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더라
정말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그렇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질문.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은 중요하다. 내 삶의 여유이자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중요하고, 그렇기에 무엇을 선택하든 옳다.
그래서인지 항상 대답은 똑같다. 정말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그렇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대답.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열심히 하면 된단다."
하지만, 이것'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즉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둘 중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만큼이나 중요한 나 자신 이해하기.
나는 나에 대한 이해를 실패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수학, 과학 성적이 우수했다. 내가 잘한다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과에 진학했고 대학생인 지금 공과대학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 자신에 대해 혼란이 찾아왔다. 내가 알던 나는 과학을 잘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화학에 관심이 있었고, 열심히 할 열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책을 몇 번이고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구나. 문제를 여러 번 풀어봐도 못 풀 수 있구나. 새삼 여러 사실을 깨닫고, 내가 이 분야에 큰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된 지금이다. 전공은 어려울 수 있다. 누가 전공을 쉽게 여기겠는가. 다만 내가 충격을 받은 점은 ‘못하지만 너무 재미있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한다고 믿었던 과학이 사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했던 거였구나.
내 전공이 싫지 않다. 너무 재미있고, 정말 깊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이다. 이 길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 좀 그랬다.
"둘 다 중요하기에, 어찌 되었건 옳은 길로 온 것 아닌가요?"
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다. 아니,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내 고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껏 잘한다고 믿었던 분야에서 나 자신이 '한낱'이 되는 기분을 알고 있는가. 반대로,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 믿었던 대상이 껍데기뿐이었고 더 이상의 흥미가 사라져 버린 경험이 있는가.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알던 내가 변한다는 것이 내 세상이 변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네요. 노력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나는 보통 이상은 노력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 많은 분야를 경험하고자 했고, 나름 다양하게 놀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줄넘기부, 소묘부, 과학실험부, 합창부와 같이 다양한 동아리를 경험했고, 대학생이 된 지금 음악(밴드부), 항공 학술과 같이 색다른 분야의 동아리에 가입했다. 고등학생 때 100시간이 넘는 봉사활동을 요양원, 박람회, 행사, 재활원 등 다양한 곳에서 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멘토링, 책 나눔 가게, 집수리 등 여러 분야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창의력 대회에 도전하여, 해외 대회까지 나갈 기회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각국의 친구들과 교류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평균 이하보다는 많이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이 일정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듯, 내 인생도 계획대로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더라.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생각했지만, 그래서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잘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알고 보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
사실 그렇게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다. 이런 것 구분 못한다고 입시를 실패하겠는가, 아니면 교수님과 트러블이 생기겠는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다만, 그냥, ‘자신이 생각했던 자신이,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더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게 예상 밖의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은 날, 전과나 휴학을 고민했다. 그리고 아직 그대로 학교 다니고 있다. 지금 와서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고,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살다 보면 비슷한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면.
온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여러분도, 지금의 나도 늦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약간 불필요할지도, 정말로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번쯤 스스로를 의심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나쁘지 않다. 내가 아는 나는 정말로 내가 맞을까?
사실 이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은 모른다. 상황 닥쳐봐야 아는 것이지, 지금 미술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 정말 미술 좋아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혹시나 나 같은 상황이 와도 '나 정말 잘못 살았구나.'하지 말고,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공부를 하며 달려온 고등학생의 시간 뒤, 여유로운 대학생이 되면 의외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 된다. 내가 전생에 소크라테스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철학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많은 고민이 생기기도, 오랜 고민이 해결되기도 할 텐데, 그 시간에 너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이 고민을 하면서도 학교 잘 다니고 있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시간은 많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을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