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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빛소금 Dec 21. 2020

보고 또 보고

에세이 드라이브 13기 세 번째 글감 뼈 

하루 중 노을이 지는 순간을 가장 좋아하고 생양파를 싫어하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 이제는 그리 좋아하던 커피와 이별할 사람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너무, 몹시, 매우 추운 겨울이었다. 하여 주머니 속에 양손을 집어넣고 모래 요정 바람돌이처럼 냅다 달렸다. 추웠으니깐. 집에 얼른 가고 싶었으니깐. 그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손이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으니 방어할 새 없이 얼굴은 사정없이 맨땅을 들이박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하다. 집에 갔더니 우리 가족은 보고 또 보고를 시청하고 있었다. “엄마 엉엉 오다가 넘어졌어요. 엉엉..” 코에선 죽은  피가 나왔다. 사정없이 줄줄 나왔다. 당겨도 당겨도 무슨 지렁이처럼 나오고 또 나왔다. 엄마와 아빠는 아연실색했고 앰뷸런스를 불러 평촌에 위치한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갔다. 내 왼쪽 얼굴뼈에 금이 갔단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눈을 까뒤집어서 눈을 통해서 인공 뼈를 넣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얼굴에 칼을 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애 첫 입원 기간을 갖게 되었다. 8명의 환자와 함께 병실을 이용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목욕탕에서 뛰다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져서 입원했다. 또 다른 분은 가수 김종환 님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함께 지내면서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등 명곡들을 들었다. 입원 기간 너무 심심해서 언니한테 부탁해서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와 오목이나 바둑을 두기도 했다. 온 가족이 번갈아 가면서 나를 돌봐줬다. 한 번은 미용이 외숙모와 함께 밤을 보냈는데 내가 칫솔에 치약을 바르고 물을 묻히니 그러면 안 된다고 혼냈다. 그 이후로 치약을 바른 뒤에 따로 물을 묻히지 않게 됐다.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에 그때 즐겨보았던 드라마 보고 또 보고(98년 작, 자매간의 겹사돈을 주제로 한 드라마, 일일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57.3%를 기록하기도 했다)를 촬영하러 왔었다. 허준호 님, 윤해영 님, 김창숙 님 등을 봤다. 아마 최초로 연예인을 본 게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는 옆 병실에 아나운서 이상벽 님의 아버님이 입원하셔서 나를 보러 온 내 친구들과 이상벽 님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때를 회상하게 되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 아픔이 추억으로 변했다. 근데 아직도 미스터리한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수술 전에 분명 병원복을 입고 있었는데 수술 후에는 병원복이 벗겨져 있었다는 점. 그 사실을 내가 부모님께 얘기했는지 안 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얼굴에 눈을 이용해서 인공 뼈를 넣는 수술을 하는데 애 옷을 왜 벗기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병원에 오래 입원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입원하고 싶지 않다. 건강을 0순위로 생각해야 할 나이가 왔다. 어렸을 때는 아무리 누가 건강을 챙기라고 해도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며칠 전 맥주 4~5캔밖에 안 먹었는데 그다음 날 숙취로 인해 온종일 누워있던 날 생각하면 술은 끊어야 할 것이고 (제발 부탁이다. 이기지도 못할 애증과도 같은 술...) 아무리 추워도 운동은 해야 할 것이며 입이 좋아하는 음식 말고 몸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 그리고 겨울에 춥다고 주머니에 손 넣고 뛰는 행위는 평생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프지 말기. 내 몸은 내가 챙기기. 항상 글을 쓰다 보면 마무리는 자아 성찰로 끝나는구나.     


-끝-     


추신. 1 선생님들과 저 사이에 공통분모가 많아서 동질감 들고 너무 좋네요. 2 바나나를 먹으면 별로라 항상 후회하면서 자꾸 사는 게 그 사실을 까먹어서 산다고 생각이 들어서 기억하려고 적어보았어요.(생양파도 마찬가지예요) 3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 건강이 0순위입니다. 아프지 맙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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