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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Jul 27. 2024

모험을 떠나야 어른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천재가 아닐까? 

이런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샘솟는 거지? 

피곤하지도 않나?.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마구마구 나오는 게야.     

 

아마도 딱 여섯 혹은 일곱 살까지인듯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모든 아이들은 그들 주변 어른으로부터 이러한 소리를 들었을게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고 걷는 법이 없으며 더운 여름에도 땀 흘리며 자유롭게 뛰놀던 아이들. 

아이들의 하루는 늘 활기차고 밝았으며 조용한 법이 없었다.      


물론 그 옛날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늘 내 아이는 홀로 동굴 속에 턱~ 드러 앉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동굴 입구를 서성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외친다. 


“어디니? 어디에 있니?”       


돌아본 아이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얕은 인기척이나 대답이 없었다. 그저 메아리처럼 허공에 울려 퍼지던 내 목소리만이 돌아왔다. 색의 삼원색을 찾을 수 없는 무채색의 세상.

언제부터였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과연 동굴 밖 다채로운 진짜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동굴 저편 그 너머에는 설명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아이의 세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닌 앨리스 덕분이다.      


앨리스는 버섯 꼭대기에 팔짱을 끼고 앉아 조용히 물담배를 피우고 있는 애벌레를 만났다. 

애벌레는 침묵 속에 앨리스를 바라보다 이내 졸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누구니?”

“저... 저도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제가 누구인지 알았는데, 그 뒤로 여러 번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저를 설명할 수 없어요. ”     

“그러니까 너는 네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것 같아요. 예전처럼 잘 기억하지도 못하고, 10분 동안 같은 크기로 있지도 못해요! ”     


나이가 마흔이 넘은 나 또한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리란 참 어렵다. 

직업이 있고 엄마와 아내, 누구의 딸이라는 역할 안에서 해야 할 책임과 의무, 도리가 넘쳐났다. 그 작업들이 곧 나는 아닐진대 무언가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왔다. 

내가 누구이며, 어떠한 정체성을 원하는지에 대한 사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앨리스라면 벌써 겪었을 이상한 여행을 나는 이제 겪는 셈이다. 


앨리스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다며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동굴에 있는 내 아이 역시 그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지금 그만의 이상한 세계에 빠져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필요한 말은 애벌레가 던진 바로 이 한마디였다.      


“곧 익숙해질 거야.”      


아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물을 시간과 또 스스로에게 답을 할 시간. 

한쪽은 커지게 해주는 혹은 작아지게 해주는 버섯을 손에 들고 자기 몸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한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커지고 싶을 때 커지지 않아서 우는 날도 겪어야 하고 작아지고 싶은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지는 날을 거쳐야만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딱 적당한 크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동굴 안에서 아이가 모험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익숙해지고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러다 자신의 크기에 익숙해진다 한들 고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체셔고양이는 늘 웃는상이었고, 그런 그에게 앨리스는 물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줄래?”

“그건 네 목적지가 어디냐에 달렸어.”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      


목적지가 명확해 보이는 어른의 삶에 도달하기 전에 아이는 충분히 어디로든 가봐야 한다. 그곳이 모자장수의 집이든 3월의 토끼의 집이든. 그것은 앨리스만의 모험이고 아이만의 도전이다. 모두가 미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세상에서 한 번은 나를 던져보아야 한다.      


너무 커다란 개를 만나 두려움에 떨고, 말도 안 되는 크로케 경기에 참여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교훈을 찾다 보면 이내 아이는 자신을 심판하려는 재판정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제대로 된 규칙도 아니에요. 지금 만들었잖아요.”     

어른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를 갖게 되고 그리고      


“누가 그 말을 신경 써요?”      

옳지 않은 일을 행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끝냈다. 

그렇게 내 아이도 자신만의 모험을 끝내고 나면 비로소 드디어 스스로가 된다는 것을 앨리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 꿈꾸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고 그 여행을 진정으로 관통하지 못하는 아이는 여전히 깊고 긴 동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아! 나는 언제 이상한 나라의 나였던가 싶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곁에서 눈을 반쯤 감고 꿈에 빠져있는 아이를 토닥이고 싶다.


 ‘일어나 앨리스~ 낮잠도 참 오래 자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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