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놓은 길만 따르는데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우리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무려 12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온다. 지금 여기서 멈춘다고 곧 이 세상이 무너질 것도 아닌데,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사실 공부한다가 아니고 해야 한다 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대학 신화’는 우리의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서 받는 보상이다.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예뻐지고 잘생겨져.”, “일단 대학 먼저 합격해. 그리고 너하고 싶은 거 다 해.”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당연히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지.” 그런데 그렇게 대학에 가면 어른들 말처럼 그 '유예한 행복'을 다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된다 한들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모두 NO라고 말하고 싶다.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 제재를 가할 정도로 심각한 선행 교육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3, 뭐 요즘은 심지어 초등학생부터 시작이라고 하던데 나이에 상관없이 학업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겪는다. 굳이 입시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매번 치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를 보며 끊임없이 그 부담감에 짓눌려 살아온다. 요즘 입시 트렌드는 수시가 대세니까 다양한 활동이나 교내 대회에 출전해서 학생부도 채워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이내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학생들은 그래도 멈추질 못하고, 여전히 백분위가 어떻더라 이번 1등급 컷은 무엇이더라 하는 말들을 계속 내뱉을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고3이 시작되면 입시 스트레스나 불안은 거세진다. 소화불량, 답답함, 우울함, 기분 처짐 등은 비단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어디를 가야 하는지 그 방향부터 설정을 못 했는데, 일단 대학은 가야 한다고 하는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가 갈 학과, 학교가 명확한 사람들도 많고 거기에 따라 엄청난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대다수 본인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서 일단 아무 과, 아무 대학이나 넣고 본다. 소화불량, 답답함, 우울함, 기분 처짐 등은 갈수록 더해지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래도 이 대학은 갈 수 있겠지라며. 입시불안을 넘어 입시에 실패한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더 크다. 간절히 원하는 대학교에 떨어지거나 하필 수능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평소 실력을 내지 못했거나 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이럴 때, 마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하기를 반복. 옆의 친구들은 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왜 나만 이럴까 자괴감을 느낀다.
입시에 대한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냥 대학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대학’ 말이다. 최근 모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시험문제 유출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이전부터 끊임없이 발생해왔지만, 이제야 크게 조명이 된 듯하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에 대한 답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거듭 강조하는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금의 사회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좋은 대학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굉장한 메리트 중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 대학 입시를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을 알 것이다. 대학교 앞글자를 따서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대학의 순위, 그러니까 급을 매긴 것이다. 최상으로 좋은 학교부터 줄 세우기를 하면서. 보통은 이런 순위에 들어간 대학에 입학하고자 노력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순위권 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보면 치켜세우고 대단하게 여긴다. 물론 사회적으로 좋다고 인정하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정은 한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서 서열을 매기고 그렇게 공고화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공고화된 좋고 나쁜 대학의 기준에 따라서 학교로 사람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자기를 끊임없이 상위권, 좋은 등급, 스카이 대학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는 현상뿐만 아니라 어찌 됐건 대학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 의무교육에 대학교까지 포함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대학 진학만을 바라보고 달린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하자면, 고등학생의 68.9%가 대학에 진학했을 정도로 그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28%, 일본 37%와 비교하면 그 수치가 더욱 와 닿을 것이다. 대학 졸업장의 의미가 많은 것을 가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거꾸로 이 정도로 대학에 가고 있다는 것은 곧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매우 냉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 가지 않은 이들은 실패자이자 낙오자일까. 아직까지는 그런 인식이 팽배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 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고졸은 대졸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버리자. 알고 보면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이 존재하고 그것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대학 진학보다 어쩌면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일 수도 있으니. 오히려 대학에 가지 않아 생기는 많은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굉장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누가 될지 모르겠으나, 누군가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물을 것 같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답을 내리거나 논리적으로 이래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사회적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인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에 오면 행복할 것이라 단언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또 내몰리게 되고 자신의 관심 밖 일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대학 신화로 꿈꿔왔던 많은 것들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렇지 못할 경우도 훨씬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대학 졸업장이 갖는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대단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혹사시킬 정도로 그 가치가 있는지 한 번쯤은 반문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제목에는 대학에 꼭 가야만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앞서 말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아예 ‘대학을 가지 마세요!’라는 책임 없는 소리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많은 청소년이 대학에 가는 확실한 이유를 알고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어떻게 성장을 하고 싶은지 고민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냥 가야만 하니까,’, ‘남들 다 가니까’ 가는 대학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닌, 내 길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될 테니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