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아주 확실하게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피곤했던 삶, 남들의 시선과 괴롭힘 속에서 작아지던 나라는 존재, 바닥을 기는 자존감, 그 모든 게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또다시 시간을 돌려 생각해보니 고3 때 나는 자살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항상 그랬었지만 딱 한 번은 제대로 죽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누구 앞으로 유서를 써 놓을 것인지, 영혼이 빠져나간 내 육체는 어떻게 쓰이길 바라는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그 일기장에 써 두기까지 했다. 죽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자퇴서를 제출하고 집에 눌러 박혀 빛과 멀어져 살던 20살의 9월. 나는 문득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효진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고3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존재하는 부분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주로 정신의학과인 만큼 정말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의붓아버지의 폭력과 형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키조를 앓는 남자주인공, 섹스하지 못하는 관계 기피증을 앓는 여자주인공, 주변 사람들이 앓는 투레트증후군, 품행장애, 해리성 장애 등.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병을 궁극에는 인정하고 치료받으며 서로를 치료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틀 동안 16회 분량의 드라마를 모두 봤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분명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근처 대학병원의 정신의학과를 찾아갔다.
여러 종류의 설문지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고, 나는 꽤 많은 양의 설문지를 작성해 제출했다. 선생님께선 말씀하셨다. 우울증이라고. 우울증이라는 세 단어가 내 귓가에 들릴 때 나는 숨도 못 쉴 만큼 펑펑 울어버렸다. 솔직히 나는 은연중에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덜컥 확답을 받아버리니 눈물이 솟구쳤다. 길게만 느껴진 내 10대 시절이 머릿속에 빠르게 지나가면서 내가 불쌍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약 처방을 기다릴 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 두 사람 모두가 한동안 말없이 계속 눈물만 흘렸다. 몇 년간 눈물 한 번 제대로 흘리지 못하고 모아두었던 것이 다 쏟아내어 지는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친구와의 2시간 동안의 전화에서 내내 울었다. 온종일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몰랐지만, 울었음에도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처음으로 먹어본 적 없는 약을 삼켰다. 살짝 몽롱해지는 정신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부정했었다. 그리고 원망했었다. 그 아이들 모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내가 스스로 날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엄연히 내 안에서의 추측에 불과했지만, 누군가가, 무엇보다 전문의가 나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는 확답이 된 것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SNS를 열 때마다, 주변 친구들에게서 그 아이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처지를 비관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희가 준 상처들이 모여 내가 이렇게나 고통받는데, 왜 너네는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거냐며 온종일 저주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매일 나라는 존재를 짓밟고 무시하며 우습게 여기던 그 아이들이 왜 지금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까마득히 과거처럼 잊고 살 수 있는지 용서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나라는 존재를 잊은 채 미래를 살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 아이들과 함께 과거에 머물러 있던 것이었다.
그런 내게 면담치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치료라고 해서 용서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할 필요는 없다고. 지금 우리는 과거의 상황 속 내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더 중요한 거라고. 그제야 나는 내 과거를 제대로 마주 보고 돌아봤다. 그 과거 속에는 나조차도 외면했던 진짜 내가 있었다. 흔히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어땠는가. 남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나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내 험담을 하며 작아지는 나 자신을 창피하고 보잘것없게 여겼다. 하찮고, 나약하고, 못났고, 어리석고, 멍청하다 여겼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분명 그 아이들은 나에게 폭력을 가한 것인데 나는 그 상황에서 크게 발버둥 치지 못 하는 내가 미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꺼내줄 수 있었다면 하고 말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방치했다.
그 이후 진행된 치료는 순조로웠다. 치료에 임하는 내 태도가 변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과거 속 나약할 수밖에 없던 나 자신을 이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픈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날 꺼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약 2년의 세월 동안 나는 우울증약을 복용하는 것과 동시에 면담치료를 병행했다. 굳이 과거의 아이들을 용서하지 않아도, 굳이 과거의 나를 가엾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아도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앎으로써 마음의 병이 가벼워졌다. 다들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나를 가장 모르는 것 또한 나이기 때문이다. 주말만 되면 수시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혼자 캔맥주 하나를 손에 들고 한강 공원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날도 있었고,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주말은 오직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했다. 작년 연말에는 엄마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다녀왔다. 약 3년 동안 닫아둔 SNS도 얼마 전에 계정 비활성화를 풀었고, 최근에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뵈러 다녀오기도 했다. 내 마음이 가벼우니 내 주변 일들도 유난히 버겁게 느끼는 일이 줄어들었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사회적 통념상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병은 쉽게 이해받을 수 없다. 나도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 다른과 진료를 보러 온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딱 봐도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정신과에 와 있는 것이 신기하고 뭐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치료받아야 한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작가 노희경이 드라마를 집필하며 이런 소개 글을 달아두었다.
작은 외상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보는 이야기
길에서 엎어졌을 때, 코에 콧물이 날 때, 피부에 뾰루지가 올라올 때 등 우리는 쉽게 병원을 방문하고 쉽게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그런데 왜 마음의 병은 방치하려고만 할까.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힘겨우면서도 짊어지고 살아가려고만 할까.
한 간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신과 병력이 있는 사람은 취직도 잘 안 되고, 무언가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력서를 냈는데 내 병력을 본인 허락 없이 열람한다? 당장 법원에 고소하면 되겠다. 사회가 만들어 낸 헛된 헛소문들이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치료할 용기를 잃게 하고 있다.
나 또한 정신과를 방문하기 전에는 그 편견 속에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의 나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정신과는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선택한 것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부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그리고 선택하길 바란다. 마음의 병은 분명 치료받아야 한다. 또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용기 내주길 바란다. 마음의 병은 치료받을 수 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