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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01. 2017

'촌티'와의 전쟁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 1학년 전체가 교수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어색한 듯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식당의 따뜻한 육개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육개장 뚝배기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말씀을 하신 교수님이 있다.


“시골에서 왔구나? 서울 좀 자주 돌아다니면서 촌티 좀 벗어라.”



내 옷이 남들보다 이상했던 것도, 사투리를 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시골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주변에 앉은 신입생 동기들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덕분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자리가 풀어졌다. 교수님은 즐겁게 이야기하고 돌아가셨지만 나는 웃고 있는 주변 눈치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다가 괜히 옷자락만 만지작거렸다.


뒷날, 교수님께서는 이 말씀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을 하셨다. 네가 시골에서 와서 다른 도시 아이들보다 문화적 체험 경험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 올라가서 연극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하라는 말이었다. 교수님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촌티’라는 말은 시골 사람의 세련되지 못하고 어수룩한 모양이나 태도를 의미한다.


조선 시대 때는 교통편이 변변치 않으니 한양과 다른 지역 사이의 교류가 활발할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에는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육과 의료처럼 사람 사는 데에 필수적인 것부터 문화까지 다른 지역보다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양의 유행이 다른 지역에 빨리 전해지지 않으니 한양은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어수룩한 모습을 보며 한양 사람들이 만든 말이 ‘촌티’다.



하지만 지금은 퍽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로 세 시간 남짓, 전국에 생긴 버스와 항공편으로 대한민국이 당일 여행 가능 권역이 되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보급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수도권과 그 이외 지역 사이의 정보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의료도시, 행정도시 등 도시의 분권화로 서울의 기능 독점 역시 해소되고 있다.


문화는 이제 서울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문화’라는 말도 옛말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촬영기기의 저가화는 1인 미디어 콘텐츠의 문을 열었다. 더 이상 인구가 많은 곳에서 문화를 선도하는 일은 없다. 서울에 집중되어있던 각종 정보와 문화는 이제 전국에 퍼져 있다. 지역에 따른 ‘촌티’는 이제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촌티’라는 말은 종종 쓰인다. 놀리는 투 던 간에, 빈정거리는 투 던 간에 썩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실 ‘촌’은 나쁜 뜻이 아니다. ‘촌’은 ‘시골’이다. 따라서 ‘촌티’는 시골스럽다는 뜻이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서울 아닌 지방, 촌을 무시하고 낮잡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 ‘촌’이 서울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 전경

 

하지만 아직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출신지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주눅 들어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시골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아직도 시골이라는 말을 들으면 넓은 논과 산, 경운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아직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디어에서 수더분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강조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시골의 모습을 프레임 화한다. 시골의 이미지가 획일화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도시의 이미지가 획일화되는 것도 문제다. 미디어는 도시의 문제보다는 장점만을 부각하는 경우가 크다. 도시에 대한 미화된 이미지는 시골 사람들에게 도시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수반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나면 실제의 모습과는 왜곡된 모습이 머릿속에 남는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서울과 도시, 그 외 지방과 시골로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과 다른 지역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차이는 발생한다. 차이는 누군가를 우월하게, 때로는 누군가를 열등하게 만든다. 차이를 비교하기보다는 다름을 알아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담임 선생님께서 우스갯소리로 


너희가 대학교에 가면 다른 애들이 너희를 감자라고 부를 거야.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다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시골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촌티’ 나는 사람으로 정의해버리는 일도 자주 목격했다.


나는 시골 출신 대학생으로서 그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왔다. 빈정거리는 투로 시골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대답을 내놓았다. ‘너희 동네에는 이런 거 없었지?’ 하고 대놓고 비교를 하면서 놀리는 동기에게는 우리 동네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입학 초반에 은근히 시골 출신을 놀리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현재, 나와 나의 출신지를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 작은 변화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뿌듯했다.


편견 섞인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알아가고자 하는 물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서울과 다른 지역 사이의 ‘촌티’라는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노력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From. 애드캠퍼스 칼럼멘토단 2기 멘토 김은빈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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