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C’est le temps que tu a perdu
pour ta rase qui fait ta rose si importante.
이제 개학도 했고, 슬슬 미술대학 입시가 시작되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한숨도 시작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디자인을 시작한 이 친구는 꽤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언을 해주면 바로 듣고 바로 실천한다. 공휴일이 지나고 친구를 만났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난 우울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날은 입시 상담을 받은 날이었다. 잘 하는 친구이기도 했고, 항상 열심히 하는 친구라 토닥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는 미술을 시작한 게 저의 제일 큰 죄에요.”
“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는요, 다른 애들보다 늦게 들어왔고요, 못해요. 다른 선생님이요, 저보고 그림이 점점 퇴화하는 거 같대요. 그냥 공부나 할걸 그랬어요. 이미 늦었어요. 저한텐 이제 시간이 없다고요.”
남보다 제일 뒤에서 출발하는 사람의 마음은 제일 앞서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을 바라보기 마련인 것 같다.
(물론 그 앞서가는 사람도 가이드가 없어 힘든 건 마찬가지다) 친구처럼 정해진 시간에 아직 많이 남은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힘들 것이다.
자꾸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에 앞이 아닌 뒤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때 좀 더 일찍 결정할걸.’ ‘차라리 공부나 할걸.’ 간절함은 이중적이어서인 때로는 도전할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회피하게 하기도 한다.
애초에 이 불안함도 그것이 간절하고 소중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사실, 친구와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부터 그림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돈 문제 때문에 부모님께서 국립대학교를 보내고 싶어 하셨고, 돈이 많이 드는 미대는 반대하셔서 겨우 설득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일단, 고3 때 시작한 게 제일 후회되고,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생각도 하지 말걸. 시간이 아깝고, 그래요.”
“아직 시간 있잖아,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늦었다고 안 할 거야? 난 너 믿어.”
안 할 건 아닌데….지금 바꾼다고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후회는 불안함을 먹고 자란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 겪는 일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도 대학에 붙기 전까지 그랬다. [불합격]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정말 재수인가 싶고, 내 그림은 그릴 수 있을까 싶었다.
내 얘기를 하자면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학원에서의 내 역할은 길을 만드는 역할이었다. 그렇다 보니 허우적대기도 하고, 열심히 만들었던 것들을 빼앗길 때도 많아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까지는 그저 다가오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었는데 입시가 시작되기 한 달 전, 갑작스럽게 트라우마에 빠져 버렸다. 성적도 좋고, 들어오자마자 선생님들의 칭찬 세례와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받는 친구가 내 옆에 빛나는 길을, 그것도 빠르게 만들고 가버렸다.
나에게 남은 건 비교였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친구처럼 하루하루가 후회로 가득 찼었다. 공부하면서도 일찍부터 공부했으면? 그림말고 다른 걸 했으면? 그런데 결국 결론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그림에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입시 미술이다)였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생각을 고치고 그림을 그렸다. 대학에 합격하니 난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돌아가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난 바꾸고 싶을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오글거리는 삼류소설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을 텐데,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이렇다.
만약 내가 공부만 했다면 지금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다른 활동을 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좀 더 나아가 내가 대학 친구나 다른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있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고 3시간이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과거로 돌아가 바꾼다고 하면 겪을 수 없었을 그 시간. 그 순간만큼은 힘들었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많은 교훈과 도움을 준 그 시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특별한 시간이다.
친구가 대학에 합격하는 그 순간에 어떤 기분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형용할 수 없다. 그래도 그 느낌을 비슷하게 말하자면 주마등처럼 힘들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내가 어떤 것을 잘 그려서 붙었나, 그런 건 생각도 안 난다. 그저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림’,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시간’이 남는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C’est le temps que tu a perdu
pour ta rase qui fait ta rose si importante.
정말 유명한 글귀이다. 초록 창에 ‘좋은 명언/글귀’를 쳐서 연도순으로 나열해도 엄청 오래전 글에서도 쓰여 있다. 그만큼 좋은 글귀라는 것일 텐데, 이 글귀는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왕자>를 제일 좋아해서 이 글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찾아보았다. 대부분 꿈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물론 나 또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의미로 이 글귀를 친구에게,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원하는 것을 위해 당신이 쏟은 그 시간은 절대 쓸모없지 않다. 오히려 그 조그만 시간이 모여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고, 그 시간이 더 모여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할 것이다. 만약 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 그저 그랬고, 쓸모없는 후회가 가득 찬 시간이었다면 당신은 그 장미꽃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장미꽃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바싹 말라 죽어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시간을 견뎌내고 열심히 노력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렇게 당신과 당신의 장미꽃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열심히 여기까지 잘 왔고, 앞으로의 시간도 잘 할 수 있다.
당신의 장미꽃은 당신이 노력해준 시간 덕분에 소중해졌기에.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