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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y 19. 2018

내가 겪은 팀플의 귀납적 정의


 이제 막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나에게 작년 한 해를 떠올려 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팀플’이다. 팀플은 요즘 많은 대학생이 피하거나 수강신청을 꺼리게 되는 활동이지만 나는 작년 1학기 때 두 번, 2학기 때 네 번, 총 여섯 번의 팀플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선택 교양 과목은 강의 계획서를 참고하여 충분히 팀플을 걸러낼 수 있지만, 전공과목이나 필수 교양 과목은 졸업 이수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내가 겪었던, 단 한 번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었던 팀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팀플은 ‘팀 플레이’ 또는 ‘팀 프로젝트’의 줄임말로 수업의 수강생들이 팀을 꾸려 팀 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팀플은 대부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PPT나 다양한 시각적 매체를 만들고 이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게는 두 세 명에서 많게는 여섯, 일곱 명의 조원들과 조장, Interferencer(간섭자), 자료조사, PPT 제작, 발표자 등 여러 책임을 고루 나누고 High-Quality의 결과물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학점에 중요한 평가 지표로 이용된다. 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뽐낼 수도 있고, 여러 사람들과 한가지 목표를 위해 단합과 협동을 발휘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이를 통해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팀플의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팀플 활동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6개의 PPT


 그러나 결코 팀플이 이와 같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다수의 경우 팀원들 사이의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때로는 싸움이나 인간관계의 의절로 연결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목표는 하나이지만 그 목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듯 팀플에 임하는 자세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총 여섯 번의 팀플 속에서 3번의 조장과 6번의 PPT 담당, 6번의 자료조사와 4번의 발표자를 맡았다. 따라서 다양한 팀플 주제를 접했었고 그만큼 다양한 조원들과 팀 활동을 진행했었다. 이 말은 즉 그만큼 다양한 조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갈등이 오고 갔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인간의 끝을 보는구나 느꼈었다. 나는 그중에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몇 가지 케이스를 예시로 살펴보고자 한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 부류는 무능력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기력 자다. 첫 팀플 회의부터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어필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말 모르겠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기보다 최대한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으려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서 그 사람이 이 팀플을 임하고 있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엄연히 말해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고 방대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기에 역할 분담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라도 한 가지의 담당을 제대로, 완벽하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들 서툴고 다들 어려워하고 다들 힘든 데 말이다.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손만 만지작거리고 핸드폰만 보고 있다면 바로 이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작년 1학기 교양 팀플에서 만났던 사람은 정말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한다. 찬사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대화 기술이다. 발표도 할 줄 모르고, 대본 만드는 것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다 모른다 하여 한 부분의 자료조사를 맡겨 놨더니 며칠 동안 연락이 없다. 자료를 보내주기로 했던 기간까지 메일을 몇 번이고 확인해봐도 아무런 자료가 도착하지 않았다. 용케 연락되어 대체 뭐하고 계시냐 물었더니 할머니 팔순 잔치 중이라고 대답한다. 요즘 팔순 잔치 할 때 빌보드 차트에서 들릴 법한 그루비 넘치는 팝송을 틀고 젊은 남녀가 소리를 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료조사를 어디까지 마쳤냐고 물으니 거의 다 했다기에 보내달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면 보내준다 했다. 발표 날까지 그 자료는 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이후로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나 조장이야.’

 선하고 참된 리더십을 발휘해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도 최대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는 조장이 있지만 제대로 할 줄도, 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조장이 대단한 벼슬을 가진 것처럼 시키기만 바쁜 조장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조장을 맡음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하녀를 다루듯이 군다. 웃긴 것은 욕심과 아집만 있고 실력이 없다. 조율이라는 것도 모른다. 세상에 마음에 드는 것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간섭은 엄청나게 한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방안을 물으면 그건 또 모르겠다더라. 그들에게 조장을 맡기면 그 팀플은 활동이 끝날 때까지 피곤하기만 하다.

 2학기 전공 수업을 4학년 선배가 재수강을 했다. 4학년 선배이다 보니 뵐 일도 없었고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대뜸 조장이 하고 싶다고 해서 약간 불안했지만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생명공학 계열 전공이다 보니 주제 또한 생명공학 기술이었다. 다섯 명의 조원들이 하고 싶은 주제가 각각 달랐다. GMO 식품, 환경 미생물, 줄기세포, 모기. 나와 다른 조원 한 명은 줄기세포를 하고 싶어 했고, 선배는 모기를 하고 싶어 했다. 의견이 좀처럼 모이지 않아서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간략히 조사하여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 A4용지에 빽빽하게 워드를 쳐서 갔는데, 그 선배만 포스트잇에 대충 두 줄 정도를 써 오셨다. 나머지 네 명은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줄기세포를 하고 싶다 말씀드렸는데 교수님 앞에서 자기는 무조건 모기를 하고 싶다고 난리를 쳤다. 보다 못한 교수님이 중재하시고 줄기세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을 하셨는데, 화가 난 건지 씩씩대며 가버리고는 3일 동안 연락이 없었다.

 3일 이후에 갑자기 회의를 하자며 우리를 불러모으더니 하는 말이 ‘나는 이제 졸업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팀플 참여가 약간 곤란할 것 같아. 너네끼리 잘 해낼 수 있지?’ 였다.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데, ‘너는 PPT 잘 만들겠다. 네가 PPT 만들어봐.’ ‘너는 발표 어때?’ ‘나머지는 자료 조사하면 딱 맞네!’ 자기 마음대로 우리에게 역할을 분담시키고는 또 하는 말이 ‘내가 역할 분담 해줬으니까 난 조장으로써 다 한 거지?’ 그러면서 마음대로 회의를 마쳤다.

 한 학기 내내 참여는 안 하고 PPT 가닥이 잡힐 때마다 간섭만 했다. 이건 마음에 안 들고 저건 이러쿵 저러쿵. 그래서 뭐 어떻게 하길 바라고 있느냐 물었더니 그건 또 모르겠다 하더라. 선배라 대놓고 욕은 못 하겠고, 그렇게 우리의 피 같은 고생 속에서 성적만 좋게 받아갔다. 어찌어찌 졸업은 용케 하더라. 학기가 끝나고 다들 그런 성격으로 대체 어느 직장으로 취직하나 두고 보자 했다. 우리들의 소심한 복수였다.



‘아… 제가 연락을 못 봤어요…’

 소위 잠수형으로 불린다. 핸드폰을 무엇을 위해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요즘 말로 읽씹*안읽씹*을 번갈아 하며 조원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읽씹* : 메시지를 읽었으나 답장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안읽씹* : 메시지가 온 것은 알지만 애초에 읽지도 답장하지도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마 손가락의 지문이 없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항상 못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밥 먹자는 연락, 술 먹자는 연락, 피시방 가자는 연락, 놀러 가자는 연락은 기가 막히게 잘 받는다. 많고 많은 인간 중 조원들의 연락만 선택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다.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하다. 어찌어찌하여 연락을 받으면 늘 자고 있었거나 바빴거나 지금 학교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총체적 난국이라 하겠다.



‘저 학교 자퇴했는데요? (저 학교 휴학했는데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지만 한번 당해보면 분노가 쉽게 표현이 안 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는 주로 신입생들이 갓 입학한 1학기 초에 많이 발생한다. 애초에 자퇴나 휴학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팀플에서 제외해 달라고 말이라도 하든지, 조원들에게 귀띔이라도 해주던지. 역할 분담까지 마친 사람이 느닷없이 연락이 안 되길래 수소문해보면 자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린다. 책임감은 태어나 존재했던 적이 없고, 귓등에는 환청이 들리는 것처럼 나는 자퇴했으니 너희끼리 잘 해보라는 그 사람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래서 성악설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다. 갑자기 성악설을 믿고 싶게 만든다. 마치 어제까지는 ‘사랑해.’ 하던 연인이 급 잠적을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차임을 겪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간신히 연락이 닿으면 하는 소리가 ‘바빠서 연락을 못 해 드렸네요, 고생하세요.’ 정말 대단하다. 촉박한 기간 동안 나머지 조원들은 그 사람의 몹쓸 짓을 메꾸기 위해 팀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한다. 당연히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팀원들의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네 가지 케이스를 겪었고 다시 되새기면서 나는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오늘날의 팀플은 목적을 잃은 활동이다.’

 대다수 교수들이 팀플을 수업 중 하나의 평가 지표로 생각하고 반영하지만, 팀원 사이의 갈등은 나 몰라라 한다. 실제로 나는 여섯 번의 팀플을 거치면서 팀원들의 참여도를 팀원끼리 평가하여 이를 평가에 반영하거나 팀 안에서 일어난 일을 귀 기울여 듣는 경우, 민폐 팀원을 팀에서 제외 해준 경우는 단 두 번뿐이었다. 나머지 네 번의 팀플은 힘들어하는 나머지 팀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것 또한 갈등 관리 사례가 아니겠냐 말하며 돌려보내는 경우가 다 반수다. 좋게 말해 갈등 사례이지 수강생들을 팀플이라는 명분 아래에 방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앞서 말했듯이 팀플은 결론적으로 절박한 학생 몇 명이서 끝까지 떠안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 조원들은 약간의 고생으로 학점을 얹혀간다. 자본주의 사회인데 팀플에서 이뤄낸 결과는 공산주의 같다. 학점의 빈부 격차를 줄이려는 걸까? 누가 더 참여를 많이 했든 안 했든 그 조에서 가져가는 점수는 모든 조원이 같다. 공들인 시간이 많든 적든, 노력의 값이 많든 적든 결과가 나라는 개인에게 반영되는 게 아닌 팀에 반영되어 공유되기 때문에 팀플에 무임승차가 생기는 것이다. 다년간 교수의 자리에 있었기에 무임승차 인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방관한다.


 그렇다면 교수들이 이를 다 알면서 굳이 팀플을 평가 지표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보건대 많게는 10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을 각기 평가하기엔 시간 소모가 많다. 따라서 팀으로 묶어 한꺼번에 평가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약 16주간의 수업 중 일정 시간을 때우려는 목적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팀플이 존재하는 수업의 경우 적게는 한 두시간에서 많게는 2주 동안 팀플이라는 목적으로 수업을 하지 않고 공식적인 팀별 회의 시간을 준다. 말이 좋아 팀별 회의 시간이지 결론적으로 우리는 몇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면서 한 시간에 몇만 원의 수업비를 회의라는 것에 헛돈으로 쓰고 이를 통해 감정까지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목적성과 방향성을 잃은 활동은 존재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들게 한다. 굳이 이런 비판점이 많은 활동으로 학점을 가로지르고 인생의 한순간을 가로지를 필요가 있을까? 엄연히 말해 팀플의 목적성은 이를 가지고 평가할 교수가 제시해야 하지 우리가 찾고 있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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