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를 멈추어 서게 하는 문장이다.
시간도 덩달아 멈추게 되는 질문.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질문.
그 질문 하나를 품고 사는 일이 참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질문을 꼭꼭 숨겨서 없는 듯 살고 싶을 때 다시 그 문장이 찾아온다.
오늘도 여지없다. 좋아하는 책을 펼쳤는데 마침 읽어야 할 부분의 첫머리에 이 글귀가 쓰여있었다.
어제저녁, 다음 주에 있을 강의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챗gpt를 비서인양 누리는 시대라지만 나는 아직도 볼펜에 침을 묻혀가며 누런 종이에 꾹꾹 쓰는 연애편지처럼 노트북 화면을 켜고 커서 하나하나를 힘을 주어 누른다.
생각하고 몇 글자를 적고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안성맞춤인 사진을 복사해 붙여놓고 다시 흐름을 정리하는 일로 한 페이지씩 발표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를 만날지 알지 못하기에, 얼굴 없는 관객들을 상상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20년도 넘는 교육경력에 그걸 못할까 싶지만 왜 오셨는지, 어디서 오셨는지, 무얼 얻고 싶은지를 알지 못한 채 독백으로 두 시간을 떠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마음을 눌렀다.
몇 시간을 고민하며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책 읽고 글 써야 하는 일도 잔뜩 밀려있는데 이게 맞는 걸까?
처음에는 괜한 부탁을 수락해서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며 거절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갈수록 내 마음은 불안으로 흘렀다.
실수하면 어쩌나, 말을 잘 못해서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어쩌나. 듣는 사람이 듣다가 나가버리면 어쩌나 등
걱정만 늘어가서 괜히 물 마시러 왔다 갔다 하며 엉덩이를 들썩 들썩이다 미처 널지 않은 빨랫감을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에 같이 강연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에게 어린이 같은 마음을 메시지를 적었는데,
“선생님. 누구 보다 깊이 있어요.”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됐을 때의 그 떨림을 잊지 못합니다. 지난 특강도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또 반하는 중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나는 인정받고 싶었구나.
내가 그동안 좋다고 쌓아왔던 교육들이 괜찮은 교육이었다고 칭찬받고 싶었구나.’ 하는 내 마음을 깨달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마음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더 멋지고 더 잘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으로 마음을 채웠지 싶다.
그날 저녁 어쩐 일로 아들이 내방을 찾아왔다. 강의 준비한다고 인상 쓰며 종종거리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더니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아니야. 지금 엄마 스스로에게 화가 난 거야.”
“내가 있으면 엄마가 더 힘들잖아.”
“아니야. 너를 걱정하는 거지 너 때문에 힘든 건 아니야.”
“그래도 엄마가 나 때문에 한숨 쉬는 일을 없게 하고 싶어. 한 달 정도쯤?”
“고맙네.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가 사는 거야.”
“엄마. 나는 삶의 이유를 알아.”
“그래? 뭔데?”
“가족이야. 가족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어.”
“가족이 소중하지. 그래도 네가 행복할 수 있는 다양한 거리들을 많이 가지면 좋겠어.”
“그래도 가족이 최우선이야. 언제 깨달았는지 알아?”
“언제”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라고 말했을 때”
“당연하지.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네가 어디에 있어도, 어떤 일을 해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이에게 해 준 그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었나 보다.
그 위로는 나에게 다시 돌아와 욕심과 두려움으로 말라가는 내 마음을 촉촉하게 감싸주었다.
빨랫감을 같이 정리해 주고, 열두 시가 다되어서 들어온 누나를 위해 볶음밥을 해주는 아들을 보며
참 든든했다.
가족을 위한다는 일이 말뿐이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아들이 기특했다.
그리고 오늘 우종영 나무 의사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책을 여는데
다시금 이 질문을 마주한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작가님은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마음 안에 간직한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모든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해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데 이때 나무의 우듬지가 구심점 노릇을 해 주어서 나무가 자라는 동안 반듯한 수형을 유지한다고 한다.
나무의 우듬지가 아래의 가지들을 다스려 가며 하늘을 향해 뻗어 가듯,
사람은 꿈이나 희망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만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겨 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아들의 우듬지는 가족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후회 없는 하루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고 여겼다.
나도 그렇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이웃들을 위해 아름답게 살아가는 일이 나의 우듬지이다.
나의 우듬지를 늘 까먹지 말아야지. 우듬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상이 나의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지.