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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02. 2017

노력은 너의 것

당신은 이미 삶의 무게를 잘 버티고 있다

수능을 앞둔 학생이라면,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이라면 한 번쯤 듣는 말이 있다.


넌 왜 좀 더 열심히 못하니?

이 글은 나와 비슷할지도 모른 학생들을 위해 쓰는 글이고, 혹시 공부를 하다 자괴감이 들거나, 우울하거나, 타인에게 받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이다. 저 말이 학생이었던 내게 얼마나 큰 짐이었는지, 내가 그 짐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왜 더 열심히 하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에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타인을 앞질러 이겨야겠다는 호승심이나 고집 또한 없다. 나보다 성적이 나쁜 사람이 나보다 잘하면, 그야 신경은 쓰이지만 이내 더 열심히 했나 보네, 대단하다.라고 생각해 버리고는 내 일에 집중하는 성격이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내가 목표할 수 있는 곳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 에게는 내가 ‘대충’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누구누구는 이번에 더 좋은 성적을 받아서 더 나을 대학을 갈 수 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주위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말들은 내가 마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나는 왜 그렇게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던데 내가 이상한 것 아닐까? 이 생각들은 나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었고, 끝내 나는 원래 노력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노력은 최선이 아닐까,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숨이 막혀 모든 공부를 손에서 놓고 싶었다.







나는 다행히도 이 고민을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친하던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으시던 선생님은, 너덜 털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아직 죽을 만큼 열심히 해 본 적 없는데?

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왜 더,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데? 너 지금 열심히 안 하고 놀아? 라며 반문하시기도 하셨다.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말에서 답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내‘ 노력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던 내게는 그것이 나름의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결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껏 노력하고 있었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고, 충분히 힘겨워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타인은 내가 아니고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당연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노력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건 내게 충분히 힘든 것이고 나는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공부를 하는 것도, 시험을 보는 것도, 대학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가 하는 일인데 왜 다른 사람의 시선에 그렇게 까지 신경을 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든지 아닌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고, 결국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인데. 나는 나 자신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노력이었고, 나는 내 나름대로 정말로 힘들었고, 그걸 견뎌내며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했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기준은 다르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처럼 밤을 새워서 공부하거나, 코피가 날 정도로 공부하지 않는 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다른 사람들처럼 높지 않다고 해서 노력할 생각이 없다거나, 대강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른 친구가 더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의기소침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스스로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괴감이 들지 않아도 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같지 않다고 해서 힘든 정도도 다를 것이라는 건 나 자신을 모르는 타인의 생각일 뿐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물었을 때, 스스로 아 그래도 좀 더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더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냐, 힘들어. 난 이것도 충분히 힘들단 말이야. 이렇게 생각된다면,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당신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헤쳐 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임을 받아들이면 된다. 왜 나는 저렇게 못하지-가 아니라, 나는 이만큼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하고 생각하자. 난 그냥 저 사람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면 되지, 내 삶을 살아줄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공부를 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 뿌듯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니까. 


만약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우울해하는 학생이 있다면,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자신의 최선을 다했는가? 스스로의 답이 ‘예스’ 라면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당신은 이미 그 무게를 잘 버티고 있다. 결국 본인의 노력은 자기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노력은 자기 스스로의 것이니까.






From. 애드캠퍼스 칼럼멘토단 2기 멘토 김도린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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