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인간이란 존재는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 관계를 맺는데 인간의 의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의 질문들을 철학 수업을 들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이러한 내 관심사와 잘 맞았다. 또한 인간, 나아가 존재에 대한 탐구는 철학만의 영역이며, 생물학은 생명체들을 구성하는 성분, 그 성분들이 작동하는 원리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내 생각을 바꿔 주었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한 내용들은 내게 인문학의 관심사들에 대한 과학적 대답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적 질문들에 답한다. 저자는 생명체(개체)는 유전자에서 비롯되며, 개체는 유전자의 보존과 후대로의 전달을 목적으로 삼는 생명 기계라고 표현했다. 이 생각은 인간을 그것이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들을 안전하게 후대로 넘겨 유전자가 불멸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자신을 만든 유전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고 본다.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만들고 그것을 다음 세대 개체에 전달함으로써 불멸한다. 다음 세대 개체로 전달하는 방법은 생식,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우리는 자손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유전자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볼 수 있는 동물도 자손을 남기지 않는 개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물들이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은 주로 수컷들 사이에서, 암컷이나 번식을 위한 영역을 둔 싸움에서 진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손을 남기지 않는 상황을 동물의 경우와 동일시 하기는 힘들다. 인간이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경우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거나, 배우자를 만났다 해도 둘 간의 합의 하에 자녀를 갖지 않는 등의 다양한 경우로 자손을 남기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일어난다. 이러한 거부는 유전자가 고려하지 못한 의지, 정신작용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인간의 진화를 얘기할 때 유전자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작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전개하려는 논의는 현대인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만이 진화의 기초라는 입장을 버려야만 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p.321) 저자는 11장에서 문화 전달의 단위 도는 모방의 단위를 의미하는 밈(Meme)이라는 새로운 자기복제자에 대해 설명한다. 밈은 유전자보다 더 뒤에 나타난 자기 복제자이다. 유전자들이 모여 복합체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란 개체가 등장한 후에 여러 인간 개체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 시작하며 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다른 유전자들과 결합하듯이, 인간 개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모였으며, 이 밈은 그러한 개체들의 생존에 대한 사회적 정보들을 모은 것이다.
밈과 유전자는 둘 다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유전자는 생명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밈은 문화와 같은 사회적 지식들에 관련된 정보를 보관한다. 또한 밈은 다수의 유전자들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로 묶일 수 있는 것처럼 복합체를 이룬다. 유전자들이 복합체를 이루는 것은 자신의 생존 때문이지만, 밈의 경우 밈을 만든 인간 개체가 생존하기 위해 직접 밈들을 모아 복합체로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비약해서 말하면 밈 또한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탄생한 부산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설령 밈이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탄생했다 하더라도, 현대인의 진화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녀 양육에 많은 돈이 든다는 사회적 인식도 밈의 복합체로 볼 수 있다. 화폐경제 체제라는 밈은 인간 개체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이 자녀 양육이라는 활동에 영향을 줘 사회적 인식이라는 밈을 만들고, 그 밈은 양육에 투자할 비용이 충분하지 않은 인간개체가 자손을 남기는 것을 포기하는 데 영향을 준다.
종합하면 인간이란 개체는 다수의 유전자들이 서로의 생존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유전자 복합체이자 사회적, 문화적 정보를 가진 단위인 밈들의 복합체이다. 유전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인간이란 개체를 만들었고, 또 인간이란 개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밈이란 새로운 자기 복제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밈은 인간 개체의 생존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자신들을 만든 인간 개체의 행동을 지배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 개체는 존재 근거를 유전자와 밈 둘 다에 두는 복잡한 존재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생명체의 발생과 진화는 이기적 속성을 바탕으로 하는 유전자들의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순히 진화와 생명의 기원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작업은, 보통 인문학적 문제로 판단되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고찰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