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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y 19. 2018

권력, 우상, 그리고 나


 권력. 이것을 접할 때면 종종 갑질, 나와는 관계없는 것, TV에 나오는 정치인, 기업가들의 전유물, 우리가 몰아내야 할 부정적인 것 등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나는 지식인은 권력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권력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는 태도를 가졌고, 지식은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라고 믿어왔다. 고등학생 때 전(前) 우상, 사르트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행적과 사상에 따라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온 자신을 위해 다른 이들을 가볍게 희생시키는 악당들의 모습을 보면서, 권력에 분노했고, 그것들에 맞서 싸워도 질 것이라 좌절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여러 영향을 받아 철학이라는, 안정적인 수입과 거리가 먼 전공을 선택했다. 철학을 공부하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고, 철학이란 학문이 나와 맞는 것 같다는 묘한 확신도 있었지만, 자기 사상을 통해 권력에 맞섰던 우상의 멋진 모습이 컸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여전히 사르트르라는 우상은 내 뒤를 따라다녔다. 항상 그의 사상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했다기보다는, 내 선택과 행동의 바탕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깔려있었다고 보는 게 적당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며 나는 우상을 떠나보내게 됐다. 작년 처음 철학을 배울 때 사르트르의 사상과 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이 제시한 답을 배우고 싶어 현대 프랑스 철학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에서 처음 푸코를 만났고, 그가 폭력에 저항한 방식과 권력에 대한 분석을 접하면서 내가 그동안 가졌던 권력에 대한 생각, 나아가 내 세계관을 되돌아보게 됐다.


 푸코는 권력에 대해 (권력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단지 객관적 사실이 그러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는 권력을 거시 권력미시 권력(훈육 권력)으로 구분한다. 거시 권력제도가 인간에게 부여한 권력이기에 정치·투쟁 영역에서 드러나며,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 명확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권력이라 생각하는 것이 거시 권력의 모습이다.  


 반면 미시 권력우리 일상에서 발생하는 권력이다. 권력 행사하는 주체와 권력에 영향받는 당사자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를 규제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관계이며, 사회관습, 규칙 등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게 하는 것의 총체이다. 미시 권력을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학교다. 예절, 지식 등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억압한다. 그의 권력 이론에서 이 부분만을 접했을 때는 권력이 인간을 긴장시켜 주체성을 잃게 함으로써 우리를 권력에 순응하는 바보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권력은 저항해야 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권력 이론은 우리를 제한하는 미시 권력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푸코는 오히려 미시 권력이 우리를 유의미하고 자유로운 주체로 만든다고 판단했다. 무제한적인 자유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지나친 부담을 준다. 자유 주제로 보고서를 한 편 써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글의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숨이 콱 막히지 않는가?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무엇을 할지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Aporia, 통로가 없음)에 봉착한 것이다. 푸코는 미시 권력을 통해 행동 가능성을 줄임으로써 이 함정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즉, 우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자유는 미시 권력에 의해 적절히 제한된 자유이다. 이 점에서 미시 권력이 마냥 우리를 억압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를 주체로 만드는 형성적, 구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거시 권력처럼 확실히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미시 권력이 일상적이고 무대의 뒤편에서 우리를 주체로 만들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가졌던 믿음이 무너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던 권력은 사실 내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필수 조건이 됐고, 내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지식은 권력의 공모자가 됐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하게 된 계기, 사르트르의 철학도 동시에 나를 억압하면서 구성하는 권력임이 드러났다. 사르트르조차 미시 권력에 종속된 존재였기에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무제한적인 자유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 우상을 두둔하며 푸코가 잘못됐다고 믿거나, 지금의 내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우상과 작별해야 했다. 푸코가 잘못됐다고 판단할 합리적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작별을 선택했다. 작별했다고 해서 사르트르의 사상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작별한 것은 우상으로서의 사르트르, 그리고 내가 가졌던 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우상과의 작별은 ‘나’라는 존재가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나는 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지식, 예절 등 자라오면서 배운 모든 것들, 지금 내가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모든 것은 미시 권력이다. 이것은 나를 제한하는 동시에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나를 유의미한 주체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사르트르, 푸코뿐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지식인은 권력에 저항해왔다. 권력에 의해 자유로울 수 있는 주체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이상한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거시 권력에 저항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을 수 없는 것(용인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우리는 특정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 관계 속에 있고, 그 권력은 역사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을 갖는다. 나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게다가 권력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쪽 주체가 다른 쪽에 규칙, 의무 같은 전략을 구사하면, 상대는 그 전략에 대응하는 전략을 내놓는 관계가 권력-주체 관계이다. 따라서 저항이란 행동도 권력에 의해 형성된 대응 전략이므로, 우리는 권력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권력 자체에 저항할 수도 없다. 우리는 권력 관계 속에서,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대응 전략을 내세울 뿐이다.


 내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면, 나는 권력에 저항해야 하는 존재에서,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에 저항할 수도 없는 한계가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도 푸코가 그랬듯 여전히 나 자신을 저항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었다. 권력뿐 아니라 다른 현상도 가치중립적으로 분석했고, 저항의 대상이 참을 수 없는 것임을 명확히 보게 됐다. 


 나는 불편한 시선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부당한 것에 대한 저항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했다. 사르트르가 자기 철학에 따라 권력에 저항했던 것을 보며 지식을 가진 나도 그저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자만했다. 우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 갖고, 무엇에 저항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저항해야 한다는 빈 의무만을 붙잡고 있었다.


 우상과 작별하고, 믿음이 가렸던 다른 곳을 보게 되며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진정한 저항은 상황을 분석하고 다른 이들이 못 본 것을 드러내어 저항할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푸코, 그밖에 다른 저항자들이 그랬듯, 안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항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알아야 확실한 방향을 갖고 저항할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분석하는 것이 저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새로운 사고방식에 따른 내 첫 번째 저항의 대상은, 내 사고를 제한하던 맹목적인 믿음이었고,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내가 되도록 날 정신적으로 도와줬던 우상과, 작별을 고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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