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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l 23. 2017

전교 300등에서 20등 되기

....... 이거 실화냐?

나는 중학생 때 꼴통이었다. 사고를 쳐서 꼴통이 아니고 그만큼 공부를 안 해서였다. 얼핏 공부하는 시늉은 잘 냈던 거 같다. 시늉만 냈으니 성적은 바닥이었다. 누군가 넌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냥 공부가 싫었고 간절함도 없었다.


특히 외우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공부가 내 체질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 바빴다. 공부가 싫었던 이유가 별거 없었던 것처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단순했다. 내가 봐도 어이없는 성적표를 아빠에게 던져주며 했던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되면 공부할게.


그때는 왜 그렇게 당당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이왕 놀 거면 당당히 놀고 당당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이 다가오니 좀 불안했다. 단어 한 번 외워본 적 없는 나인데 지금부터 시작해도 괜찮을까? 그렇다고 이대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등수나 깔아주다, 이름도 없는 전문대에 입학해 어영부영 인생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공부는 안 해도 대학에 대한 욕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엉덩이 힘으로 밀어 붙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겨울방학에 맞춰 독서실을 끊고 피엠피와 공책, 필기구를 챙겨 매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독서실에서 처음 배정받았던 책상은 수능을 앞뒀던 고등학교 3학년의 것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물건을 치우지 않아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치열하게 공부하던 이름 모를 언니의 물건을 보며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물건은 수험생 전용 타이머였다. 지금이야 공부한 시간을 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대중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그때는 이제 막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공부한 시간을 이렇게 편리하게 재서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거 같다. 웃기게도 나는 그 시계를 6개월 정도 애지중지 가지고 다녔다. 결국, 약이 다 돼서 다시 시계를 샀어야 했지만 말이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항상 필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듯하게 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고 기초가 없어서 꼼꼼히 필기하지 않으면 까먹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필기하는 습관은 기초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기초는 과감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문제가 되는 건 수학과 영어였는데 수학은 근의 공식부터 영어는 8품사부터가 시작이었다. 내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건가-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 잦았지만 마인드컨트롤을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나에겐 아직 남은 시간이 많았고 이해를 통해 암기하려 했다. 이해하면 외우지 않아도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나는 그게 좋았다. 타이머로 하루에 10시간씩 시간을 재며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모두 놀 때 공부를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실력이 나아짐을 느끼고 예전에는 엄두조차 못했던 문제들이 풀리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평상시에 12시까지, 시험 기간에는 날이 새도록 공부했다. 그래서 새벽에 사람이 모두 나간 독서실의 문을 잠그는 건 항시 나의 몫이었다. 잠을 자는 것이 아까워 친구와 번갈아 깨우며 공부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꼭 모르는 점들을 여쭤봤고 어느새 교무실에서 항상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공부하다 보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기도 했고 침대보다 책상에서 아침을 맞이한 날이 많을 때도 있었다. 그땐 왠지 침대에서 잠드는 게 지는 거 같아서 맘 편히 잘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믿기지 않을 만큼 성적이 올랐고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20등을 했다.


요령 없이 우직하게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2% 부족하다고 느껴진 성적을 메꾸기 위해 비교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덕분에 20등 내외의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학생부종합전형으로 가장 원하던 서울권 대학에 최초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나는 만 3년간의 경험으로 공부도 하면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공부만큼 기회가 많은 것이 없었다. 나보다 시험을 더 잘 본 친구는 단지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보다 더 뼈저리게 공부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내가 더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고 한 문제라도 내가 더 맞출 수 있게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니 정말 그 친구들을 이길 수 있었고 그렇게 슬럼프를 극복했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친구는 공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보이는 곳에서만 하는 공부가 다라고 생각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공부도 별로 안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온다며 쉽게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난 그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공부가 하면 되는 만큼 공부에 미친 친구들은 많고 나도 그만큼 미쳐야 한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재능 없는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천재와 가까워질 수 있다.


모두가 나처럼 포기하지 않고 천재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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