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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May 04. 2021

켠김에 초나라 왕까지

겁쟁이 백수가 중국 최고의 명장이 되기까지, 한신

한신




과하지욕(侉下之辱) : 남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을 감수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먼 옛날 중국 회음현. 가난한 집에서 자란 한 청년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밥을 제때 못먹어 몸은 매우 왜소했고, 돈이 없어 친구와 이웃들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하루는 굶주린 채 낚시터를 거닐었는데, 근처에서 빨래하던 한 아낙네가 불쌍하게 여겨 밥을 주었다. 이 청년은 너무 고마워 그녀에게 훗날 큰 보답을 할거라 약속했다. 아낙네는 콧방귀를 뀌며 얼른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충고했다.

  그를 무시한건 아낙네 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의 젊은 청년들도 가난한 백수인 그를 깔봤다. 어느날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동네에 있던 한 청년이 이 자를 향해 소리 쳤다.


 네가 그렇게 겁쟁이라 들었다. 이 길을 지나가고 싶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지나가라!


  이 겁쟁이 백수는 소리친 청년을 한참 쳐다보고는 허리를 굽혀 가랑이 사이로 지나갔다. 주위에 있는 다른 청년들은 동시에 그 청년을 비웃으며 겁쟁이라 놀렸다. 이 일은 동네에 쫙펴졌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겁쟁이로 낙인 찍혔다. 겁쟁이, 거지, 백수 이 청년을 대표하는 세가지 키워드 였다.


  이 청년의 이름은 한신이었고, 이 두가지 일을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국사무쌍(國士無雙) : 나라에 둘도 없는 뛰어난 장군



  찌질했던 인생을 탈피하고 싶었을까? 한신은 벼슬길에 오른다. 당시 중국 대륙은 진시황이 죽고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전국의 호걸들이 군사를 이끌고 거병했다. 한신은 거병 세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초나라 장수 출신인 호족 항량 밑으로 들어간다. 한신은 스스로 누구보다 병법에 능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경력 없는 신입 직원을 다짜고짜 고위직에 임명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항량 수하에서 한신은 하위직만 전전했다. 항량이 죽고 항우가 뒤를 잇자 낭중 직책에 올라 가끔 군사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우 역시 그의 간언을 무시했다. 결국 한신은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알아봐주지 않은 항우를 버리고 인재를 중히 쓴다고 소문난 유방의 한나라로 귀순한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경력직 대리를 고위직에 임명하는 회사도 없다. 다행히 이직의 대가로 그럴싸한 직책을 받긴 했는데, 보급을 총괄하는 연오직에 올랐다. 직책은 제법 높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군직이 아닌 행정직이었다. 그러다 군량법에 잘못 연루되어 13명의 죄인과 함께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다. 처형을 담당한 사람은 유방의 동네 친구 하후영이었다. 하후영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앞서 12명의 죄인이 모두 처형당하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한신은 하후영에게 소리 쳤다.


“전하께서는 천하를 차지할 생각이 없습니까? 그래도 좋다면 저를 참하셔도 좋습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외침은 하후영에게 제대로 통했다. 놀란 하후영은 그가 비범한 사람이라고 판단해 유방에게 직접 천거한다. 소식을 들은 유방은 한신에게 군량을 담당하는 치속도위직을 주었다. 한단계 승진 했지만 여전히 장군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치속도위 직책은 그의 인생을 바꾸기 충분했다. 그의 직속 상관이 다름아닌 소하였다. 소하는 유방의 오랜 친구이자 한나라의 행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는 법. 한신과 대화를 나눈 소하는 단번에 그가 인재임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한나라의 상황이 최악이었다. 홍문연에서 항우 암살 시도 실패 이후 간신히 파촉 땅으로 도망쳤지만, 모든 제후들로 부터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미래가 안보이는 한나라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로 도주했다. 결국 한신 역시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한나라를 떠난다. 그의 상관인 소하는 한신이 부재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곧바로 말을 타고 한신을 쫓아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유방은 오랜 친구인 소하마저 도망간다고 생각해 탄식하기 시작했다. 몇일 후 한나라로 돌아온 소하는 한신을 다시 설득해 직무에 복귀 시키고 유방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유방은 소하에게 크게 화냈다.


“어찌 다른 장수들은 도망치게 나뒀으면서 한신 만은 직접 데려온 것이냐?”


  그러자 소하가 대답했다.


한신 같은 자는 나라안에 둘도 없는 뛰어난 장수 입니다. 그러니 왕께서 곁에 두시고 중히 쓰시기 바랍니다.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유방이지만 소하의 말을 무조건 신뢰 했다. 유방은 소하의 천거에 따라 한신에게 장군직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소하는 다시 한번 강조 했다.


“그는 장수자리에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장군의 자리를 주어 그에게 군사 전권을 맡겨야 합니다.”


  결국 소하의 뜻에 따라 한신은 한나라의 대장군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신의 신화가 시작된다.



배수진(背水陣) : 물을 등지고 싸우는 진영



  대장군.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기에 최고의 직책이다. 유방은 한신을 앞세워 천하를 집어삼키기 위한 진격을 시작한다. 한신은 천하의 중심은 관중을 먼저 손에 넣어 수많은 제후들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진시황의 부하 장수들이 자리 잡고 있던 관중을 한신의 뛰어난 계책을 통해 모두 격파하자 그의 판단대로 많은 제후들이 한나라 편에 섰고 무려 56만이라는 대군을 손에 모으게 된다. 그리고 항우가 제나라 정복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본거지인 팽성을 기습 정복했다. 너무 손쉬운 승리였다.

  하지만, 항우의 별명이 무엇인가. 역발산기개세. 팽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산을 뽑고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팽성에 도달했다. 겨우 3만의 초나라 병력은 승리에 도취된 수십만의 한나라 병력을 학살했다. 유방 특유의 오만방자함이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홍문연에서 죽이지 못한 유방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다짐한 항우는 그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병사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또다시 신은 유방의 손을 들어줬다. 하후영의 도움으로 간신히 형양성에 도달해 목숨을 부지할 순 있었다. 물론 수십만의 병력 손실과 수많은 제후들의 배신은 감수해야했다.


  한나라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제 한나라가 믿을 구석은 딱 하나였다. 국사무쌍 한신. 유방은 한신에게 도독의 권한과 군사 3만을 줬다. 그의 목표는 북벌. 한나라는 형양성에서 초나라의 맹공을 버티는 사이 한신이 조, 제, 연 세나라를 정복해 초나라보다 우위를 가져와야 했다. 즉, 유방은 한신이 북벌에 성공할 때 까지 버텨야 했고, 한신은 형양성이 함락당하기 전에 북벌을 완수해야 했다.


  한신의 북벌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은 여유로웠다. 조의 20만 대군은 한신을 막아내기에 충분했다. 조나라 장수 진여는 길목이 좁아 수비하기에 용이한 정형구에 위치했다. 진여의 참모 이좌거는 별동대를 활용해 한신의 군대를 괴롭히자고 했다. 하지만, 진여는 군사라면 자고로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며 이좌거의 계책을 거절했다.

  진여의 선택이 아주 나쁜건 아니다. 이좌거의 지구전은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승률은 높여 주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급 손실도 크다. 한신의 군대에 6배 이상을 보유한 조나라가 굳이 군량 손실을 감수하는 장기전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항우가 언제 다시 조나라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전쟁을 빨리 끝낼 수록 좋았다.


  그가 간과한 변수는 단 하나, 그가 마주하는 상대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라는 것이다.


  조나라가 별동대를 꾸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한신은 쾌재를 불렀다. 그는 조참에게 한나라의 곡창인 척장을 공격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예병 2000명을 뽑아 한나라 깃발을 들게 했다. 드디어 양군이 정형구에서 만났다. 진여는 계책대로 한신을 잡기위해 정면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한신은 2만의 병력을 둘로 나눠 선봉의 1만 병사에게 강을 등지고 싸우라고 했다. 병법에서 강을 등지는 건 스스로 탈출구를 막고 포위를 자처하는 미친 행위다. 조나라 병사들은 한신의 계책을 보고 크게 비웃으면서 물 앞에 갇힌 군사를 공격했다. 한나라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버티기 시작했다. 등 뒤에 강이 있으니 후퇴는 불가능하다. 병사들은 결사항전을 결심한 하고 버티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깃발 부대가 성 안에 한나라 깃발을 모두 꼽는 데 성공한다. 진여와 병사들은 성 안에 한나라 깃발이 올라간 걸 보고 크게 놀라 전의를 상실했다.

  이제 한신의 시간이 왔다. 후공의 1만 병력이 드디어 등장했다. 생각없이 배수진을 친 병사만 공격한 진여는 시간이 지나자 앞뒤로 2만의 병력에게 포위를 당하고 있었다. 조나라의 대군은 한신의 손바닥에 놀아났다. 한신은 그렇게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왕을 포로로 잡아 유방에게 보냈다. 진여는 전쟁 중에 죽고 진여의 책사 이좌거는 한신이 살려주어 스승으로 삼았다.


  한신의 수많은 전투 중 배수진 만큼은 가장 오래 남아 아직까지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결사항전을 해야할 때의 언어로 쓰이고 있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 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계책



  한신의 북벌은 성공적이었다. 유방의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순전히 자신만의 재능으로 상황을 뒤집어 놓았다. 반면 유방은 형양성에 갇혀 항우의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럽게 중국 대륙 내의 인기도 바꼈다. 제후들 사이에서 유방보다 한산의 인기가 커져갔다.


  항우의 부대를 막기 어려워진 유방은 한신에게 일부 병사와 장수들을 넘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한신 역시 북벌을 하는데 병력이 필요했기 떄문에 유방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다급한 유방은 결국 하후영과 함께 몰래 형양을 빠져나와 한신의 군영으로 향했다. 한신이 자고 있을 야밤에 군영을 찾아간 그는 한신의 인쇄를 빼앗아 병력을 한신 휘하의 병력과 장수를 재편하게 된다. 한신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군대 절반을 잃었다. 한신은 황당했지만 주군의 입장도 있으니 이해할 수 밖에 없었고 유뱡도 미안했는지 조참, 부관, 주설 등 주요 장수들을 한신에게 재편시켰다. 그리고, 병사가 부족한 한신을 위해 유방은 역이기를 제나라에 보내 항복을 권유하는 동시에 한신에게 서신을 써 내용을 전했다. 병력을 많이 빼돌렸으니 외교적인 방법으로 도우려 했다. 한신의 북벌을 지켜본 제나라 왕은 그를 이기기 어렵다 판단해 역이기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인다. 서신을 받은 한신 역시 행군을 멈추고 대기했다.

  그러나 제나라 출신의 한나라 책사 괴철이 한신에게 유방이 보낸 서신은 제나라 측에서 보낸 거짓 서신이라고 주장했다. 한신은 그 말을 믿고 군대를 다시 무장시켜 제나라로 향했다. 항복을 하기로 해 전투에 대비하고 있지 않은 제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제나라 군대는 수도인 임치에 간신히 들어가 성문을 걸어 잠궜다. 소식을 들은 제나라 왕은 대노했고, 역이기에게 이 상황을 따졌다. 달변이었던 역이기는 당당하게 작은일을 신경쓰지 말고 대세를 보라고 소리쳤지만, 제왕은 역이기를 삶아 죽였다. 결국 공성전 끝에 간신히 제나라를 정복한 한신은 역이기에 대한 복수를 위해 제나라왕을 잡아 참수한다.


  이를 끝으로 한신은 위, 대, 조, 연, 제 5개국을 정벌하고 북벌에 성공한다. 그는 이제 하북지역 (황허강 이북) 전체를 손아귀에 넣었다. 이는 유방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를 아득히 넘고 항우에게도 밀리지 않는 세력을 손에 넣은 셈이다. 권력은 사람은 오만하게 만들었다. 한신은 자신의 군주 유방에게 자신을 제나라의 왕으로 봉해 달라고 요구한다. 유방은 노발대발 했지만 장량이 그의 기세가 대단하니 이번엔 참으셔야 한다며, 그를 제나라 왕에 봉해주라고 했다. 한신은 제나라 왕에 올랐고, 동시에 한나라의 대장군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유방과 한신의 사이가 틀어졌음을 괴철은 한신에게 유방을 배신하고 새로이 세력을 형성해 천하를 3등분 하자고 한다. 하지만, 한신은 유방이 재능을 알아봐줘 대장군에 오르고 군사적 역량을 맘껏 발휘해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신은 다행히도 제나라 왕을 받고 만족해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둘의 군신관계는 완전히 무너졌고 천하가 언제 셋으로 나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 나오는 상황



  초한의 상황이 역전되었다. 한나라는 한신의 북벌 성공까지 버티는데 성공하고 초나라는 한신의 북절 성공 전에 한나라를 무너뜨리는데 실패했다. 한나라는 최후의 리미트를 버텼고, 초나라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 이제 중국의 거의 모든 제후들이 한나라 편으로 돌아섰다.

  장량은 항우가 팽성에서 농성을 하면 팽성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해 그가 팽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쳐야 한다고 간언했다. 유방은 이에 따라 병사를 이끌고 항우를 공격함과 동시에 한신에게 팽성으로 달려와 성을 차지하라고 명령했다. 유방은 항우와 싸우면서 한신의 부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신은 오지 않았고 유방은 항우에게 대패한다. 다행히 한나라 장수 관영이 재빨리 팽성을 공략해 항우가 팽성이 아닌 해하로 퇴각하게 만들었다. 유방은 화가 끝까지 치밀었다.

  유방이 한신에게 죄를 물었지만 그는 적반하장이었다. 한신은 해하성 원정을 조건으로 더 많은 봉지를 요구했다. 유방이 수하를 시켜 한신을 잡아오라고 외쳤지만 이번에도 장량이 간신히 말렸다. 유방은 한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간신히 해하 원정에 대한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한신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해하성으로 향했다.


  드디어 해하에서 한신과 항우가 전면에서 맞붙었다. 한때 기세로 천하를 뒤덮었던 항우 역시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한신의 부대를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그사이 한나라 장수 공취와 진하가 좌우에서 동시에 초군을 포위했다. 초나라 10만 병력 중 무려 8만이 죽었고, 항우를 비롯한 소수의 병력만 간신히 살아남아 해하 성으로 들어갔다. 해하성은 한나라 군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다. 병력을 낭비하기 싫었던 한신은 초나라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한가지 계책을 생각한다.

 

  그리고, 해하성을 둘러 쌓은 한나라 병사들이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들은 초나라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천하통일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먼길에 온 그들은 초나라 노래를 듣자 문득 집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다. 병사의 사기는 떨어지고 사람들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초패왕 항우마저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거라 판단한 항우는 이제 탈출을 시도했다. 정예병 800여명을 모아 한나라의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한다. 강동 앞에 선 항우는 배를 타고 돌아가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하를 차지하지 못하고 어찌 고향으로 돌아가냐며 신하들만 돌려보내고 자신은 자결한다. 그렇게 무서운 기세로 천하를 집어 삼킬것 같았던 항우가 죽었다.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400년의 한 왕조가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일반천금(一飯千金) : 한 끼의 밥을 얻어먹고 후에 천금을 주어 은혜를 갚은 일



  드디어 유방의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한가지 고민거리가 남아있었다. 바로 제나라 왕 한신이다. 한신은 중국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한신이 배신하게 된다면 또다시 천하는 양분된다. 이번에도 장량이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천하를 통일하자 마자 한신을 본거지 제나라가 아닌 초나라 왕에 봉한 것이다. 한신 입장에선 당황했지만, 애초에 약속 받은 봉지를 받아낸 것이기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고향 회흠현에 돌아왔다. 회흠현 겁쟁이 백수 한신은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청년 시절 자신에게 밥을 준 아낙네를 찾아 무려 천금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을 하사한다.


  한신은 과거에 자신이 받은 밥 한끼를 천냥 빚으로 갚았다.


  그리고 가랑이 밑을 기어가게 만든 청년도 찾았다. 그를 당연히 죽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를 용서하며 이 청년에게 중위라는 직책을 하사한다. 그가 자신을 무시했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며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줬다.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초나라 왕에 올라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증명한 셈이다. 엄청난 인고의 시간, 자신의 재능에 대한 믿음, 놀라운 성과를 통한 인생 역전이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



  유방과 한신의 위험한 동행 중에 한가지 사건이 터진다. 항우의 부하 중 종리말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가 초나라 땅으로 몰래 숨어들어왔다. 유방은 그를 압송하라고 한신에게 지시했지만 이 명령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보란듯이 군사 훈련을 하고, 수시로 시찰을 돌았다. 이제 항우도 없으니 유방은 한신과의 관계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 한다.

  문제는 병력이나 물자에서 초나라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게다가 그 초나라 왕은 항우도 무너뜨린 불세출의 명장 한신이다. 군사적인 대결에선 질 적으로나 양 적으로나 불리하다. 유방은 진평을 불러 계책을 논의했다. 진평은 연회를 핑계로 전국에 있는 제후들을 부른 뒤, 중간에 한신을 사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대를 받은 한신의 옆에서 괴철이 목적이 의심스럽다며 가지 말라고 말하지만, 당장의 항명은 아직 위험하다고 판단해 이번엔 유방의 초대에 응한다. 그러자 괴철은 그럴꺼면 이왕 가는거 종리말의 목을 들고가 연회에 참석해 확실한 충성심을 보여주자고 한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종리말은 분개해 자살했고, 그의 목을 들고 연회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종리말의 목을 보여주기도 전에 연회에 참석하러 이동하는 도중 한나라 병사들이 한신의 수레를 습격했다. 한신은 포승줄에 묶여 유방 앞으로 끌려 갔다. 한신은 후송 당하면서 홀로 이렇게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를 삶는구나


  유방 앞에 끌려나온 한신은 초나라 왕의 즉위를 박탈당하고 회음후로 강등된다. 한신은 충격으로 더이상 밖에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유방은 마지막으로 한신을 떠보기로 한다. 둘 사이가 아무리 틀어졌다고 한들 둘은 한때 완벽한 호흡으로 항우를 무너뜨린 군주와 신하였다. 유방도 한신이 아니었다면 천하통일은 꿈도 못꿨을 것이고, 한신의 재능을 유일하게 알아봐준 군주도 유방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번 한신의 진심을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유방은 한신을 테스트할 목적으로 한가지 질문을 한다.



유방 : 내가 얼마나 많은 군사를 이끌 수 있느냐고 보느냐?

한신 : 10만 이옵니다.

유방 : 너는 얼마나 되느냐?

한신 : 신은 병사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유방 : 그렇다면 지금 왜 너는 나에게 사로잡혀 있는가?

한신 : 폐하께서는 군사를 많이 거느리시진 못하지만 저와 같은 장수를 거느리는 재능이 있으십니다. 게다가 폐하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문답으로 이제 유방과 한신의 사이는 끝났다고 봐도 된다. 한신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다. 실제로 군사적 재능은 한신과 유방의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유방은 위기 상황마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천운이 따라 극복해 천하 통일을 이룬 사람이다.


  다만, 신하로서는 부적절한 말일 수 있다. 당장에 본인이 의심 받고 있는 와중에 폐하의 공덕을 찬양해도 모자란 상황이다. 그 와중에 천운이니, 군사적 재능이니 말을 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고 있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 행동으로 보아 한신은 군사적 재능과 달리 처세술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했다.

  유방이 옛정에 사로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그의 부인 여태후가 나섰다. 여태후는 소하로 하여금 한신을 죽을 계책을 물었고, 이번에도 연회를 핑계로 불러냈다. 소하의 초대를 받은 한신은 의심 없이 참석했고, 여태후가 숨겨놓은 병사들에게 사로잡힌다. 여태후 앞에서 참수를 당하기 직전 한신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괴철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죽진 않았을 텐데 원통하구나!”

  초한지 후반부의 주인공, 유방에게 천하를 가져다준 한신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게 되었다.



P.S. 한신에 대한 논평



  한 왕조 천하통일의 1등 공신은 한신이다. 물론 장량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계책이라도 수행자가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 유방이라는 감독하에 뭉친 FC 한나라는 장량이라는 뛰어난 수석코치와 리오넬 메시 급 스트라이커 한신 덕분에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략가가 누구 였는지에 대해선 항상 사람들의 평가가 갈린다. 하지만 중국 최고의 장수를 고르라면 딱 주저하지 않고 한신이 나온다. 우선 그의 성과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 하다. 병사 3만으로 중원 일부와 하북 지역을 평정해 초-한의 세력을 단번에 역전시켰다. 그가 전면에 나선 전투에선 거의 진적이 없다. 정말 불세출의 명장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물론, 말년이 아쉽다는 오점은 존재한다. 정작 왕에 오르고 나서는 그 위엄을 오래 보이지 못했다. 이런 점으로 볼때 그가 군사적 재능은 출중했으나 정치력이나 처세술에선 아쉬움을 보인다. 특히나 통일 후 권력을 잡은 여태후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는 너무 위험했다. 애증의 파트너 장량이 여태후에게 어느정도 타협하며 한 왕조 밑에서 오래 일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워낙 유방과 막역했던 소하는 상국에 올랐다.


  그는 특히나 초한지 내에서 인기가 높다. 젊은 시절 이웃에게 밥을 빌려먹던 백수 청년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일국이 왕이 되었으니 이만큼 인생 역전에 성공한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다. 스스로 재능에 대해 물음표를 가졌으면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성과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방은 큰 뜻 없이 한 말이지만 유독 나에겐 상처가 되어 그 말들이 돌아온다. 이 말들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다. 나를 믿고 인고의 시간을 거쳐 증명하면 된다. 한신은 그렇게 살았다.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증명했다.

  이왕 세상에 나왔으면 왕까지. 한신이 초한지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는 비록 지금은 많이 부족한 우리일지라도 자신에 대한 확신과 수많은 노력을 통해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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