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이기고.
한 밤에도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이었다.
안방에만 에어컨을 켜고 자겠다고 하며 딸과 아들을 불렀다.
어쩌면 이런 순간을 기대하며 아이들 방에 에어컨을 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랑 싸우면 어떻게 해결해요?”
“대화를 해야지. 아빠랑 치고받고 싸울 수는 없잖아?”
“아~ ”
“왜? 똘이랑 싸웠니?”
남자친구와 2년이 넘게 사귀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싸움이 벌어진 걸까 생각하며 물었다.
“아니요. 그런데 만약 싸우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요.”
“잘 싸워야지. 싸움은 잘하는 게 중요해.”
“잘 싸워요?”
“한쪽만 일방적으로 참으면 안 돼.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니 내 생각은 이렇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런 마음이 든다. ‘나 전달법’ 있잖아. 그걸 잘 활용해야지” 라며 제법 교사다운 말을 해주었다.
어떻게 말하겠나.
싸움은 보통 치사하고 속좁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서운하고 화가 나서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가진 가장 약한 지점을 상대가 건드리면 방어기제가 발동하며
순간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대판 싸우는 그 순간에는 내 인생 모든 것을 걸고 상대방을 누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싸움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싸움을 피하기 위한 선택은 보통 마음을 꾹꾹 누르게 되는 참사를 일으키니 누르고 누른 싸움의 원인은 몸을 상하게 하거나 원치 않는 관계의 끝을 부를 수 있다.
단 그 싸움의 결론이 늘 자기와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두 사람에게 맞는 싸움의 방법을 터득해 간다는 성숙한 싸움이라는 조건에 한해서 그렇다.
상대방의 뼈아픈 지적을 받아보면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단점과 결정적 흥분 포인트를 자각하게 된다. 물론 공격이 들어온 그 순간에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은 이후에는 내 행동이 보이기 마련이다. 잘못을 알아차려야지 용기 있는 사과도 할 수 있다.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향해 훅을 날릴 때도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아, 나는 이게 서운했구나.’라며 내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이렇게 공격하니 저 사람은 저렇게 반응하는구나.’라고 상대방의 약점을 알아차리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싸움의 과정을 잘 겪고 나면 나를 이해하고 그를 이해하는 지점이 조금 더 깊어질 수 있게 된다. 물론 깊어진 이해의 결과물은 다음 싸움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더 매너 있는 언어선택으로 바꾸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싸움의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다.
막말이 오고 가거나 폐를 찌르는 듯한 아픔을 경험하고 혹시 잘못하다가는 아끼는 물건이 망가질 수도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순간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가슴이 방망이질한다.
싸움은 역시 마음에 상처를 부르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아무리 필요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싸우기 전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러한 싸움의 기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딸아이에게는 더군다나.
현명하게 싸우길 바란다.
오로지 상처를 내기 위한 전쟁 같은 싸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싸움과
너 자신을 스스로 굳건히 지키기 위한 싸움은 피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만약 싸우는 그날이 오면?
p.s 아빠랑 요즘 엄마 거의 안 싸우는 거 같지? 싸움도 다~ 젊을 때나.....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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