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한국의 페미니즘을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보고 싶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 역사가 아닌, 현재 대학생들 사이의 페미니즘에 대해 문화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다. 페미니즘이 과연 '문화' 인가? 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은 하나의 이론이 아닌, 생활에 밀접한 문화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내면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그런 문화를 꺼리는 사람과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어느 순간 급격히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젊은 세대,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대학생들의 커뮤니티는 매일이 페미니즘 문화에 관련된 싸움이다. 커뮤니티에서는 기존 남성들이 여성에게 부여했던 여성성, 소위 말해 '코르셋'이라고 하는 것을 벗어야 한다는 '탈코르셋'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탈 코르셋을 인증하는 글은 그날의 최고 인기글로 등극한다.
내가 페미니즘이 하나의 문화로서, 특히 대학생들의 문화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들의 생활 자체에 페미니즘이 영향을 주고 있고, 모였을 때 언제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시에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축제 때가 되면 페미니즘을 내세운 활동이나 캠페인이 등장하는 한편, 페미니즘을 비꼬고 비판하는 쪽도 등장한다. 토론 동아리나 사회 이슈를 논하는 동아리에서는 꼭 페미니즘이 주제로 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들은 페미니즘을 하나의 문화로서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있고, 주변 친구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정말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페미니즘이 왜 하필 대학생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대학생인 세대 이전에는 페미니즘이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작았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도 매우 소수였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수가 많아지고, 기존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많이 등장한 것과 맞물려서 현재 대학생 세대에 와서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만큼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가 큰 사회 이슈로 대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대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해있는 여성들보다 목소리를 내기 쉽고, 단합하기 쉽고, 또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리낌도 비교적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최근 대학생들의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페미니즘이 아직 사회생활을 안 해본 어린아이들의 문화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문화를 들고 사회로 나갔을 때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의 영향력이 페미니즘에게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기성세대가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혜화역 시위 등의 젊은 세대의 페미니즘 행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러한 기성세대의 관점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성들에게도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혜화역 시위의 규모가 보여준 바와 같이, 페미니즘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문화로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대학생활을 한 세대가 사회를 나갔을 때는 분명 사회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것들을 바꿀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예를 들어, 기존 대학교 축제 때의 주점은 호객행위를 위해 외모가 예쁜 여대생을 이용하고, 여성 혐오적인 발상으로 메뉴 이름을 구성하는 등의 행동을 계속 해왔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서 여성 혐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등장한 후에는 SNS를 통해 그러한 주점들이 몰매를 맞기 시작했고, 현재는 실제로 많이 사라진 추세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의 문화로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면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 그것은 그 어디에도 '옳은'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자꾸 '옳은' 페미니즘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어떤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면 그것에 대한 반항도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 문화의 선두주자가 있고, 그 문화를 후에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페미니즘은 최근 몇 년 간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이 모든 현상이 복잡하게 얽혀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페미니즘' 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끼리도 그 문화가 어느 정도의 강력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의 진보적인 성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내부에서 싸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옳다는 가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페미니즘 안에서는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자정 작용이 일어난다. 나는 페미니즘이 스스로 자정을 하기 이전에 남성들과의 싸움에서 자리를 먼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만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주류문화가 되기에는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싸움과 자정작용을 통해 페미니즘 문화가 좀 더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되는 것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부의 싸움과 자정작용은 문화가 발전하고 더 넓게 뻗어나가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 소수의 특이한 문화가 아닌, 나중에는 페미니즘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이상할 만큼 여성의 인권을 끌어올려야 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급진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리를 잡을만한 목소리가 생기고, 관심을 끌 수 있고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면서, 과연 나는 이 문화에 얼마큼 발을 담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확실히 페미니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 분위기가 어떤지, 이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선두주자로서 나서지는 않고 있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은 왜 취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사람들도 혜화역 시위에 나갈 수 있도록 하고,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페미니즘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문화가 되기에는 페미니즘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성도 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가 아마 페미니즘이 하나의 문화로서 사회를 진정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