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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n 24. 2018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멍하다. 멍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나날이다. 넋이 나갔다. 그런 기분이 있다. 삶이 낯설고, 겉도는 것 같고,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고, 무기력하고, 내가 지금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기분, 머리가 텅 비어버린 기분, 유체이탈의 기분,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묻게 되는 기분, 한 마디로 인생이 끝장난 것 같은 기분이 있다.


 2018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2018년에 테러당한 기분이다. 2018년이라는 이름의 무장단체가 습격해서 재산을 다 털어가고 졸지에 길에서 깡통 차는 기분이다. 반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는가.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2018년 종목에 투자해서 벼락부자가 되고 ‘투자의 기술’ 책이라도 한 권 낼 줄 알았다. 성공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쫄딱 망하고 한강 다리 전전하는 투기꾼 신세가 될 줄 몰랐다.



 보통 새해가 되면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 다이어트에 도전한다든지 영어 회화를 배운다든지 금연 금주를 결심한다든지 말이다. 게을러서 뭔가를 계획하는 성격이 아닌데 올해는 달랐다. 성과를 내야 했다. 마음먹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적극적으로 일을 만들어갔다.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연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의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우격다짐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 타인과 마땅히 구별되어야 하고, 구별되기 위해선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 우격다짐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 경우는 비주류 인생의 우격다짐에 해당한다. 계량지표, 통념적 기준에서 남들보다 잘나지 않은 건 상관없다. 단 남들과 달라야 한다. 그게 입증되려면 내적인 동기에 의해 시작한 일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구별된다.


 당연히 되는 것 따위는, 당연히 없다.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예외는 없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각자 삶에서 특별하다. 동시에 우린 모두 특별하지 않다. 우주의 일부이지 우주의 예외가 아니다. 뜻대로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그건 내 의지와 무관하다. 자신이 인피니티 건틀렛을 장착한 타노스(Thanos)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간단한 진리를, 참담하게 실패한 후에야 깨달았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2018년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건 도저히 수습이 안 된다는 뜻이다. 수인번호 716의 말처럼, 내 처지가 몹시 서럽게 느껴졌다. 조울증(양극성장애)은 심각해졌고 급기야는 피해망상에도 시달렸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 때문에 멀쩡한 정신으로 지낸 적이 없다. 걸어 다니는 폭탄이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났다. 어느 새벽, 눈을 떠보니 횡단보도 중앙 가로수에 넘어져 있었다. 몸을 일으켰더니 흰색 후드 티셔츠 위로 핏방울이 떨어졌다. 이게 과연 현실인가. 잠시 상황 파악을 하는 와중에도 핏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비현실적이었다. 머릿속에선 현실이 진행됐는데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 현실은 사라지고 없었다. 현실이 교체됐다. 강렬한 기억, 번거로운 일들, 약간의 트라우마, 작은 흉터가 새로운 현실이 됐다. 그래도 운이 나쁜 것 중에선 운이 좋았다. 운이 제대로 나빴다면 불빛을 본 순간 모든 현실이 소멸했을 것이다. 흉터가 현실로 확정되고 가장 먼저 사진을 찾아봤다. 현실은 거울이 아니라 사진에 있어야 하니까. 흉터는 현실이 아니어야 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주어진 현실이었다.


 평소 우린 죽음을 남의 일처럼 여긴다.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 마치 영생(永生)의 존재라도 되는 듯이 살아간다. 자기가 누군지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자기가 뭘 하는지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모르고, 시간이 자기 것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은 비틀거리는 사이에 찾아온다. 죽음과 친숙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죽음을 실감 나게 느낀 건 처음이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게 진실이었다.

 삶이 고단하면 그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불행 경연대회라도 나가고 싶던 무렵, 기도를 많이 했다. 종교를 갖는 심리를 이해했다. 구원을 동냥했다. 현실을 마법처럼 바꿀 기회를 기다렸다. 동정심에도 호소하고, 협박도 하고, 요구의 정당성을 논증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거래를 시도했는데 망할 하늘로부터 돌아온 건 거듭된 실패와 교통사고였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기회는 자기가 쟁취하는 거지 하느님이든 누구든 남이 주는 게 아니다.


 인과법칙을 삶의 신조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랬는데 얼빠진 표정으로 절에 가서 만 원짜리 소원성취 부적이나 붙이고 있다. 공직 후보자도 아닌데 삶이 검증되는 기분이다. 너도 알잖아? 누군가 섬뜩하게 웃으며 말한다.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게 아니었다. 우린 경험한 만큼 알기 때문이다. 경험한 만큼 안다는 말을,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하고 살았다. 2018년의 절반을 경험하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난 모르겠다는 거다. 버티는 게 뭔지, 버리는 게 뭔지, 산다는 게 뭔지 난 모르겠다.


 현실은 무겁다.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은 조용하다. 현실은 단호하다. 현실은 모호하다. 현실은 수렴한다. 현실은 뒷모습이다. 현실은 불가항력이다. 현실은 존재한다. 존재하는 현실에 존재한다. 결국, 도달하는 곳은 수용이다. 묵묵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모르긴 몰라도, 그건 현실일 것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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