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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Dec 08. 2015

밀라노의 이발사

밀라노 이발소 이용 후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빨강, 파랑, 하얀색의 삼색 회전등 앞에서 멈춰 섰다. 기웃기웃 가격을 넘겨다보고 이발소로 들어 갔다. 요란한 인사도 시끄러운 음악도 없이 그저 세 명의 이발사가 자신의 구역을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반겨준 이발사에게 잔은 머리를 맡겼다. 소박한 세면대를 마주하고, 낡은 의자에 앉은 잔의 목에 하얀 천이 둘러졌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이발사가 외과 의사를 겸했다고 하더니, 새하얀 천을 보니 남친을 수술대에 올려놓은 기분이다. '걱정 마. 네 목에 상처를 내진 않을게.' 밀라노의 이발사는 씽긋씽긋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연신 집게손가락에 낀 가위를 빙글빙글 돌리며 재주를 부렸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손놀림에 덥수룩하던 머리카락이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낮고 검은 성벽이 잔을 빙글 둘러 싼다.



(포르타 티치네제(Porta Ticines)의 이발소 풍경



이발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서비스 음료도, 보조 미용사도 없이 꼭 필요한 것들이 작은 이발소를 채우고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의자는 버튼을 누르면 베개를 내어 놓는 기특한 기능이 있다. 목 베개에 머리를 뉘인 손님은 편안하게 면도를 즐길 수 있다. 녹진한 쉐이빙 크림을 잔뜩 바르고 면도칼로 수염을 닦아 내는 모습이나 손가위 하나로 턱수염을 고르는 모습이 흥미롭다. 상대방에게 칼을 쥐어 주고 기어이 목덜미까지 내어 놓은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긴장보다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두 눈을 수건으로 가린 채 엉덩이를 엉거주춤 걸치고 누워 민망하게 머리를 감을 곳도 없다. 머리는 대체 어떻게 감기는 것일까. 답은 만능 의자가 쥐고 있다. 커트가 끝나면 의자를 180도 돌리고 세면대로 손님을 눕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잠시 후 무참히 세면대로 고개를 숙인 잔은 비굴하게 머리를 감았다.





이발소 앞의 간이 의자에 나가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잔은 가끔씩 10년 전 이탈리아에서 지낸 1년 동안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어린 그가 헤비메탈을 사랑하던 긴 머리의 유럽 형들 틈에서 노숙을 하던 산 로젠조 광장의 기둥 사이에는 오늘도 젊은이들이 시시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트리트 패션의 명소라는 포르타 티치네제의 자유분방함에 나는 오히려 위축되었다. 곳곳에 그려진 현란한 그라피티보다는 오래된 기둥이 주는 꾸준함과 묵묵함에 마음이 편해진다.



산 로렌조 광장의 기둥. Colonne di San Lorenzo



왁스를 잔뜩 발라 반짝이는 잔의 머리는 이발사의 헤어스타일과 닮았다. 알고 보니 이발사에게 같은 스타일을 요구했다고 한다. 다른 이발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민머리였다. 이발사가 철저하게 자신의 실력을 감출 수 있는 헤어 스타일이다. 출근할 때마다 머리에 공들이고 손님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그들의 머리는 한없이 자유롭다. 이토록 자유로운 남자들의 세계에서 바짝 밀어낸 옆머리가 휑하니 단정한 남자를 데리고 나왔다. 잔의 목덜미에서 흩뿌려진 머리카락을 털어내다보니 제법 길어진 내 손톱이 눈에 거슬린다. 나는 밀라노의 손톱깎이를 꿈꿨다.




맘껏 웃어라. 잠시후 너는 나와 같은 머리를 갖게 될 것이다.




정사각형 사진은 모두 포토그래퍼 김보리가 찍어 주었습니다. www.kimb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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