걸 잊지 않는다.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기준은 움직인다.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이다’와 같은 일반화된 문장이 아니다. 동일한 특징이더라도 어떻게 조화되고 있는지에 따라 발현되는 의의가 달라진다. 나의 가치는 상황과 사람에 맞물려 나타난다. 


 또한, 장점과 단점은 ‘좋다/싫다’라는 평가다. 평가는 특정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그 기준은 개인의 취향, 상황,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다. 절대적이지 않고, 각기 다른 시선과 시야에서 다르게 존재한다. 한마디로 장단점이라는 이분법적 평가는 내가 어떤 시선을 갖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덧없는 정의고, 모호한 선이다.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가 아니라, 나는 왜 그렇게 행동을 했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찾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좋고 싫다는 평가는 모두에게 다르게 일어나고 있으니 애써 붙잡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선에 놓아두는 거다. 이 질문 끝에 다다르면 프레임 없이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모두 수용하게 된다.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평하는 나의 단점으로 인해서 오히려 내가 가질 수 있던 것들이 보인다. 이제 내 자신을 평가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들의 어울림을 고민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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