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털이 난것은 아니길 바래.
손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특히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생활하기가 불편했다.
의식 없이 사용했던 손의 모든 동작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이미 일 년 전에 퇴행성 관절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더 심해진 통증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손목건초염은 이제 급성을 지나 만성질환이 되었고, 이로 인해 관절염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건 부지런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환입니다. 손목을 많이 써서 그래요.
쉬어야 하는데 성격상 쉬지 못하는 사람이요.”
내가 부지런했었나?
맞아.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아니면 누가 하지?
에라 모르겠다 내팽개치면 밥은 누가 하고, 설거지는 저절로 되나?
아마, 아픈 동안만이라도 쉴 때는 좀 쉬어야 한다는 것이 의사 선생님의 입장이겠지만,
그래도 집안꼴은 굴러가야 하지 않을까. 라며 이래저래 계속 움직이고 있는 내가 좀 짠했다.
그러다 상상은 잠시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
그럼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병에 걸릴까?
그러고 보니 심보 고약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은 없나?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는 얄미운 사람들만 걸리는 병 없나?
그러면 그 병 걸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고 피할 수 있을 텐데.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알아보면 퍽이나 재밌겠다.
세상이 흉흉하고 한파가 불어오니 생각도 바람 따라 흘러간다.
무안공항에 참사피해 가족들을 위해 라면이나 생필품을 자유롭게 쓰시라 쌓아 놓았더니 가족도 아닌 양심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 마음대로 가져가더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렇게 양심에 털 난 사람들은 실제로 얼굴에도 털이 덥수룩하게 나는 병이 걸리면 쉽게 알아볼 텐데 말이다.
엄지손가락을 쓰지 말라고 보호대를 했는데 보호대를 보니 제법 아픈 사람 같다.
비싼 충격파 치료를 한턱에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마자 또 부지런하게 움직일 뻔했는데 보호대가 막아섰다.
‘그만 좀 움직여.’
그래. 알았다. 조금만 움직여볼게. 라며 연필 잡기가 힘들어서 노트북을 켰다.
건강할 때는 연필 잡을 시간이 많았어도 별생각 없었는데,
아프고 보니 괜히 더 연필을 잡고 싶은 심보란 무엇일까.
의사 선생님이 몸관리를 잘하라고 하셨지만 그 몸관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관리를 해야겠다. 남들보다 더 빨리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슬퍼하고만 있지는 말자고. 주어진 시간을 더욱 감사하며 바지런하게 살아가자고 말이다. 그리고,
주위에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혹시 없는지 눈은 더 크게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