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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Dec 08. 2015

밀라노 민박살이의 설움

밀라노, 에어비앤비



둘이서 시작한 여행이 밀라노에서 셋으로 늘었다. 하늘을 보고, 별을 따지 않아도 여행길에는 동행이 늘곤 한다. 독일에서 건너 올 보리를 위해 방 두 개가 딸린 아파트를 빌렸다. 이틀만 묵기에는 무척 억울한 집이었다. 주인 총각은 세탁기 사용법부터 화장실 이용법, 보통의 커피숍과 엄청 맛있는 커피숍의 위치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고 두오모 근처의 일터로 돌아갔다.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보통의 커피숍에 하루에 두 번씩 들렀다. 거대한 밀라노 도심에서 떨어져 보통의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시간이 좋았다. 보리가 지낼 방에는 잔잔한 꽃무늬 이불보로 감싼 싱글 침대와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빨랫감과 독일에서 건너온 빨랫감이 번갈아 가며 밀라노의 테라스에 축 늘어졌다.



라벤더같은 남자가 될테야.



한 시간째 민박집 근처에서 우리를 찾아 헤매던 보리를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지친 보리는 걸쭉한 크림 소스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믿음직스러운 요리사가 도착했으니 망설임 없이 마트로 향한다. 즉석에서 필요한 만큼 썰어 주는 두툼한 베이컨,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 달콤한 납작 복숭아, 냉장고에 빚진 바나나, 맥주와 와인까지 잔뜩 사치를 부렸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배 터지도록 먹고 싶었다. 루꼴라가 듬뿍 얹어진 걸쭉한 베이컨 크림 파스타와 고추를 갈아 넣어 매콤한 올리브유에 버무린 모짜렐라, 프로슈토, 복숭아가 어우러진 샐러드는 진심으로 황홀한 맛이었다.



베이컨을 받거라. 절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더욱 친절한 마트 이름, Pam(팜)
반드시 모짜렐라 치즈, 복숭아 한 조각, 생햄, 루꼴라를 동시에 입으로 집어 넣어야만 한다.
루꼴라 한 상  차림.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루꼴라를 찾아 헤매야 했다.



우리는 든든하게 점심을 차려 먹고 한참을 집에서 뒹굴거렸다. 밀린 안부와 보리가 건네준 종이봉투 속 선물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동안 늘어진 빨래는 뜨거운 햇살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었다. 조용한 동네에 갑자기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은 재빨리 교회의 종탑이 잘 보이는 침실 창문 앞에 카메라를 세웠다. 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한참 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이 집을 떠나야 한다니. 밀라노 민박살이의 설움이 세차게  밀려왔다.




꼼꼼히 읽어 보아도 결국은 발길 닿는 대로 헤매고 만다.
하리보 젤리곰 열쇠고리라니. 하아.





정사각형 사진은 모두 포토그래퍼 김보리가 찍어 주었습니다. www.kimbori.com

카메라에 담은 아름다운 종소리는 잔의 인스타그램(@jan.fil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jan.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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