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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Sep 11. 2018

철학과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다니며 내가 마주한 것들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에도, 또 대학을 진학하고 난 후에도 철학과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철학과와 철학은 신비로운 베일에 싸여있는 상자와 같이 알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이 단어 자체로도 어렵고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으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고등학생 때 철학과에 진학할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거나 또 대학에 와서도 철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삼고 싶거나 교양으로 철학과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하는 학생들 또한 많다. 철학은 미지의 영역인 듯 보이나 한 번쯤 접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철학과에 3년째 재학중인 학생으로서, 이 글을 통해 철학과와 철학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이 철학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신비로운 베일 속에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Q. 철학과는 어떤 곳인가요?


- 대학의 철학과는 어떤 곳인지, 제가 재학 중인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의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희 학교는 1학년 때 특정 과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과학계열로 입학하게 되고 1학년 필수과목들과 다양한 학과의 입문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며 진학할 과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선택을 돕기 위해 대학에서 시행 중인 대표적인 제도가 ‘가전공’입니다. 1학년 학생들은 입학 전 지망하길 원하는 과를 말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전공’에 소속되어 해당과의 다양한 행사, 선배·교수님들과의 만남, 학회 및 소모임 참여 등을 할 수 있습니다. 1학년 개강 초기에 시간이 남는다면 대부분 가전공의 과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학교생활과 전공선택에 큰 영향을 줍니다.

가전공 활동 중에서도 철학이라는 학문이 피부에 와 닿는 활동은 학회라고 생각합니다. 학회란, 각 과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학술적 활동을 위한 모임을 과 학생회에 승인을 받은 단체를 뜻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아리와 비슷하지만 학술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 과마다 특색이 있고 과 학생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학회의 특별한 부분입니다. 공모전이나 취업 스펙을 쌓고자 하는 학회가 있는 다른 과들과는 달리, 저희 학교 철학과의 학회들은 각각 학회원들의 개인적 관심사, 알고 싶어하는 것들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대학생들이 직접 겪게 되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나누는 ‘소크라테스 카페’,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인 ‘월경’, 읽어보고 싶은 문학을 함께 읽고 자신의 문학도 써 발표하는 ‘진달래 문학회’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곳이 학회입니다.



Q. 철학과 수업은 어떤가요?


- 2학년이 되어서 철학과를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은 전공수업에서 철학가들의 이론들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과목과는 다르게 정해진 답을 요구하며 이러한 수업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사상가들의 의견은 하나의 의견으로 제시되며 개인에게는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하는 사고를 요구합니다. 기본적인 고대 서양 철학사, 독불(독일·프랑스)철학, 영미(영국·미국)철학, 논리학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목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철학은 한 이론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적용하는 과정 또한 포괄합니다. 철학과는 다른 어떤 과보다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공통전공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철학은 심리학과 학생들과 듣고 예술철학이나 문화철학은 예술대학 학생들과 듣기도 합니다. 미래과학기술철학은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기술의 윤리와 발전가능성, 이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연구합니다. 철학과가 아닌 다른 전공의 대학생들은 각자의 전공에서 하나쯤 ‘철학’이라는 단어가 붙는 수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철학이 다양한 분야와 관련되고 이러한 전공수업들을 통해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들을 가진 학생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전공수업에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을 만나 다양한 사례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철학과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철학과 대부분의 수업은 토론과 학생 주도의 발표, 논술형 시험 및 리포트로 평가됩니다.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리포트를 쓰거나 논술형 시험을 보는 것이 좋은 평가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포트를 쓰면서 스스로 추가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배운 것들을 응용해서 써야 하니 공부도 돼서 좋다고 생각하는데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논술형 시험이 많다 보니 백지시험을 칩니다. 이를테면 한국지리라는 과목을 한 학기 동안 배우고 기말고사를 칠 때 선생님이 들어와서 하얀 A4용지를 나눠준 후 칠판에 ‘한국지리에 대해 논술하시오.’ 이렇게 쓰는 것이 전부인 시험입니다. 그러나 토론, 논술형의 시험, 리포트, 발표라는 평가방법은 정해진 형식이 없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정답을 써야 하는 시험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한 것, 경험을 녹여서 써야 하는 경우도 많고, 리포트는 스스로 흥미 있는 분야를 주제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어느 학과보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관심사와 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부분 제가 느낀 철학과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학회활동과 수업에서 보이듯이, 저희 학교 철학과에서 철학의 모습은 자유로운 많은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바라보고 자신의 시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Q. 철학과에 가서 어떤 점이 좋았나요?


- 제가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나’라는 존재가 오롯이 ‘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듯이, 저도 철학과에 오면 정신적인 성찰을 하고 혹은 이상적인 이론들을 탐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의무론, 공리주의, 덕윤리에 대해 배우고 또 인간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로 나누고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것이 철학과의 전부는 아니지만, 철학과에서 배우는 수업은 맞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제가 철학과에서 제일 많이 겪은 철학은 생각하는 ‘Thinking’이 아니라 실천하는 ‘Movement’였습니다. 


가장 처음 이론이 아닌 실천하는 철학을 느끼게 되었던 건 새내기 배움터였습니다. 새내기 배움터는 새내기들이 처음 대학에 다니기 전에 ‘가전공’에 속해서 참여하게 되는 행사입니다. 미리 학교 생활을 알아보고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곳에서 처음 본 선배들은 제가 후배인 것을 알고도 아무도 다짜고짜 하대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 호칭과 말 높임에 관해서 합의하였습니다. 이는 거창한 칸트나 플라톤의 사상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의 실천이었습니다. 


또 하나 새내기 배움터에서 술 먹기 한 시간 전에 강제로 술을 권하는 행위, 권주가(술을 권하는 노래, 게임에서 졌을 때 술을 먹게 하면서 부르는 노래) 중 어떤 단어는 차별적 요소가 있으니 부르지 말 것 등 많은 것을 교육받았습니다.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병신’이라는 단어나 ‘여성스러운’, 혹은 ‘남자는 ~ 해야 한다.’ 등의 말들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누군가는 이것에 의해서 억압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억압은 타인이 이야기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나같이 통통한 사람은 크롭티를 입으면 안 어울리니까 그냥 체형에 잘 어울리는 옷이나 입어야지’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다양한 매체와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서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지 못하게 된 경우였습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자신에게 어떤 우울한 기분을 주는지 몰랐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가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억압을 만드는 매체는 어느 때는 사회고 매체고 주변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억압을 부술 수 있게 하는 것은 스스로 돌아보고 무의식적이었던 생각에 직면하면서,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옷을 내가 입을 수 있다고 생각(Thinking)할 뿐만 아니라 그 옷을 입습니다(Movement).

또 철학과의 매력에 대해 느낀 순간은 철학과 동기들과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였습니다. 성 소수자에 대해 옹호 또는 반대하는 견해 뿐만 아니라 온건하게 옹호하는 견해도 있었으며, ‘성 정체성은 선천적인가?’, ‘환경적 영향을 받는가?’, ‘양성애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등과 같은 여러 논쟁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섣불리 결론을 내리거나 비난하지 않고 각자의 주장에 대해서 존중을 해주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 이외에도 수많은 실천을 통해 철학과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표현했습니다. 스스로의 의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함 자체에 절대로 비난받지 않습니다. 손을 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처음 한글을 배울 때 모든 것에 “왜?”라고 물어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이후의 중·고등학교 생활을 거치며 의문을 제기하지 말 것과 “이건 그냥 그런 거야. 외워.” 이런 말들을 무수히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구성원 모두의 생각을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고 공유하며 존중하는 철학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학생이라서 하지 못했던 자기표현들, 여성·남성이라서, 어리기 때문에라는 선입견적인 이유로 억압받던 생각들이 모두 인정받고 실천될 수 있다는 것이 철학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철학은 무엇인가요?

-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겪고 느끼는 세계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가지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고 철학과에 오면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 철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면서 베일에 가려진 듯이 보였던 미래가 갑자기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행위가 수반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행위는 철학과에 오지 않아도 많은 학생이 혼자서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통해서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과 재학생으로서, 철학은 보다 더 ‘나다운 나’를 찾게 해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세계가 단순한 망상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논리적인 사고를 계속해나가고 그 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을 찾아 직접 행하는 것 모두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과의 수업을 듣는 것은 자신의 철학을 잘 구축했던 사람들, 그들만의 세계와 답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것을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제 세계와 관점은 완전하지 않지만 조금씩 행동하고 바꿔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불편함을 참지 않고 표출하는 행위가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의문을 제기해도 될까,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주저되었던 말들도 내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된 것도 철학과에서 배운 행동(Movement)이 제 개인에게 준 변화입니다.


우리가 종종 일상에서 자신만의 믿음이나 생각에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듯, 생각보다 우리는 베일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신만의 옷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역시 철학이듯 말입니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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