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한 표도 행사할 수 없지만, 곧 주인이 될 학생들에게
5월 9일. 그날 우리는 이 나라의 수장을 새로 뽑았다.
작년, 전 대통령의 수많은 파문과 새로이 떠오른 핫한 키워드 ‘비선 실세’. 그리고 그녀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의혹은 전 대통령 탄핵 운동에 학생 참여를 크게 높이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밤 광화문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 수많은 고등학교의 총학생회장이 촛불의 선두에 서서 시국 선언문을 낭독했다. 길바닥은 아주 차가웠고 바람은 현 시국을 대변한 듯 날카롭고 매섭게 불었다. 그러나 교실에서 ‘아, 추워’를 숨 쉬듯 내뱉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학생들은 결의에 차 있었고, 자신의 행동이 무언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29년 겨울, 1960년 봄과 마찬가지로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밝혔던 촛불 집회에 분명 ‘청소년’이 있었다.
그냥 그곳에 서서 힘을 보태 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 자신이 촛불이 되어 나라를 바꿔보고자 했다. 탄핵은 이루어졌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죗값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동복에서 하복으로 갈아입고, 중간고사준비를 하고, 수능을 준비하던 예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5월 9일에는 특별하게 조금 늦은 등교를 했거나 집에서 오랜만의 휴일을 맞았다. 투표일 이였기 때문이다.
…… 뭔가 이상하다. 아무도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작년 겨울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발언과 시국 선언, 외침에 ‘큰 박수를 보낸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다’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던 대한민국과 같은 곳이 맞는 걸까? 필자는 뭐든지 항상 ‘그 이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6부작 인기 미니 시리즈도 시리즈 말미에 항상 2 years later…….을 반드시 삽입하는데 왜 우리는 그 큰 사회 변동의 N years later을 신경 쓰지 않는가.
공직선거법의 목적은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의한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 이다. 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 수호!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은 만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선거권이 부여됨을 명시하고 있다. 만19세 이하 청소년들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것이 어떤 법익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이번 대선에서 단 하루 차이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 친구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후보들의 공약을 읽고 따졌던 친구다. 물론 작년과 올해 광화문에서 수도 없이 촛불을 켜왔던 국민이기도 하다.
제 손으로 새롭게 선택한 대통령이 보고 싶다던 친구는 이 나라에 큰 탈이 없는 한 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같은 아쉬움이 있는 학생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만 만19세 이상의 선거 적정 연령을 두고 있다. 일본, 미국, 독일 등 32개국은 18세 이상, 오스트리아는 16세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이 아닌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쿠바 등도 16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선거 연령 하향은 세계적인 추세다. 물론 대한민국도 선거 연령에 관한 움직임이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많이 커졌다. 드디어 고등학생들의 인지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선거날 한 사람의 국민으로 인정해주자는 의견이 힘을 받아 정식으로 제안되었다. 6월 29일 박인숙 국회의원(바른정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가 그 시작이다. 주요 내용은 선거 연령 18세 하향조정과 투표 마감 시간 변동이다.
사실 몇몇 정치에 큰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의 활발한 대내외적 활동으로 인해 어른들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 욕구를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괜한 기우였던 듯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17개 고등학교 1~3학년 1,4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투표 연령 만18세 하향 조정의 찬성이 65.9%로 지난해 24.7%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도 연일 보도되는 각종 뉴스와 언론매체들로 인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이지만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중고등 학생 여러분! 우리도 같이 정치합시다!”다. ‘고등학교’와 ‘정치’, ‘정치인’이 한 묶음으로 묶일 때가 있을까? 대선주자들이 모교에 방문해 교복 입은 학생들을 한가득 세워놓고 마치 이 학교의 영웅처럼 사진을 찍을 때뿐이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선거일수록 후보의 모교 방문은 필수코스다. 사실 겪어본 입장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다. 운동장이 취재진 차량으로 가득 차 일주일에 몇 번 없는 체육 시간이 취소되고 몇몇 반을 사진과 구색 맞추기용으로 강제 동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에 대한 공약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당선 시 가장 먼저 새로이 할 교육제도 등을 알기에 씁쓸했다. 1년 단위로 바뀌는 수능제도, ‘비운의 00년생’이라고 불리는 제도실험세대, 선진국을 쫓으려 애쓰지만,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정책들에 치이는 건 결국 우리 고등학생, 중학생이다. 대학에 재학 중인 필자는 얼마 전 4살 차이 나는 동생의 학교숙제 한번 봐주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사이에 모든 게 바뀐 느낌이었다. 딱 눈에 띄는 변화가 이루어지는 게 입시라서 그렇게 학생들을 좌지우지하는 걸까. 혹시 학생들이 차차 잊어갈 것으로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닐까?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뀌는 입시제도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청소년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스스로의 이권을 챙겼으면 좋겠다. 정치에 무관심해도 우리 삶은 대통령 발언 하나에도 완전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근시안적으로는 대입제도,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라면 최저시급부터 조금만 멀리 봐도 취업 시장의 변동까지 중고등학생들이 연관되어 있다. 평생을 학생으로 살 게 아니므로, 아니 평생을 이 나라의 학생으로 산다면 더더욱 스스로의 권리에 민감해야 한다. 또한 대선뿐만 아니라 교육감 선거에서는 더 강력하게 선거연령 인하를 주장 해야 한다.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공직자의 자리를 학생이 뽑지 못하는 것은 본국의 대통령 선거를 다른 나라의 국민에게 맡기는 꼴이 아닐까? 교육 자치권이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한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학생들의 움직임은 사회에 분명 큰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과 이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은 나이에 국한될 수 없다. 청소년기부터 바른 정치교육을 실행하고, 모의 투표 등으로 충분한 사전 활동을 거친다면 고등학생, 어쩌면 중학생에게도 한 표의 권리를 부여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고령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청소년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몇 년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텐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투쟁하지 않고 쟁취한 권리는 없다. 참정권은 더더욱 그러하다. 참정권의 인정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강자에서 약자 순으로 이루어졌다. 스스로를 약자로 여기지 말 것, 누군가 나를 약자로 여기게 내버려 두지도 말 것을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