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라
‘말 잘하는 애’, ‘글 잘 쓰는 애’라는 수식어는 학창 시절 내내 늘 빠지지 않고 내 이름 뒤에 붙어왔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상을 받았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칭찬만 해 줬기 때문에 나도 내가 ‘글 잘 쓰는 애’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공부는 하기 싫었어도 책 읽는 것, 글 쓰는 것은 정말 좋아했고 국어만큼은 공부를 안 하던 와중에도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다.
나는 비실기 수능 100% 전형으로 영화 관련 학과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수를 완벽하게 망치고 충격적인 수능 성적표를 마주한 뒤, 부랴부랴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영화과 실기시험은 글쓰기이다. ‘한 남자가 횡단보도를 걷다가 쓰러진다.’와 같이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거나, ‘사면초가’ 같은 사자성어가 키워드로 주어지면 그것을 소재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주어진 시간 안에 만들어내야 하는 식이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기발한지가 당락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남들이 1-2년 동안 하는 공부를 시험을 고작 한 달 남겨두고 시작하는 것은 도박 같은 행위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항상 글을 잘 쓰던 사람이었으니까 이것도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자만감으로 똘똘 뭉쳐있었기에, 시험을 쉽게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첫 수업에서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선생님께서 나의 글 쓰는 방식의 잘못된 부분과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한 것을 3시간에 걸쳐 지적하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감상문이나 논설문, 에세이만 써 봤던 내가 새로운 형식의 글을 잘 쓸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글이 ‘별로다’라는 말을 직접 듣게 된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별로인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이러다간 실기 준비를 해도 대학에 못 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변해갔다. 매일 숙제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즐거웠던 글쓰기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선생님께선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와.”라고 하시며 내가 할 수 있는 양보다 조금 많은 숙제를 내주셨다. 어느 정도의 양을 소화할 수 있는 학생인지 알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었지만, 그 말은 내 불안감을 더 가중했다. 이걸 다 안 하면 합격을 못 한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서 숙제를 해 갔다.
덕분에 선생님은 나를 과대평가하셨고, 더 많은 양의 숙제를 내주셨다. 이 상황에서 더 최악인 것은 내가 자존심이 엄청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못하겠어요, 너무 많아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미련하게 꾸역꾸역 숙제를 했고, 그럴수록 정신건강은 점점 악화되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중 엄마가 “실기 준비할 만하니?”라는 질문을 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뭐 그래.”라며 넘어갔을 텐데, 그 당시 최고조로 예민해져 있던 나는 까칠하게 ‘할 만할 리가 있냐’며 대답했다. 내 말버릇으로 인해 대화는 점점 갈등이 고조되어 결국 난 밥을 먹다 말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열려있는 옷장 문이 눈에 거슬려 냅다 발로 걷어찼는데, 하필 문짝에 붙어있던 거울이 와장창 깨지며 거울 조각들이 내 앞으로 쏟아졌다. 뭐 하나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구나 싶어 너무 서러웠다. 거울 조각으로 난장판이 된 방 가운데에 주저앉아서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는데 소리에 놀란 부모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울던 나를 끌어안고 괜찮아 괜찮아했다면 감동적이었겠지만, 우리 집은 그런 감동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나를 일으켜 다친 데가 없나 돌려가며 확인하고 거실로 던져놓았다. 두 분이 난장판이 된 내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거실에 혼자 앉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내가 진정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식탁에 앉혀놓았다. 흐르는 정적을 깨고 엄마가 입을 여셨다.
야. 네가 하겠다고 한 거야. 지금 힘들다고 그러면 뭐 어떡할 거야. 지금 몇 주 안 남았는데 다 때려치울래? 때려치우면, 그러고 나면 뭐 어쩔 건데?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나는 뭘 바라고 이렇게 화를 낸 걸까 싶었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는데. 내가 한 행동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깨닫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신 차렸으면 밥이나 먹어. 1절만 하고.
나오려던 눈물도 쏙 들어가게 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들고 입안에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숙제는 점점 더 늘어갔다. 숙제를 하느라 2일이나 3일에 한 번 잠을 잤다.
그마저도 불안감에 떨며 글을 쓰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것이었고, 잠에서 깼을 때는 자면서 시간을 허비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엉엉 울며 글을 썼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거의 먹지 않았다. (두 달간의 입시가 끝날 무렵 8kg 정도가 빠져있었다.)
정말 딱 ‘죽기 직전’의 몸 상태가 되자 시험일이 되었고,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스펙터클한 입시 준비를 하며 깨달을 가장 큰 교훈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 것이다. 앞을 향해 열심히 달리다 내가 가고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다른 목표를 향해 새롭게 달려가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이게 그냥 싫어서, 또는 단순히 달리고 싶지 않아 뒤를 돌아 도망친다면, 평생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
많은 학생이 “아, 공부하기 싫다. 기술이나 배울까.” “공부하기 싫다. 그냥 재수나 할까.” 하는 말을 아주 쉽게 뱉는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그것들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그 어떤 일도 쉬운 것은 없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것이다. “넌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힘내!” 라던지, “지금까지 잘 해왔어!”라 던 지. 하지만 입시를 겪어본 결과, 이 시기에 그런 말은 감사하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달이란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학생이 포기하고, 재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듯 한 달이란 시간은 전혀 짧지 않다. 그러니 도망치지 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그걸 해내야만 한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절대로. 천국은 없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