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기 위함이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야. ”
“그래, 아빠가 해준 김치찌개 맛있게 먹어.”
너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속으로는 궁금했다. 나는 딸에게 어떤 엄마일까?
묻지 않고 그저 상상해 보았다. 어떤 답을 들으면 가장 기쁠까?
하지만 근래의 내 모습을 돌아보니 아이들에게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매일 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주로 생활습관에 관한 것이었다.
야채도 좀 먹기. 자기 전에는 핸드폰 그만 보기, 양치질은 바로바로 하기. 옷은 따뜻하게 입기. 일찍 준비해서 늦지 않기 등 태엽에 감긴 앵무새처럼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잔소리를 하지 말자고 글동무들과 이야기도 나누었고, 친정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소홀히 들으면서 정작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똑같이 굴고 있는 내가 참 지겹다.
나는 이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연에서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며 오감을 활짝 여는 경험을 갖게 해주고 싶었고,
늦은 밤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르륵 잠이 들면 꿈에서 나마 뒷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돗자리 하나 펴고 앞마당 벚나무 아래 누워 하늘 보며 끝말잇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지난여름의 해외여행을 떠올리며 큭큭 거리고 싶었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간식을 마련해 놓고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며 밤을 기다리고 싶고,
성인이 되어 떨어져 사는 아이와는 토요일 브런치를 나누며 지난 한 주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무엇이 속상했는지 이야기하며 데이트를 하고 싶고, 한 달에 한 번은 모두가 모여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회를 가는 등 문화생활을 하며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싶다.
그러다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랑이 무엇인지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이란 어떤 일인지 알려주고 싶다. 만약 손녀가 생긴다면 자녀와의 데이트를 손녀와의 데이트로 바꾸어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할머니가 얼마나 멋진 곳을 많이 알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어느 날 이제 가야 할 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자리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조용히 미소로 화답하는 내가 되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충분히 사랑했고 완벽히 사랑받았노라고 말하며 떠나고 싶다.
그런데 현실 속 나의 일상언어는 나의 꿈과 매우 동떨어진 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니 참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다. 잔소리를 안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순간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말 때문에 아들과 얼굴을 붉힌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개미만 한 목소리로 엄마가 미안해를 연신 말하며 방문을 닫고 나오는 것이다.
엄마는 꿈이 많은 사람이야.
엄마는 늘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이야.
엄마는 언제라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야.
엄마는 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야.
그리고 엄마는 내가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이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이런 말인데.
앞으로는 꼭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꿈을 꾸고, 늘 희망적인 응원을 해주며, 아이가 자신의 앞날을 당당히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지금을, 오늘을, 내일을 힘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물론 보여주고 싶다고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거나, 듣고 싶다고 원하는 대로 들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너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니?라고 당당히 물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신은 모든 곳에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엄마를 주었노라고 어디서 들었더라.
아니다. 신은 나약한 엄마가 더 강해지도록 하기 위해 자녀를 주었다.
p.s. 딸, 아들
이상하게 요즘 엄마가 더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가 스스로를 볼 때 무언가 잘 안되거나 싫어하는 면이 툭툭 보이는 경우 더 그런 것 같아. 예를 들어, 피부가 안 좋아서 신경이 쓰일 때 세수 좀 잘하라고 하거나, 쇼츠를 너무 많이 본 날에 오히려 너희한테 핸드폰 좀 그만하라고 말이야.
사실은 엄마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말들이 너희에게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이 현실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너희를 바라보는 눈에도 자꾸 욕심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어. 건강했으면 좋겠고, 긍정적이었으면 좋겠고, 무엇이든 도전하며 부지런했으면 좋겠다는 욕심.
엄마가 좋아하는 김미경 강사님은 아이들 공부시켜서 서울대 보내려 하지 말고 본인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들어가라고 하셨었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이해가 되는 거 있지.
엄마가 서울대에 가겠다는 말은 아니고,
엄마가 더 멋진 내가 되도록 노력해 볼게.
더 큰 꿈을 꾸고,
많이 웃고,
세상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되도록
멋진 사람이 되어가도록 해볼게.
고맙다. 엄마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사랑한다. 너희가 어떠한 모습이어도.
한 10년 뒤에 물어볼게.
엄마는 너에게 어떤 엄마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