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불편하게 바라보자
오늘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하지만 작년이랑은 풍경이 사뭇 다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황사용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세먼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가는 걸 몸소 체감 중이다. 마스크는 답답하고 귀찮은 것에서 요즘 같은 날씨에 필수사항이 되었다.
최근 ‘스마트폰’하면 쉽게 떠오르는 브랜드, 애플과 삼성에서는 전면 홈버튼을 모두 없앴다. 애플은 전면 홈버튼을 없앤 최초의 아이폰 ‘아이폰X’를 두고 이런 카피를 내걸었다.
“미래와의 조우”
가격도 미래와 조우해버린건 아쉽지만, 애플이 앞으로 나아갈 아이폰의 방향성에 대해 제시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홈버튼 있는 핸드폰은 구형 핸드폰이 되었다. 터치보다는 자판이나 버튼을 꾹꾹 누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나는 이 변화를 파도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파도치지 않는 바다는 없다. 그리고 파도의 크기와 속도, 방향은 항상 다르다. 우리가 바라보는 파도는 시시각각 새로운 파도이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온다. 그리고 우리는 파도를 절대 멈출 수 없으며, 피할 수도 없다. 변화가 그렇다.
내가 최근 가장 크게 느낀 파도는, 차별이다. 대상은 누구에게도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남성에 대한 차별도 혹은 학생과 군인에 대한 차별에도 파도가 치는 중이다. 평등에 관해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2017년 도입된 청와대 국민청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청원이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국정 철학을 지향지향·반영하고자 도입한 청와대가 활용하는 직접 소통의 수단 중 하나이다.) 물론 국민청원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면서 싸움터로 전략된다 거나 특정 개인에 대한 지나친 공격이 문제된 적도 많다. 하지만 국민 청원이 도입된 이래로 20건 넘는 답변이 달렸고 그중 ‘인권/성평등’분야가 가장 많았다. 국민 청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호소가 전달되는 창구 역할만큼은 톡톡히 한 것이다.
‘충분히 살기 좋은 시대잖아.’
‘배부른 소리 하네. 나 때는 안 그랬어.’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야? 나도 비슷한 정도의 차별은 많이 받아.’
끊임없이 파도치는 세상에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들에게 한 번쯤 되묻고 싶다.
“파도치는 세상에 물끄러미 서있을 건가요?”
차별은 있거나 없는 존재이다. 차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차별은 있다는 이야기다. 차별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평등한 세상이 찾아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평등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프로 불편러’라는 말이 있다. 매사 예민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편한 것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프로 불편러라는 말로 그 사람을 손쉽게 위축시킨다. 불편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는 우리가 프로 불편러가 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 불편러 뒤편에는 ‘화이트 불편러’가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불의를 볼 때 마다 정의롭게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이트 불편러를 프로 불편러와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저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은 다르다. 화이트 불편러의 지적은 세상을 조금 더 좋아지게 만드는 한걸음이다.
“피해자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당했겠지.”
지금은 길가다 돌 맞을 소리라고 하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가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는 것이다. 학교폭력 당한 아이에게는 가해자와의 화해를 강요하고, 성희롱 당한 여성에게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었어.’라고 반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변화가 찾아오게 된 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틀린 것을 알고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적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때도 많다.
차별을 대하는 바른 예시
“제가 당신을’검둥이’라고 부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나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인데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저한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검둥이’라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거니까요.”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中
이 글을 마치며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좋았던 시절을 떠오르며 그 때에 얽매여 있는 것은 더 이상 바보 같은 일이다. 2g폰을 쓰던 시절이 좋다고 해서 지금의 스마트폰을 2g폰으로 바꾸는 것은 퇴행이다. 불편해지고 있는 세상을 무관심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