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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02. 2017

도와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등학생 때 일이다. 평소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게임에 바빠 신경 쓰지 않았다. 5분쯤 지났을까,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궁금해지긴 하지만, 밖에 나가기엔 게임이 더 급했기에 다시 잊고 게임에 집중했다. 다시 또 5분쯤 지났을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쿵’ 소리가 사실은 내 사촌 동생이 뛰어내린 소리라고 하신다.


급히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사촌은 볼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병실 앞에서 울고 계시는, 응급실 앞 흡연실에서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계시는 당숙의 모습뿐이었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 생각엔 자살을 할 만한 이유가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밝고 친구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사이도 좋으시고 집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등등....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낮아지는 자살 시도율높아지는 자살 성공률



청소년 자살 시도율은 2007~2013년까지 5.8~4.1% 수준에서 2014~2016년 사이 2.9~2.4% 수준으로 하락했지만(보건복지부,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2007~2016), 십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유독 사망률이 높은 2009년(10.9)을 제외하면 7.9~8.9 사이에서 크게 변함이 없다(통계청, 사망원인 통계, 2007~2016).


즉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의 수는 줄었지만, 성공률이 높아졌다는 말이다. 이건 대단히 큰 문제이다.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고, 또 우리가 도울 기회도 영영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내 가족 혹은 가까운 지인이라도 말이다.


보건복지부나 많은 단체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징후들을 연구하여 자료를 배포하고 있지만 역시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 자살은 너무나도 먼 얘기이고, 또한 내 주위 사람들과 자살이란 단어 역시 쉽게 교차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 징후를 보이더라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도와주고 싶지만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너무 힘들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만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지만, 여러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가족, 지인, 친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 남일지라도, 여러분을 도와줄 사람은 많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라면,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 예방 핫라인(1577-0199)이나 청소년 전화(1388)
중앙자살예방센터(http://www.spckorea.or.kr/)
한국자살예방협회(http://www.counselling.or.kr/)


에 도움을 구해도 된다전화나 온라인 상담뿐만 아니라 각 시, 도, 지방자치 구역에도 자살 관련 상담을 해주는 기관들이 많이 있으니, 중앙자살예방센터(http://www.spckorea.or.kr/)에서 찾아보면 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는 국가기관뿐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들도 알아볼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내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나약한 사람 같기만 하고, 인생을 실패한 패배자처럼 보일까 두렵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괜찮다. 용기 내서 도움을 청하는 순간부터 변하는 거니까. 적어도 당신이 모두 혼자 짊어지고 떠나버렸을 때보다는 모두가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당신을 대견해할 거니까.


결국 당신의 삶을 구할 수 있는 건 가족도, 친구도, 나라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삶이 너무나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 빛을 비춰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바로 자신이다.     






약 한 달 동안의 병상 생활 후 사촌 동생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숙모는 사촌 동생의 방을 없애지 않고 동생 생전의 상태와 똑같이 몇 년이나 관리하셨다. 3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시고야 숙모의 집에서 사촌 동생의 방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숙모는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하신 것만 같다.


동생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이렇게 힘든데, 동생은 어땠을까. 만약 동생이 힘들다고, 죽을 만큼 힘들어서 죽고 싶을 정도라고 먼저 말을 해 주었다면, 그래서 누군가 동생을 도와주어서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지금도 가끔씩 얼굴을 보며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cctv를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촌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도와주지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도와줄 수 있도록, 자살을 생각하는 당신, 부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주기를 부탁한다.






From. 애드캠퍼스 칼럼멘토단 2기 멘토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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