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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y 19. 2018

슈퍼맨, 공주님보다 '친구'

 2013년 추석부터 KBS에서 방영 중인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프로그램은 정해진 주제 없이 과연 아빠와 딸 또는 아빠와 아들이 엄마 없이 48시간을 아무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이다. 어린아이들의 귀엽고 순수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아빠와 아이들이 엄마 없이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많은 가족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녀는 일본 교포인 이종격투기와 유도선수 출신인 추성훈과 그의 딸 추사랑이다. 프로그램 속 추성훈은 아내에게는 무뚝뚝하지만 딸 앞에서는 애교 무장 해제가 되어 버렸다. 그는 딸 사랑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딸바보’의 정석이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추성훈은 매일매일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랑이가 커서 자신을 멀리하고 대화도 잘 안 하려고 할까 한편으로는 슬퍼진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런 부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와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 역시 엄마한테는 표현도 잘 못 하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이 태어나고 아빠는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미소를 그치지 못하셨고 엄마는 오히려 아빠가 우리가 태어난 뒤 더 애교가 생기신 것 같다고 하셨다. 내 기억에도 아빠가 나와 내 동생이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퇴근해서 집에 오시면 꼭 우리에게 뽀뽀하시면서 오늘 하루는 뭐했냐고 하나하나 다 물어보곤 하셨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아빠와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가끔 아빠의 지나친(?) 간섭이 귀찮아 아빠가 전화하시면 빨리 끊어 버리려고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름 아빠와 친하게 잘 지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아빠와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가끔 데이트도 하며 애인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오시면 가끔 “우리 딸들은 나를 너무 미워해….”라고 하면서 술주정을 하시곤 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커 가면서 아빠와 멀어질 수밖에 없고 옛날만큼 함께할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빠도 이제 우리와 예전만큼 함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끼시는지 어떤 계획을 세울 때도 항상 우리에게 먼저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물으시고, 가족여행이라는 것이 이제는 큰 집 안의 ‘행사’가 되어 버렸다. 미리 시간을 내야만 하는, 자주 갈 수 없는 그런 행사로 말이다.


 하지만 조금씩 아빠와 우리 자매가 멀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아빠에게는 마냥 아쉽고 서운한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밖에 몰랐던,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던 딸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아빠와 싸우기도 하고 날이 선 채 대화도 잘 안 하려고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아빠의 마음은 이해하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당연하게, 아니 생각조차도 안 하고 지내고 있었다.


 물론 함께 사는 가족이기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 그 서운한 감정은 더 쌓이게 되어 오해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오해는 갈등이 생기고 이는 다시 상처가 되어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 있는 만큼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나도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나와 아빠의 사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조차도 안 하고 혼자 아빠와 내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지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었다. 나 혼자 아빠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의 자세, 아빠의 입장에서 내 모습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빠와 점점 멀어져 가면서 대화조차도 잘 하려고 하지 않았던, 아빠의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했던 나의 모습을 말이다.



 나는 아빠를 굉장히 많이 닮았다. 외적인 부분부터 내적인 성격까지 남들은 내가 아빠를 ‘빼다 박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닮고 비슷하기에 우리는 많이 부딪히기도 했고 표현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대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시간도 꼭 필요했다. 어쩌면 그냥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부녀, 최고의 아빠와 딸이라는 것은 없다. 누군가의 딸이라면, 누군가의 아빠라면, 그 아빠와 딸을 위해 조금만이라도 표현하려고만 한다면, 가족 그 이상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슈퍼맨, 공주님’보다 편하게 속마음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친구로서 말이다.


 오늘도 아빠는 어김없이 새벽 6시 50분이 되자 출근길에 나선다. 묵묵하게 당연하게 출근을 하시는 아빠한테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빠와 나에 대해 참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다정하고 살갑게 표현을 잘 하지는 못하시지만 남다른(?) 유머 감각과 재치로 우리 가족을 항상 웃게 만드는 우리 아빠는 참 귀여웠다. 아빠는 나와 동생이 기분 나쁠 때도 살금살금 우리 옆으로 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를 웃게 만들려고 노력하신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나와 그 누구보다 가까운 부녀지간이 되려고 노력하셨고 나는 아빠의 노력을 마냥 부담스럽게만 생각했었다. 이제는 나도 표현 좀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지금도 아빠한테 문자가 왔다. “딸, 내일(어린이날) 쇼핑 가자! 아빠가 쏜다!” 역시 표현 못 해도 마냥 ‘사랑스러운’ 우리 아빠다. 아빠! 사랑합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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