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의 오해와 진실
(※이 글은 최정윤 작가의 <스탠드업 나우 뉴욕>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페이지 표시가 되어있는 문장은 직접 인용된 부분입니다.)
요즘 유병재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핫한 연예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꾸준히 방송에 나오다가 유튜브에서 영상 몇 개를 올리더니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걸 한다고 그런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뭐지?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1인 코미디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대 구성은 마이크, 마이크 스탠드,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로 어느 정도 정해진 판의 형식이 있고, 한 명의 코미디언이 무대에 올라가 오로지 ‘말’로 웃음을 주는 것이 스탠드업 코미디이다. 사실 웃긴 인터넷 강의 강사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나 TED에 나오는 강사들, 말주변이 좋은 사회자들, 1인 BJ(인터넷 방송인)도 스탠드업 코미디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p.18).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는 목적 자체가 ‘웃음’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에서 시작되어서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온 코미디 장르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클럽도 매우 많고, 문화의 중심에 스탠드업 코미디가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르일 것이다. 아마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유병재’ 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오해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몇 가지 오해를 풀고,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길 방법들에 대해 알려주려고 한다.
사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이제야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처음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한 것은 주병진, 김병조, 김형곤, 자니윤으로, 1980년대에 정치풍자를 위주로 공연을 했었다. 자니윤은 <자니윤 쇼>까지 만들어 정통 미국식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하기도 했다(p.81). 하지만 그 당시 정치풍자는 국가적으로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에 금방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고, 그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오면서 유병재가 ‘스탠드업 코미디의 문익점’으로 역할을 하며 대중들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를 알렸다(p.28). 그러면서 기존의 슬랩스틱, 만담 위주의 개그 공연에 시큰둥했던 한국 대중들은 새로운 자극인 스탠드업 코미디에 점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메이저에서 유병재가 알리고 있을 때, 마이너에서는 <스탠드업 라이브 코미디쇼>가 인기를 끌게 되었고, 국내 최초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 <코미디 헤이븐>도 오픈(6월 8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복고 열풍처럼 다시 한번 스탠드업 코미디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흔히 블랙코미디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스탠드업 코미디와 블랙코미디를 구별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의 형식이고, 블랙 코미디는 코미디의 내용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 명이 무대에 올라가 이야기를 하는 식의 코미디 유형을 얘기한다. 그리고 블랙코미디는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씁쓸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미디이다. 유병재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구정에 죽어야 느이들이 제사 지내기 수월할 텐디’와 같은 거다. 흔히 세상의 부조리, 정치 세태, 사회적 이슈들을 풍자하고 희화화하며 웃음으로 눈물 닦기 하는 걸 블랙코미디라고 한다. 전통 사회에서 찾아보자면 양반들을 풍자하는 해학이랄까? 그런데 스탠드업 코미디와 블랙코미디가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주된 소재가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최근에 와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유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요지경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권이 터진 이후 정치 풍자가 거의 모든 코미디에서 자주 등장했고, 대중들은 열광했다. 욕할 거리가 많은 세상에서 정치풍자는 짙어지기 마련이고, 이젠 그것을 담는 그릇이 스탠드업 코미디가 된 것이다. 과거 80년대에 스탠드업 코미디가 시작됐을 때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지만, 이제 2010년대 한국에서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꼬집을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꼭 종교, 인종, 성별, 계급같이 무거운 금기 소재를 다루는 것 만이 스탠드업 코미디는 아니다.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한없이 가벼워져서 농담 따먹기처럼 일상 속에서 떠올랐던 참신한 발상들을 소재로 공감과 웃음을 유도해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끔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강이나 강연과 비슷해서 교훈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스탠드업 코미디에 교훈은 전혀 없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원하는 것은 정말로 ‘웃음’ 그 자체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탠드업 코미디는 금기를 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가끔은 ‘웃어도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최근에 ‘미투’가 퍼지면서는 성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나도 이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코미디의 현장에서 그런 코미디가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장을 벗어나서 어떤 사회적 토론의 장이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웃을 수 있는지 그 경계를 짚어주는 것이 코미디언의 역할이고, 그 경계 사이에서 대중들은 사회적 이슈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실제로 미국은 사회 이슈를 공론화시키기 위해 경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코미디언들도 존재하고, 그로 인해 체포되기도 한다(p.23). 하지만 그로 인해서 대중들은 더욱 사회이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 명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본이 없거나 거의 애드리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 코미디언은 대본을 짜고, 웃기는 기술을 개인의 스타일대로 체계적으로 계획한다. 이야기를 쌓아 올리다가 터트리기도 하고, 연기로 웃기기도 하고, 마지막에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해서 뒤통수를 때리기도 하고, 한 문장으로 웃기는(원라이너) 등 각자 코미디언이 뽐내는 기술은 다양하다.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계획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애드리브인 것처럼 보여줘야 하는 고도의 연기력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원래 말을 웃기게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뒤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는 백조이다. 물론 현장의 분위기, 관객의 반응에 따라 무대 위에서 즉각적인 대본 편집이 이루어져서 애드리브를 하기도 한다. 애드리브로 웃기는 게 쉽지 않을 뿐.
사실 이건 유병재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 방송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코미디를 하고, YG에 들어가고, 유튜브에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놓은 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기 때문이다. 유병재의 <B의 농담>도 유병재가 어떤 사람인지, 코미디의 질이 어떤 지를 떠나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아니라, ‘유병재’를 알아야만 웃을 수 있는 농담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오픈 마이크’라는 관문을 거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거듭난다. 오픈 마이크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이다.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이든, 성별이 여자든 남자든, 어리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이 ‘웃음’만으로 평가받는 자리이다. 유명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관객들을 말로 웃기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정말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평소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늘 접해왔던 것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보는 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였다. (데이브 셔펠, 지미 양, 빌버 등을 즐겨봤다. 유튜브에 스탠드업 코미디만 쳐도 많은 영상이 나오니 찾아보시길!) 한 때 돈을 많이 벌어 한국에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을 차리는 게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초, 4명의 남자가 모여 매주 홍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라이브쇼>를 알게 되었고, 거의 격주로 홍대에 출석 체크를 하게 되었다. 이들은 정말 바닥부터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병재가 유명해지면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한강 눕콘이나 레인보우 페스티벌 같은 곳에 초청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그렇게 <코미디 헤이븐>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까지 열었고, 앞으로는 안정된 공연장에서 매주, 매일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의 클립들을 통해 영상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직접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직접 공연을 보게 되면, 코미디언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 마치 내가 공연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웃음을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한 명의 관객이 웃을 때 그 웃음이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한국에서도 잘 찾아보면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길 기회가 많으니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아직 미국만큼 대중적이지도 않고,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앞으로 스탠드업 코미디가 국내에 자리 잡아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