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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18. 2018

지난 나의 입시 생활
:수시 준비와 재수


  선선한 바람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듯하였으나,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초겨울이 다가왔다. 11월은 고3 수험생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달이다. 이상하게도 수능 날은 항상 추웠던 것 같다. 지금이야 수능 날의 분위기를 뉴스를 통해 접하지만, 수능을 봤던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떨리는 것 같다. 그동안의 노력이 그날 하루로 평가된다는 것이 이미 겪어본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나의 입시 생활이 어땠는지 떠올려보고자 한다. 



  나는 어렸을 적, 남들보다 비교적 명확한 꿈이 있었다.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친구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반면 나는 언론에서 일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말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내 꿈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입학사정관제: 학생부 등 계량적인 성적뿐 아니라 개인 환경, 특기, 대인관계, 논리력, 창의력 등 잠재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 크게 3가지 활동을 고등학교 내내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임원 활동이다. 중학교 때부터 임원을 해왔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회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친구들이 나를 좋게 평가해준 덕분에, 부회장으로 뽑히게 되었다. 학기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1년 제로 운영되는 것이어서 나는 1년 동안 부회장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1학년 때는, 학교 합창대회부터 수학여행까지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특히 합창대회는 학생과의 협동이 중요했기 때문에 원활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뒤에서 노력하는 임원의 고생을 친구들이 몰라줄 때는, ‘임원을 괜히 했나’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래도 나의 희생으로 인해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때는 정말 뿌듯하였다. 이러한 경험으로 2학년 때는 회장을 맡았다. 1학년 때의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훨씬 더 원활하게 임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활동은 방송국 동아리 활동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방송국 아나운서로 지원해 화요일의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였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의 활동을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으로 활동을 익혔다. 본격적인 활동은 2학년 때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점심방송이었다. PD가 글을 써오고, 엔지니어가 음악을 틀어주고 아나운서가 대본을 읽으며 점심방송이 진행됐었다. 마이크 앞에서 화요일 점심을 책임지며 방송하는 일은 정말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넘쳤던 나는 화요일 아나운서와 더불어 방송국 국장을 맡아 방송부를 이끌어 나갔다. 동아리 국장이 된 만큼,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했었지만 힘들었던 적이 많았었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며 그 정도의 힘듦을 버텨낼 책임감이 나에게 필요했었다. 그래서 더 큰 노력을 했었다. 작은 것부터 방송부원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갔던 터라 아직까지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점심방송과 더불어 방송부가 학교에서 하는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수능방송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능방송을 하기 위해 학교에 갔었는데 수능방송이라는 큰 업무를 방송부 국장으로서 맡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수를 하면 안 되었기에 정말 긴장하며 보조 역할을 하였다. 방송부원끼리 중간에 크고 작은 다툼을 중재하며 동아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웠던 것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충돌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생각이 조화를 이룰 때, 그로 인해 더 좋은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배웠던 것 같다. 

  세 번째 활동은 기자단 활동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 시립 보라매 청소년수련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기자단 활동에 지원하였고, 합격하여 활동을 2년 정도 했었다. 매달 정기적 모임도 있었고, 무엇보다 기사를 계속 쓰고 수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쓴 기사가 신문으로 발행되는 일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수요집회를 취재했던 경험이다. 수요집회 취재를 하러 갔던 날은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할머니들은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계셨다. 나는 한 번도 수요집회 현장에 찾아오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정성을 들여 기사를 쓴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이 고등학생의 기사를 많이 읽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취재 현장에 대한 신문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길 바랐던 것 같다. 직접 발로 뛰고 기사를 쓰고 몇 번을 거쳐 수정한 뒤에 신문이 발행되었다. 평소 편히 읽었던 신문이 이렇게 큰 노력 끝에 발행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임원, 방송부 활동, 기자단 활동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 되었고, 더불어 꿈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입학사정관제와 논술을 준비하며 대학에 붙길 희망했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대학에 붙지 않았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같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부족했기에 떨어진 것이지만 그 당시엔 상황 탓을 했었다. 만족하지 못했던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나는 재수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수하면 내가 가고 싶던 대학에 붙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꽃다운 20살에 나는 노량진 재수 학원을 등록하였다. 처음에는 의지가 정말 불타올랐다. 아쉬움과 더불어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리라는 다짐이 굳건하였다. 그러나,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에 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6개월 반복되다 보니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굳건했던 나의 마음이 어느새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대학에 붙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꾸미면서 실컷 노는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모든 SNS를 다 끊은 상태로 시작하였지만, 길거리에 거니는 사람들만 봐도 부러울 정도였다. 그 당시 내 마음을 다시 잡을 무언가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온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쉬었던 것 같다. 마치 나에게 보상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내가 가고 싶은 대학 후기를 찾아보며 다시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1년을 어떻게 버텼나 싶다. 매일 같은 삶을 반복하는 것뿐 아니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1년 내내 항상 따라다녔던 것 같다.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하며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고3으로 돌아가 그 당시 성적에 만족하며 대학에 입학할 걸’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재수 생활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나의 입시 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지금은 나름대로 만족하며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재수한다고 결심하는 후배들을 보면 ‘힘든 1년을 보내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혹은 고등학생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실제로 대학에 입학해서 자신의 만족감에 못 미쳐 반수, 혹은 자퇴하는 친구들을 봐왔다. 만족감이라는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학에 입학해서도 자신의 만족감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꿈이 없는 친구들은 다양한 활동을 해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찾는 친구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을 찾을 기회는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꿈이 있는 친구들은 자신의 꿈과 관련된 활동을 하며 꿈에 대한 확신을 얻길 바란다. 나는 임원 활동, 방송부 활동, 기자단 활동이 나에게 정말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특별한 경험이다. 단기적으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한 활동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꿈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준 활동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재수를 결정하는 친구들에게 잘 버텨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누구나 의지가 불타오르고 열심히 하고자 한다. 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 후반으로 갈수록, 생각보다 많은 장애물이 있으며, 극복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니, 재수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재수하면 가고 싶은 대학에 붙겠지’가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니, 먼저 재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있는 현실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이와 더불어,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대학교에 와서 놀랐던 것은, 20대 초반의 학생뿐 아니라, 20대 후반의 학생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나의 고정관념에 대해 반성했었다. 시작이 뒤처진다는 것은 그릇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감을 얻기보다는, 내 속도에 맞춰 주체적으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이 내 미래를 정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나 또한 간절히 바랐던 대학에 입학해서 몇 년 학교생활을 해보니, 친구들과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대학 오면 정말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친구들과 장난으로 말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간절했었는데 말이다. 물론, 대학교에 와도 취업과 관련된 또 다른 난관이 존재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수험생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입시 생활을 먼저 경험해봤던 사람으로서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지난 나의 입시 생활이 한 사람에게라도 깨달음 혹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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