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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ug 01. 2017

집순이라도 괜찮아!

집순이와 집돌이.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부르는 신조어다. 그들은 주로 외부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고, 집에서 혼자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 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피곤한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 집순이들은 ‘활발하지 않은 성격,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주로 ‘활발’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분위기 이기 때문에, 이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보다 상대적으로 좋지 않게 비추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성격이 ‘문제’라고 규정하고, 그런 성격을 억지로라도 바꾸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던지는 의문점은 이것이다.

왜 내성적이고 활발하지 않은 성격을 고쳐야 하는 걸까?
그런 성격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이들, 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순이와 집돌이에게 주변 사람들은 주로 이런 말을 한다. “ 야 조금 활발해져 봐!”, “언제까지 그렇게 집에서 혼자 있을거야! 밖에 나와서 생활을 좀 해봐!”라고. 꼭 그런 성격이나 경향들이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부모님들도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보면 “좀 밖에 좀 나가봐. 친구들 안 만나니?” 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생각한다. ‘내 성격이 잘못된 건가?’, ‘그래도 사회 생활을 하려면 억지로라도 조금 바꿔야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나서지 않는 성격’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성격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조용하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또는 집순이와 같은 성격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성격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의 대답의 핵심은 거의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사회가 그런 성격을 원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우리가 사회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서 소위 ‘스펙’ 을 쌓으려 하다 보면, 스펙은 우리에게 주로 다양한 경험을 요구한다. 그 다양한 경험 안에는,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고등학교 생활에도 역시 적용된다. 대학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쓸 때에도, 그들은 다양한 동아리 경험, 외부 활동을 요구하기 일쑤다. 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성격, 혼자 생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들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또 그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들이 그들에게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사소하게, 고등학교에서 반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지?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사회에서 점차 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원하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이런 이들을 원하기 때문에, 무조건 “네 성격은 안바꿔도 돼!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쭉 살아도 아무 문제 없어!”라고 책임감 없이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느 정도, ‘바꿔야겠다’라는 의지가 있다면, 조금씩 성격을 바꿔나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나가야 하나’ 싶고, 성격을 바꾸려는 행동들 하나하나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억지로 바꾸지 않아도 좋다. 지금처럼만 해도 충분하다. 스트레스를 느끼고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나의 정체성을 혼란 시킬 필요가 없다.



이 글의 핵심은 ‘어떻게 해야 내성적인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있을 조용하고 성격을 가진, 혼자가 편한 이들이 결코 잘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냥 활발한 사람들과 성격이 다를 뿐, 그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처럼 말할 수 있다. “오늘도 혼자야? 안 지겨워? 성격을 좀 바꿔봐야 할 것 같지 않아?’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기준일 뿐, 그런 생각을 강요 받아 자신의 성격을 굳이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저런 태도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아까 말했듯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도 충분히 만족한다면, 굳이 저런 사람의 말로 인해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필요는 없다.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 가면 된다. 그 누구도, 내가 생각했을 때 옳은 ‘나의 기준’을 바꾸라고 할 권리는 없다(물론, 그게 사회의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한).



나 한 사람의 이런 생각으로 인해서, 사회의 모습이 결코 변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혼자족’들이 많이 늘어나고, 점점 더 집순이, 집돌이와 같이 혼자 생활하는 것이 편한 이들이 존중을 받는다면, 언젠가 이 사회에서도 “나 집순이야! 그게 뭐?” 라고 당당하게 말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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